부록 : 주요 용어 해설과 참고 문헌

by 이호창

부록 1: 주요 용어 해설


나가르주나 (Nāgārjuna, 용수, 龍樹)


기원후 2-3세기경 인도의 위대한 불교 철학자로, 대승불교 중관 (中觀, Madhyamaka) 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 중 연기 (緣起, pratītyasamutpāda) 사상을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발전시켜 ‘공 (空, Śūnyatā)’ 사상을 확립했다. 나가르주나에게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다른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잠시 존재하는 현상일 뿐,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고유한 성질, 즉 자성 (自性, svabhāva)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무자성 (無自性)’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는 ‘중론 (中論, Mūlamadhyamakakārikā)’이라는 저작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 동일성과 차이성과 같은 모든 극단적인 형이상학적 견해들이 언어와 개념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함을 논파했다. 그가 제시한 중관, 즉 ‘중도의 관점’은 이 모든 극단을 떠나, 모든 것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연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이후 대승불교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힌두 철학, 특히 샹카라의 불이일원론과도 깊은 철학적 대화를 나누게 된다.


니르구나 브라흐만 (Nirguṇa Brahman)


힌두교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Advaita Vedānta) 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모든 언어와 개념, 속성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을 가리킨다. ‘니르구나’는 ‘속성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이는 브라흐만이 전지전능함이나 자비로움과 같은 어떤 긍정적인 특성으로도 한정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순수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숭배하고 기도하는 대상으로서의 인격신, 즉 창조, 유지, 파괴의 힘을 가진 신은 ‘속성을 가진 브라흐만 (Saguna Brahman)’이라고 불리며, 이는 궁극적 진리인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마야 (Māyā)의 힘을 통해 유한한 인간의 이해를 위해 잠시 드러낸 모습에 불과하다. 우파니샤드는 이 니르구나 브라흐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네티, 네티 (neti, neti)’,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부정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선 순수한 존재 (Sat), 순수한 의식 (Cit), 순수한 환희 (Ānanda) 그 자체이다. 카발라의 ‘아인 소프’와 마찬가지로,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모든 창조와 현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말할 수 없는 신성의 순수한 잠재성을 가리킨다.


니르바나 (Nirvāṇa, 열반, 涅槃)


불교에서 모든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리키는 용어로, 모든 고통과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절대적인 평화와 자유의 상태를 의미한다. ‘니르바나’는 문자적으로 ‘불어서 끈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탐욕, 증오,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 (三毒)의 불꽃이 완전히 꺼진 상태를 상징한다. 이 불꽃이 꺼질 때, 모든 고통의 원인인 갈애 (tṛṣṇā)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며, 마음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고요와 해방을 성취하게 된다. 이것은 힌두교의 모크샤 (Mokṣa)와 마찬가지로 끝없는 윤회 (saṃsāra)의 사슬을 끊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니르바나는 ‘나’라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나 허무를 의미하지 않는다. 불교는 애초부터 소멸될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무아, anātman) 때문이다. 따라서 열반은 ‘나’의 소멸이 아니라,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깊은 착각, 즉 무명 (avidyā)의 소멸이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마음의 본래적인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르마 (Dharma)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인도에서 비롯된 모든 종교와 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다층적인 핵심 개념이다. 그 어원은 ‘지탱하다’, ‘유지하다’는 의미의 ‘드리 (dhṛ)’에서 왔으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다르마는 우주와 사회, 그리고 개인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질서, 법칙, 진리를 의미한다. 우주적 차원에서 다르마는 계절의 순환이나 천체의 운행과 같은 자연의 법칙 (리타, Ṛta)을 포함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다르마는 각 개인이 자신의 성별, 나이, 그리고 사회적 지위 (카스트)에 따라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다르마는 각자의 고유한 본성 (스바다르마, svadharma)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 즉 덕 (德)을 의미한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전사로서의 자신의 다르마를 따를 것을 역설한다. 힌두교에서 인생의 네 가지 목표 (푸루샤르타) 중 하나인 다르마는, 부 (아르타)와 쾌락 (카마)을 추구하되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덕적 규범의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 다르마 (법, 法)는 붓다의 가르침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드바니 (dhvani)


산스크리트어로 '소리' 또는 '메아리'를 뜻하는 개념이다. 인도 미학에서 이는 문학의 본질로, 말의 표면 너머 암시된 의미를 드러내는 힘이다. 아난다바르다나의 『드바니알로카, Dhvanyāloka』에서 드바니 이론이 체계화된다. 이는 직설적 표현 (vācya)이 아닌 암시 (vyaṅgya)가 시의 영혼이라는 주장이다. 소리는 직접적 의미를 넘어 감정과 이미지를 깨운다. 카슈미르 샤이비즘에서 드바니는 우주의 진동으로, 의식의 확장을 상징한다. 시인은 드바니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는 언어가 단순 전달이 아닌 공명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드바니는 라사 (rasā, 감정, 맛)를 불러일으켜 독자를 변모시킨다. 인도 시학의 여섯 학파 중 드바니 학파는 이를 최고로 친다. 소리의 메아리는 삶의 숨겨진 층위를 드러낸다. 드바니는 우리에게 말의 깊이를 깨닫게 하며, 일상 대화조차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존재의 울림을 듣는 법을 가르친다.


라마누자 (Rāmānuja)


11-12세기 남인도의 위대한 힌두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샹카라의 불이일원론 (Advaita Vedānta)을 비판하고 ‘제한적 불이일원론 (Viśiṣṭādvaita Vedānta)’이라는 독창적인 철학 체계를 확립했다.

