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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입을 다물고 뜸 들이는 훈련하기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보기

by 김태경

20대 시절엔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 같다.

하루 일과 중 매일 10시간가량을 회사에서 보내던 시절, 야근 수당이나 주말 수당 따위는 없던 그 시절, 마음 맞는 동료와 말도 많이 하고 밥도 많이 먹고 회사가 집인양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 입사 후 5년 정도가 되면 마치 다 아는 양 온갖 잘난 행세를 하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나는 그런 무리의 선두 그룹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오류를 발견하면 지적하는데 지체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목소리를 높였다.


재직 20년이 가까이 되니 예전 같지 않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궁리하며 생각하는데 시간을 제법 소요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직원들에게 당장이라도 업무 지시를 하려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려사항들이 나타나 아이디어에 들러붙는다. 그러면 다시 생각을 다듬어서 생각난 아이디어를 구현할 틀걸이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 틀걸이는 직원들의 업무 방식과 연결되고, 각 과업들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해 주며, 업무 방식과 일정을 자연스럽게 토해낸다. 이렇게 혼자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시작된 일은 점차 가지가 쳐져 종이에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직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업무분장을 조정하기도 하고, 상사에게 내 머릿속 틀걸이를 꺼내 의견을 묻고 들으며 때론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때론 틀걸이 일부를 수정하기도 한다. 아마도 20년 가까이 일하며 중간관리자의 역할에 이골이 난 탓도 있을 것이고, 관계, 업무분장 등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시행착오의 결과일 것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 되는 큰 잘못을 한 직원이 있다. 지금보다 더 철없었던 옛날이라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의 잘못을 탓하며 비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가 왜 그 지경까지 갔는지 생각하며 한숨 쉬고, 회사가 그 같은 직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생각이 미친다.

무엇보다 점차 입이 다물어진다는 것이 요상하다. 사람에 대한 말을 옮기지 않고, 감정적인 말은 자제하며, 사람들 속에서 흘러 다니는 말은 듣되 종합적 판단을 위한 레퍼런스로 참고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커진다.

혹여나 알게 된 중요 정보도 입 밖으로 내지 말자 다짐하게 된다