라마누자에게 궁극적 실재는 샹카라가 말한 속성 없는 브라흐만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아니라, 지혜, 자비, 힘과 같은 무한한 상서로운 속성들로 가득 찬 최고의 인격신 비슈누 (Viṣṇu)이다. 그에게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 (acit)와 수많은 개별 영혼 (cit)은 결코 환영 (마야)이 아니며, 신의 몸을 구성하거나 신의 속성으로서 존재하는 실재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신, 영혼, 세계는 궁극적으로 ‘하나’이지만(不二, advaita), 영혼과 세계는 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몸이나 속성이라는 점에서 그 하나됨이 ‘제한적(Viśiṣṭa)’이라고 보았다.

그는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지적인 깨달음 (즈나나)이나 행위 (카르마)뿐만 아니라, 인격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 즉 박티 (bhakti)를 가장 중요한 길로 강조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구원에 이르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신의 은총에 온전히 내맡기는 ‘완전한 자기 포기 (프라파티, Prapatti)’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사상은 힌두교의 철학적 사유를 대중의 뜨거운 신앙과 결합시켜, 이후 힌두교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리타 (Ṛta)


고대 인도의 성전인 베다, 특히 리그베다 시대에 사용된 개념으로, 우주와 사회, 그리고 제사 의례를 지배하는 근본적이고 신성한 ‘질서’ 혹은 ‘법칙’을 의미한다. 리타는 물리적인 자연법칙과 도덕적인 선 (善)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태양이 뜨고 지며, 계절이 순환하고,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은 모두 리타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리타는 진실을 말하고,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정직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질서를 어기는 것, 즉 거짓과 불의는 ‘안리타 (anṛta)’라고 불리며 혼란과 불행을 가져온다. 하늘의 신 바루나는 ‘리타의 수호자’로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며 이 질서를 어기는 자를 심판한다. 베다 시대의 제사 의식은 바로 이 우주적 질서인 리타를 지상에서 재현하고 유지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후 리타의 개념은 사회적, 개인적 의무를 강조하는 다르마 (Dharma)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통합되었다.


마야 (Māyā)


힌두교, 특히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 현상 세계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마야는 ‘속임수’, ‘환영’, ‘마술’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단순히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경험하는 이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세계가 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는 불가사의하고 규정 불가능한 (anirvacanīya) 힘이다.

샹카라는 밧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비유를 통해 마야를 설명한다. 밧줄이라는 유일한 실재 위에, 우리의 무지 (avidyā)가 뱀이라는 환영을 덧씌운 것처럼,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 위에 마야의 힘이 이 개별적인 이름과 형상을 가진 세계를 투사한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완전히 비실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험적으로는 존재하므로), 궁극적인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실재가 아니다 (브라흐만을 깨닫는 순간 사라지므로). 마야는 브라흐만과 분리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브라흐만이 가진 신비로운 힘 그 자체이다.


만달라 (Maṇḍala)


산스크리트어로 ‘원 (圓)’ 혹은 ‘중심’을 의미하며, 힌두교와 불교, 특히 탄트라와 금강승 전통에서 사용되는 우주의 본질과 신성한 질서를 상징하는 기하학적인 도상이다. 만달라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수행자가 명상을 통해 몰입하고 합일해야 할 깨달음의 세계, 즉 부처나 신들의 궁전을 2차원의 평면에 압축하여 표현한 우주적 지도이다. 일반적으로 만달라는 원과 사각형의 구조를 기본으로 하며, 중심에는 수행의 핵심이 되는 주존 (主尊)이 위치하고 동서남북 각 방위에는 다른 불보살이나 신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행자는 만달라를 시각화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관상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만달라 속의 신성한 공간과 동일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우주가 둘이 아니라는 비이원론적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만달라는 외부 세계를 모방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깨달음의 구조를 밖으로 드러낸 심리적 청사진이자, 의식을 변형시키는 강력한 도구이다.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Gītā)


‘거룩한 분의 노래’라는 뜻으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포함된 가장 중요하고도 널리 사랑받는 힌두교 경전이다. 이 경전은 쿠루크셰트라 전쟁터 한가운데서, 자신이 맞서 싸워야 할 적들이 사랑하는 친족과 스승임을 깨닫고 깊은 고뇌에 빠진 전사 아르주나와, 그의 마부로 변신한 최고신 크리슈나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아르주나의 실존적 절망에 대한 응답으로, 크리슈나는 베다의 제사주의적 길 (카르마 마르가), 우파니샤드의 지혜의 길 (즈나나 마르가), 그리고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길 (박티 마르가)이라는 힌두교의 세 가지 핵심적인 구원의 길을 종합하여 제시한다. 특히, 그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사회적 의무 (다르마)를 행위 자체를 위해 수행하라는 ‘카르마 요가’의 가르침을 통해, 세속적인 삶 속에서도 영적인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였다. 바가바드 기타는 특정 종파를 넘어 모든 힌두교인들에게 영적인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박티 (Bhakti)


‘참여하다’, ‘헌신하다’, ‘사랑하다’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로, 인격적인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구원 (해탈)에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베다의 복잡한 제사 의식이나 우파니샤드의 난해한 철학적 사유와는 달리, 박티의 길은 신분이나 성별, 학식에 관계없이 오직 신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장 대중적인 신앙 형태이다. 박티 수행자 (박타)는 신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연인, 부모, 친구로 여기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신의 이름을 노래하고 (키르탄), 신의 형상을 경배하며 (푸자), 자신의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봉헌으로 여긴다. 이러한 헌신 속에서 개인의 에고는 점차 녹아내리고, 마음은 오직 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라마누자와 같은 철학자들은 이 박티를 정교한 신학 체계로 발전시켰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자비와 보리심이 모든 중생을 향한 수평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신을 향한 수직적인 사랑을 그 핵심으로 한다.


베단타 (Vedānta)


‘베다의 끝’ 혹은 ‘베다의 궁극적인 지식’을 의미하며, 힌두교의 여섯 정통 철학 학파 (아스티카) 중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학파를 가리킨다. 베단타 철학은 베다 경전의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철학적 문헌인 우파니샤드 (Upaniṣad)의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학파의 근본적인 목표는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 (Brahman)과 개별적 자아인 아트만 (Ātman)의 본질과 그 관계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모든 고통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 (Mokṣa)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베단타 학파는 바다라야나 (Bādarāyaṇa)가 저술한 ‘브라흐마 수트라 (Brahma Sūtra)’를 공통된 근본 경전으로 삼지만, 이 경전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여러 하위 학파로 나뉜다. 가장 대표적인 학파는 샹카라 (Śaṅkara)가 체계화한 ‘불이일원론 (Advaita Vedānta)’이며, 그 외에도 라마누자 (Rāmānuja)의 ‘제한적 불이일원론 (Viśiṣṭādvaita Vedānta)’, 마드바 (Madhva)의 ‘이원론 (Dvaita Vedānta)’ 등이 있다. 이 학파들의 논쟁은 힌두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 흐름을 형성했다.


브라흐만 (Brahman)


힌두교, 특히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철학에서 사용하는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핵심 개념이다. ‘팽창하다’, ‘성장하다’는 의미의 어근에서 유래했으며,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포함하고 모든 것으로 확장해 나가는 절대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실재를 의미한다. 브라흐만은 이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마지막에는 자신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우주의 근원적인 바탕이자 유일한 실체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모든 그릇들의 본질이 흙이듯이, 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이름과 형상 (nāma-rūpa)의 궁극적인 본질은 바로 브라흐만이다. 베단타 철학은 브라흐만을 두 가지 측면, 즉 인간의 이해를 위해 속성을 부여한 ‘사구나 브라흐만 (Saguna Brahman)’과 그 모든 속성을 초월한 순수한 실재인 ‘니르구나 브라흐만 (Nirguṇa Brahman)’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파니샤드의 가장 위대한 선언은, 바로 이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나의 가장 깊은 본질인 아트만 (Ātman)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이일원론’).


브라흐마 (Brahmā)


힌두교의 주요 세 신 (트리무르티), 즉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Viṣṇu), 파괴의 신 시바 (Śiva) 중 창조를 담당하는 신이다. 그는 보통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팔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는 그가 사방을 관장하고 네 권의 베다 경전을 세상에 드러냈음을 상징한다. 신화에 따르면,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난 연꽃 속에서 스스로 태어났다. 그는 지혜의 여신 사라스바티를 배우자로 삼고 있다. 브라흐마는 우주의 창조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오늘날 힌두교에서는 비슈누나 시바만큼 대중적인 숭배를 받지는 못한다. 철학적 개념인 ‘브라흐만 (Brahman)’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브라흐만은 성별이 없는 중성 명사로서 우주적, 절대적 실재를 가리키는 반면, 브라흐마는 남성 명사로서 인격적인 창조신을 가리킨다. 브라흐마는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이 창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취한 모습, 즉 ‘사구나 브라흐만’의 한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마디 (Samādhi)


산스크리트어로 ‘함께 두다’, ‘완전한 몰입’을 의미하며,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의 명상 전통에서 수행의 가장 깊고 궁극적인 경지를 가리킨다.

요가 철학에서 사마디는 명상 (디야나)이 더욱 깊어져, 명상하는 자 (주관), 명상 행위 (과정), 그리고 명상의 대상 (객관)이라는 세 가지 구별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마음은 대상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마치 투명한 수정이 대상의 색깔을 그대로 비추듯 그 형태를 온전히 취하게 된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는, ‘내가 브라흐만이다’라는 명상이 깊어져 ‘내가 명상한다’는 미세한 이원성마저 사라지고, 오직 브라흐만이라는 단일하고 빛나는 의식만이 남게 되는 최종적인 깨달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순간, 수행자는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꿈 전체가 한꺼번에 사라지듯, 무지 (아비드야)와 그로 인해 비롯된 모든 현상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된 본성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모든 이원적 분별이 사라진 절대적인 평화와 지복의 상태이다.


샤브다 (śabda)


산스크리트어로 '소리' 또는 '언어'를 의미하는 핵심 개념이다. 인도 철학에서 이는 단순한 청각 현상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 진동이다. 베다 경전의 전통에서 샤브다는 브라흐만의 표현으로, 창조의 원천이 되는 영원한 소리이다. 미마사 학파는 샤브다를 지식의 주요 수단 (pramana)으로 보아 베다의 권위를 소리의 불변성에 둔다. 이는 말의 형태가 아니라 본질적인 울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법학자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샤브다를 마음의 산란 원인으로 지목하나, 동시에 명상의 대상으로 삼아 초월을 돕는다. 나야 학파에서는 샤브다가 증언의 증거로 작용하며 진리를 전달한다. 소리는 형태를 초월해 존재를 드러내는 힘이다. 샤브다는 언어가 어떻게 우주와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말의 무게를 일깨우며, 침묵 속에서도 울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한다. 이러한 이해는 일상을 넘어 영혼의 깊이를 더한다.


상캬 (Sāṃkhya)


힌두교의 여섯 정통 철학 학파 (아스티카) 중 가장 오래된 학파 중 하나로, 체계적인 이원론 (dualism) 철학을 특징으로 한다. ‘상캬’는 ‘숫자’ 혹은 ‘열거’를 의미하며, 이는 이 학파가 세계를 구성하는 25가지의 근본 원리 (타트바, tattva)를 체계적으로 열거하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상캬 철학에 따르면, 세계는 서로 독립적이고 영원하며 결코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개의 근본 실체, 즉 ‘푸루샤 (Puruṣa)’와 ‘프라크리티 (Prakṛti)’로 구성된다.

푸루샤는 순수한 의식 그 자체로서, 행위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관조자’이며, 무수히 많은 개별적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프라크리티는 의식이 없는 근원적인 ‘물질-에너지’로서, 사트바 (순수성), 라자스 (활동성), 타마스 (불활성)라는 세 가지의 힘 (구나, guṇa)으로 구성되며,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전개시키는 역동적인 실체이다. 인간의 고통은 순수한 의식인 푸루샤가 프라크리티의 활동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분별 없음 (aviveka)’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상캬의 해방 (카이발야)은 이 둘의 본질을 명확히 구별하는 ‘분별지 (viveka-jñāna)’를 통해, 푸루샤가 프라크리티로부터 자신의 본래적인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샹카라 (Śaṅkara)


8세기경 남인도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종교 개혁가로, 베단타 철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분파인 ‘불이일원론 (Advaita Vedānta)’을 체계화했다. 그는 당시 인도에 만연했던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흐름들을 통합하고 논박하며 힌두교의 새로운 지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철학의 핵심은,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 (Brahman)과 개별적 자아인 아트만 (Ātman)이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하다는 ‘불이 (둘이 아님)’의 진리이다. 샹카라에 따르면, 유일한 실재는 속성이 없는 순수한 존재, 의식, 환희 그 자체인 ‘니르구나 브라흐만’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다채로운 현상 세계는 브라흐만의 신비로운 힘인 마야 (Māyā)에 의해, 우리의 무지 (avidyā)가 유일한 실재 위에 덧씌운 환영과도 같다. 따라서 구원 (해탈)은 어떤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브라흐만이다 (Aham Brahmāsmi)’라는 진리를 지적인 탐구 (즈나나)와 명상을 통해 직접 깨닫고, 모든 이원적 분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는 인도 전역을 다니며 수많은 논쟁에서 승리하고 네 곳에 수도원 (마타)을 설립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스바루파 (svarūpa)


산스크리트어로 ‘자신의 형태’ 혹은 ‘고유한 본성’을 의미한다. 특히 마드바 (Madhva)의 이원론 철학에서, 각각의 개별 영혼 (jīva)이 태초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하고 영원한 본질을 가리키는 핵심 개념이다. 샹카라나 라마누자와 달리, 마드바는 모든 영혼이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으며, 각기 다른 스바루파에 따라 그 잠재력과 영적인 서열 (tāratamya), 그리고 궁극적인 운명이 영원히 다르다고 보았다.

마드바에게 해탈 (Mukti)이란, 신과의 합일을 통해 개별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스바루파를 아무런 장애 없이 완전히 발현하는 것이다. 이 깨달음 속에서 영혼은 자신이 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원한 종 (sevaka)임을 명확히 자각하며, 자신의 본성에 맞는 고유한 기쁨 (ānanda)을 누리게 된다. 한편, 발라바 (Vallabhācārya)의 철학에서는 신의 ‘본질적 형태’를 의미하기도 하며, 특히 신자들이 경배하는 신상 (Arcā)을 스바루파로 여기기도 한다.


아비드야 (Avidyā)


산스크리트어로 ‘무지 (無知)’ 혹은 ‘무명 (無明)’을 의미하며, 인도 철학의 거의 모든 학파에서 인간 고통과 윤회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 모른다’는 지식의 결핍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여 인식하는 적극적인 ‘착각’ 또는 ‘잘못된 앎’이다.

힌두교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 아비드야는 자신의 참된 본질인 아트만이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무지로 인해 우리는 영원하고 완전한 아트만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통받는 육체와 마음이라고 잘못 동일시하게 된다. 샹카라에게 이 아비드야는 마야 (Māyā)의 개인적인 측면이며, 우리가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 위에 이 다채로운 현상 세계라는 환영을 덧씌워보게 만드는 근원적인 힘이다.

불교에서 아비드야 (무명)는 모든 것이 무상 (無常), 고 (苦), 무아 (無我)라는 세 가지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고정불변하는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의 것’이 실재한다는 깊고 완고한 착각이 바로 아비드야이며, 이것이 모든 이기적인 갈애와 집착을 낳는 뿌리가 된다.

결국, 아비드야는 모든 영적 여정이 싸워야 할 최초이자 최후의 적이다. 구원, 즉 해탈이나 열반은 바로 이 무지의 장막을 지혜 (즈나나 혹은 반야)의 빛으로 걷어낼 때 비로소 성취된다.


아트만 (Ātman)


힌두교, 특히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개별적인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참된 ‘자아 (Self)’를 의미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육체, 감각, 마음, 그리고 생각의 흐름 너머에 존재하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파괴되지 않는 순수한 의식의 빛이다. 우리는 무지 (avidyā) 때문에 이 일시적인 육체와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바로 이 아트만이다. 우파니샤드의 가장 위대한 선언은, 바로 이 개별적 자아인 아트만이 우주적,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만 (Brahman)과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 (Tat tvam asi)’라는 명제는 이 ‘불이 (둘이 아님)’의 진리를 표현한다. 따라서 해탈은 자신의 참된 본질이 이 유한한 개인이 아니라, 우주 전체와 다르지 않은 영원한 아트만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영지주의의 ‘프네우마’가 신성의 ‘파편’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아트만은 ‘전체’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안타르야민 (Antaryāmin)


산스크리트어로 ‘내면의 지배자’를 의미하며, 모든 개별 영혼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하여 그 존재를 지탱하고 이끄는 신의 형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특히 라마누자 (Rāmānuja)의 비슈누파 신학에서, 최고신 비슈누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섯 가지 형태 중 하나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안타르야민은 외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내밀한 곳에 친구이자 증인, 그리고 안내자로서 거주하는 신의 가장 친밀한 모습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없이 지켜보며, 우리가 진리의 길을 향하도록 내면에서부터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영원한 동반자인 것이다.

요가 수행자들은 깊은 명상 속에서 바로 이 내면의 신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요가 (Yoga)


산스크리트어로 ‘결합’, ‘통합’을 의미하며,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영적 수행 체계와 철학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개별적 자아의식을 우주적 의식 (혹은 신)과 합일시켜, 모든 고통의 근원인 마음의 동요와 이원적 분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요가의 대가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를 ‘마음 작용의 소멸 (citta-vṛtti-nirodha)’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적, 개인적 윤리 (야마, 니야마)에서부터 신체적 자세 (아사나), 호흡 조절 (프라나야마), 감각 제어 (프라티아하라), 그리고 집중 (다라나), 명상 (디아나), 삼매 (사마디)에 이르는 여덟 단계의 체계적인 수행법 (아쉬탕가 요가)을 제시했다. 넓은 의미에서 요가는 행위를 통한 ‘카르마 요가’, 신에 대한 헌신을 통한 ‘박티 요가’, 지적인 탐구를 통한 ‘즈나나 요가’ 등 다양한 길을 포함한다. 이는 서양의 정신적 연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기술이다.


우파니샤드 (Upaniṣad)


힌두교의 근본 경전인 베다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철학적 문헌들의 총칭이다. ‘가까이 앉는다’는 의미를 가지며, 스승의 발치에 가까이 앉아 비밀리에 전수받는 심오한 지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베다의 앞부분이 주로 신들에 대한 찬가와 제사 의례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반면, 우파니샤드는 제사 의례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고, 더 나아가 우주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베다의 궁극적인 지식이라는 의미에서 ‘베단타 (Vedānta)’라고도 불린다. 우파니샤드의 핵심 사상은, 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만 (Brahman)’과, 개별적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참된 자아인 ‘아트만 (Ātman)’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통찰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유한하고 고통받는 존재라는 무지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완전한 해방 (모크샤)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이후 모든 힌두 철학 학파의 사상적 모태가 되었다.


즈나나 (Jñāna)


산스크리트어로 ‘앎’ 혹은 ‘지혜’를 의미하며, 특히 인도의 철학 전통에서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는 구원적 지혜를 가리킨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거나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 존재의 참된 본질에 대한 직접적이고 체험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힌두교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 즈나나는 나의 참된 자아인 아트만이 우주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는 ‘불이 (不二)’의 진리를 깨닫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즈나나를 얻기 위해 수행자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듣고 (슈라바나), 이성적으로 깊이 사유하며 (마나나), 끊임없이 명상 (니디드히아사나)해야 한다. 즈나나는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한한 육체와 마음이라는 잘못된 믿음, 즉 무지 (avidyā)의 장막을 걷어내는 과정이다.

영지주의의 ‘그노시스’가 외부로부터 오는 계시적 앎의 성격을 띠는 반면, 즈나나는 모든 존재에게 내재된 보편적인 진리를 스스로의 탐구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다.


지반묵타 (Jīvan-mukta)


산스크리트어로 ‘살아있는 해탈자’를 의미한다. 힌두교, 특히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 완전한 영적 해방 (모크샤)을 성취한 사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반묵타는 ‘내가 바로 브라흐만이다’라는 궁극의 진리를 직접 체험한 자로, 더 이상 자신을 유한한 육체나 마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를 속박하던 모든 카르마의 사슬은 끊어진 상태이다. 브라흐만에 대한 앎이라는 거대한 불꽃은 과거 생들로부터 쌓여온 막대한 양의 잠재적 카르마 (산치타 카르마)를 모두 태워버렸으며, 더 이상 ‘내가 행위한다’는 자아의식이 없으므로 새로운 카르마 (아가미 카르마) 또한 쌓이지 않는다.

다만, 이미 그 결과를 낳기 시작하여 현재의 이 육체를 태어나게 하고 유지시키는 ‘프라라브다 카르마’만이 남아 있다. 이는 마치 도공이 돌리는 것을 멈춘 뒤에도 관성에 의해 한동안 계속해서 도는 옹기그릇의 물레와 같다. 따라서 지반묵타는 세상 속에서 우리와 똑같이 먹고 말하며 활동하지만, 그의 내면은 어떤 것에도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고 늘 브라흐만의 평화 속에 머문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건을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듯 초연하게 지켜볼 뿐이다. 마침내 이 프라라-브다 카르마가 모두 소진되어 육체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는 ‘비데하묵티 (Videhamukti)’, 즉 육체 없는 완전한 해방을 성취하게 된다.


카르마 (Karma)


‘행위’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에서 비롯된 모든 종교와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우주적인 인과 법칙을 의미한다. 카르마의 법칙에 따르면, 개인이 행하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 행위의 도덕적 성질에 따라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 (즐거움 혹은 고통)를 행위자 자신에게 가져다준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조건은 과거의 나의 행위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이며, 현재 나의 모든 행위는 다시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원인이 된다. 이 법칙은 신의 심판에 의한 상벌이 아니라, 물리 법칙처럼 비인격적이고 예외 없이 작동하는 우주적 도덕률이다. 한 생애 동안 모든 카르마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카르마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육체를 받아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 (윤회)’의 개념과 연결된다. 구원의 길은 이 카르마의 인과 사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쿤달리니 (Kuṇḍalinī)


인도의 탄트라 요가 전통에서 사용하는 핵심 개념으로, 개별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무한한 우주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쿤달리니’는 ‘똬리를 튼 것’을 의미하며, 이 에너지는 척추 가장 아래에 있는 뿌리 차크라 (물라다라)에 세 바퀴 반을 감은 뱀의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묘사된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적 힘인 여신 샤크티 (Śakti)가 개별 인간 속에 현현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인간이 자신을 유한하고 고통받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신성한 힘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탄트라 요가 수행의 목표는 다양한 기법을 통해 이 잠자는 쿤달리니를 각성시켜, 척추의 중심 통로 (수슘나)를 따라 위로 상승시키는 것이다. 쿤달리니는 상승하면서 각각의 차크라를 차례로 꿰뚫고 지나가며 의식을 정화하고 변형시킨다. 마침내 그녀가 정수리의 최상 차크라에서 순수한 의식인 시바 (Śiva)와 재결합할 때, 수행자는 모든 이원성이 사라진 완전한 깨달음 (사마디)을 성취하게 된다.


크리슈나무르티, 지두 (Jiddu Krishnamurti, 1895-1986)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영적 스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도의 사상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 신지학 협회의 지도자들에게 ‘세계의 스승’이 임재할 매개체로 발탁되어 특별한 교육을 받았으나, 1929년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조직을 해산하고 독립적인 길을 선언했다. 그는 평생 동안 어떤 종교나 철학, 스승이나 권위에도 속하지 않고,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변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핵심 가르침은, 진리는 ‘길 없는 땅’이므로 어떤 조직이나 신념 체계, 수행 방법을 통해서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해방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지식과 경험, 즉 ‘알려진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그는 어떤 판단이나 선택 없이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선택 없는 자각’을 강조했다. 그는 인류의 모든 문제는 결국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적인 심리적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타파스 (Tapas)


산스크리트어로 ‘태우다’ 또는 ‘뜨겁게 하다’는 의미의 어근 ‘tap’에서 유래한 단어로, 힌두 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이는 단순히 ‘고행’이나 ‘금욕’으로 번역될 수 없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 근본적인 이미지는 ‘내면의 불꽃’이다. 이 불꽃은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 자기 수련과 절제를 통해 욕망, 분노, 게으름과 같은 몸과 마음의 불순물을 태워 없애는 정화 (Purification)의 과정이다. 『요가 수트라』에서 타파스는 마음을 정화하여 더 깊은 명상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실천 (니야마) 중 하나로 제시된다. 그러나 타파스는 개인의 정화를 넘어, 베다와 푸라나 신화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적인 동력으로 묘사되는 창조적 에너지 (Creative Energy)이기도 하다.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오랜 시간 타파스에 몰두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무한한 창조적 잠재력을 지닌 우주적 에너지임을 보여준다. 또한, 신화 속에서 현자나 악마들은 혹독한 타파스를 통해 신들조차 두려워할 만한 강력한 힘, 즉 싯디 (Siddhi)를 얻게 되는데, 이는 타파스가 개인의 의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초인적인 영적인 힘 (Spiritual Power)을 축적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타파스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나 금욕을 넘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차원의 의식과 힘을 얻으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을 상징한다. 그것은 내면의 불꽃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변형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탄트라 (Tantra)


‘씨실’ 혹은 ‘확장’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서기 수세기에 걸쳐 인도에서 발전한 광범위하고 복잡한 영적 사상 및 수행 체계를 가리킨다. 탄트라는 육체와 감각, 그리고 이 세계 자체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깨달음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신성한 도구로 여기는 혁명적인 세계관을 특징으로 한다. 소우주인 인간과 대우주인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비이원론적 직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몸을 우주 전체의 지도로 보는 정교한 ‘몸-우주론’을 발전시켰다. 탄트라 수행은 억압된 욕망의 에너지를 변용시켜 깨달음의 동력으로 삼는 ‘이독제독’의 원리를 사용하며, 만트라, 만달라, 무드라, 그리고 복잡한 시각화 명상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기술을 핵심으로 한다. 힌두 탄트라는 시바와 샤크티의 합일을, 불교 탄트라 (금강승)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추구하는 등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며, 쿤달리니 요가는 힌두 탄트라의 가장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파탄잘리 (Patañjali)


고대 인도의 현자로, 힌두교의 여섯 정통 철학 학파 중 하나인 요가 학파의 근본 경전인 ‘요가 수트라 (Yoga Sūtra)’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사이의 인물로 추정된다. 파탄잘리는 요가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가르침들을 196개의 간결한 경구 (수트라) 형식으로 집대성하여, 요가 철학과 수행의 이론적 토대를 체계적으로 확립했다. 그는 요가를 ‘마음 작용의 소멸’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여덟 단계의 실천적인 길, 즉 ‘아쉬탕가 요가’를 제시했다. 그의 ‘요가 수트라’는 마음의 본질, 고통의 원인, 그리고 삼매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심오한 심리학적 분석을 담고 있으며, 이후 모든 고전 요가 전통의 가장 권위 있는 교과서가 되었다. 그는 요가를 상캬 학파의 이원론적 형이상학 위에 세웠지만,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독자적인 학파를 이루었다.


푸루샤 (Puruṣa)


산스크리트어로 ‘인간’, ‘사람’, ‘정신’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힌두 사상의 흐름에 따라 매우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핵심 개념이다. 힌두교의 이원론 철학인 상캬 (Sāṃkhya) 학파에서, 푸루샤는 세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근본 실체 중 하나로, 순수한 ‘의식 (cit)’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활동도, 변화도, 속성도 갖지 않는 영원한 ‘관조자 (sākṣin)’이며, 근원적인 물질-에너지인 ‘프라크리티 (Prakṛti)’의 모든 활동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상캬에 따르면, 푸루샤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개별적인 의식의 중심들로 존재한다. 인간의 고통은 이 순수한 의식인 푸루샤가 프라크리티의 산물인 육체와 마음의 활동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베다의 찬가인 ‘푸루샤 숙타’에서는 푸루샤가 우주 전체를 창조한 태초의 ‘우주 인간 (Cosmic Man)’으로 묘사된다. 신들은 이 거대한 푸루샤를 희생 제물로 삼아 그의 몸을 나누었으며, 그의 각 신체 부위로부터 태양과 달,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사회의 네 계급이 생겨났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푸루샤는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순수 의식을,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 전체의 근원인 거대한 인격을 상징한다.


프라크리티 (prakṛti)


산스크리트어로 ‘근원 물질’ 혹은 ‘자연’을 의미하며, 힌두교의 이원론 철학인 상캬 (Sāṃkhya) 학파의 핵심 개념이다. 프라크리티는 순수한 의식 그 자체인 ‘푸루샤 (Puruṣa)’와 대립하는, 우주의 또 다른 영원한 실체이다. 푸루샤가 변하지 않는 순수한 ‘관조자’라면, 프라크리티는 의식이 없으며 (acit) 끊임없이 활동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물질-에너지’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 세계, 즉 지성 (buddhi), 자아의식 (ahaṃkāra), 마음 (manas)에서부터 우리가 보는 산과 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이 단 하나의 프라크리티에서 전개되어 나온 것들이다. 프라크리티는 세 가지의 근원적인 힘 또는 성질, 즉 구나 (Guṇa)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조화, 순수, 밝음, 지혜, 즐거움을 드러내는 힘인 사트바 (sattva), 둘째는 활동, 격정, 움직임, 욕망, 고통을 일으키는 힘인 라자스 (rajas), 셋째는 무거움, 어둠, 나태, 무지를 낳는 힘인 타마스 (tamas)이다. 창조 이전의 상태에서는 이 세 가지 구나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푸루샤의 현존이라는 계기로 인해 이 균형이 깨지면서 프라크리티는 자신으로부터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차례로 펼쳐 보인다. 인간의 고통은 순수한 의식인 푸루샤가 프라크리티의 산물인 육체와 마음의 활동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분별 없음 (aviveka)’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캬 철학에서 해탈이란, 이 프라크리티의 모든 변화와 활동이 ‘나’가 아님을 명확히 구별하는 지혜를 통해, 푸루샤가 자신의 본래적인 독립성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환생 (Reincarnation, 윤회, Saṃsāra)


영혼이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육체를 받아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사상이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 모든 인도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세계관이다. 이 끝없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의 순환 과정은 ‘윤회 (saṃsāra)’라고 불린다. 무엇으로, 어디에 다시 태어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카르마’의 법칙이다. 즉, 개인이 전생과 현생에 걸쳐 쌓은 행위의 총합이 다음 생의 조건, 즉 부모, 환경, 재능, 운명 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윤회의 바퀴는 근본적으로 고통 (두카)으로 간주되며, 모든 인도 사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윤회의 순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더 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 즉 해탈 (모크샤) 혹은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다. 헬레나 블라바츠키의 신지학은 이 환생 사상을 서구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이를 영혼이 점진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으로 재해석했다.











부록 2: 참고 문헌


Dasgupta, S. (1922-1955). 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Vols. 1-5). Cambridge University Press.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의 ‘인도 철학사’ 5권은 20세기 인도 철학 연구의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 저작이다. 이 책은 서양 학문의 엄밀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원전 문헌들을 섭렵하여 인도 사상의 전개를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힌두교의 여섯 정통 학파와 불교, 자이나교는 물론, 후대의 다양한 종파 철학까지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다스굽타의 서술은 단순한 사상의 요약을 넘어, 각 학파의 미묘한 논쟁 지점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심도 있게 파고드는 학술적 깊이를 자랑한다. 분량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입문서로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인도 사상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가장 상세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자나 심화 학습자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필독서이자 최종적인 참조점이다.


Radhakrishnan, S. (1953). The Principal Upanishads. George Allen & Unwin.


20세기 인도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대통령이었던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의 ‘주요 우파니샤드’는 힌두 철학의 정수인 우파니샤드를 현대 세계에 소개한 고전적인 명저이다. 이 책에서 라다크리슈난은 주요 우파니샤드 문헌들을 유려한 영어로 번역하고, 각 구절의 의미를 풀어내는 깊이 있는 철학적 주해를 덧붙였다. 특히 그의 방대한 서문은 우파니샤드의 핵심 사상인 브라흐만과 아트만 등의 개념을 서양 철학과 비교하며 그 보편적 의미를 조명한다. 그의 해설은 단순한 문헌학적 분석을 넘어, 고대의 지혜가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깊은 통찰로 가득하다. 이 책은 현대 독자들이 우파니샤드의 난해하고 상징적인 언어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철학적 정수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내서이다.


Radhakrishnan, S. (1948). The Bhagavadgītā. George Allen & Unwin.


라다크리슈난의 ‘바가바드 기타’는 그의 ‘주요 우파니샤드’와 더불어 힌두 경전을 현대 세계에 소개한 가장 영향력 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바가바드 기타가 담고 있는 심오한 지혜를 인류를 위한 보편적인 삶의 지침서로 풀어낸 역작이다. 라다크리슈난은 방대한 서문과 상세한 주해를 통해 기타의 핵심 가르침, 즉 행위의 요가, 헌신의 요가, 지혜의 요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의 해설은 기타의 가르침을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와 윤리적 딜레마에 연결시켜, 세속적인 삶 속에서도 어떻게 영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바가바드 기타를 처음 접하는 독자와 깊이 연구하려는 학자 모두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저작이다.


Chatterjee, S., & Datta, D. (1939). An Introduction to Indian Philosophy. University of Calcutta.


사티쉬찬드라 차테르지와 디렌드라모한 다타가 공동으로 저술한 ‘인도 철학 입문’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의 대학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인도 철학 입문서의 고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명료하고 체계적인 서술 방식에 있다. 저자들은 복잡하고 방대한 인도 사상의 흐름을 각 학파별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각 학파의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의 핵심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한다. 정통 힌두 철학의 여섯 학파는 물론, 비정통 학파인 차르바카, 불교, 자이나교의 사상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충실하게 다룬다. 처음 인도 사상을 접하는 학생이나 일반 독자에게 가장 적합한 필독서이며, 인도 철학의 전체적인 지도를 그리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안내서를 찾기는 어렵다.


Zimmer, H. (1951). Philosophies of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하인리히 짐머의 ‘인도의 철학들’은 전통적인 서양의 철학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신화와 상징,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인도 사상의 깊은 차원을 탐구하는 독창적인 저작이다. 짐머는 인도의 지혜가 단순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철학 체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신화와 이야기 속에 그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는 시간의 바퀴, 윤회, 그리고 해탈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을 서양인에게는 낯설지만 인도인에게는 친숙한 신과 여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이 책은 힌두교의 정통 철학뿐만 아니라 자이나교와 불교의 세계관까지 아우르며, 그들의 공통된 목표가 결국 유한한 삶의 고통을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준다. 짐머의 서술은 학문적 분석을 넘어, 독자를 인도의 상상력과 영성이 빚어낸 거대한 신화의 세계로 직접 초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도 사상을 이성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독서이다.


Eliade, M. (1958). Yoga: Immortality and Freedo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학자 중 한 명인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요가: 불멸과 자유’는 요가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수행법을 다룬 가장 권위 있고 포괄적인 연구서이다. 엘리아데는 요가를 단순한 신체 단련법이나 명상 기술로 보지 않고, 인간이 시간과 조건의 속박을 넘어 절대적인 자유를 성취하려는 보편적인 영적 갈망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그는 파탄잘리의 고전 요가부터 탄트라, 연금술, 그리고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인도 역사에 나타난 거의 모든 형태의 요가적 전통을 섭렵한다. 그는 방대한 문헌 연구와 비교 종교학적 통찰을 통해, 이 다양한 길들이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양태를 바꾸려는’ 하나의 목표, 즉 필멸의 인간 존재에서 불멸의 신성한 존재로 변형되려는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요가의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압도적인 역작이다.


Flood, G. (1996). An Introduction to Hindu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개빈 플러드의 ‘힌두교 입문’은 현대 힌두교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가장 표준적이고 균형 잡힌 입문서로 꼽힌다. 이 책은 힌두교를 단일한 종교 체계로 보지 않고, 베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온 다양하고 복합적인 ‘전통들의 집합’으로 접근한다. 플러드는 고대 베다 종교, 우파니샤드의 철학, 비슈누파와 시바파 같은 주요 신앙 전통, 여신 숭배, 탄트라, 그리고 사회 제도인 카스트와 인생의 네 단계 (아슈라마)에 이르기까지 힌두교의 거의 모든 측면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그는 각각의 전통이 가진 고유한 역사와 신학, 그리고 실천을 명료하게 설명하면서도, 그 모든 흐름을 관통하는 다르마, 카르마, 윤회와 같은 공통된 주제들을 놓치지 않는다.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역사적, 인류학적 접근을 결합한 이 책은 힌두교라는 거대한 세계를 처음 탐험하는 이들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Deutsch, E. (1969). Advaita Vedānta: A Philosophical Reconstruction. University of Hawaii Press.


엘리엇 도이치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적 재구성’은 샹카라의 불이일원론 철학을 현대 분석철학의 엄밀한 방법론을 통해 명료하게 해설한 매우 독창적이고 압축적인 저작이다. 이 책은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설명을 최소화하고,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핵심 개념들, 즉 브라흐만, 아트만, 마야, 무지 (아비드야), 그리고 해탈을 순수한 철학적 논증의 대상으로 삼는다. 도이치는 샹카라의 형이상학, 인식론, 그리고 가치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그것이 어떻게 일관된 하나의 철학 체계를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는 ‘마야’의 개념을 존재론적 환영이 아니라, 언어와 개념이 실재를 파악하는 방식에 내재된 인식론적 한계로 재해석하는 등 현대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분량은 적지만 그 내용은 매우 밀도가 높으며, 샹카라 철학의 논리적 구조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도들에게 가장 탁월한 안내서 중 하나이다.


Guénon, R. (1921). Man and His Becoming according to the Vedānta. Sophia Perennis.


르네 게농의 ‘베단타에 따른 인간과 그의 생성’은 전통주의 학파의 관점에서 힌두 베단타 철학의 내적인, 비의적 의미를 해설한 저작이다. 게농은 베단타를 단순히 여러 철학 학파 중 하나로 보지 않고, 인류의 ‘원초적 전통’의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인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는 서양 철학의 언어와 개념을 사용하여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 존재의 다층적 상태, 그리고 윤회와 해탈의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접근 방식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베단타의 가르침을 통해 현대 서구 문명이 잃어버린 형이상학적 진리를 복원하려는 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베단타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상태를 넘어 무한한 ‘보편적 인간’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실제적인 길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베단타 철학을 영원의 철학이라는 더 넓은 지평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독특하고 심오한 관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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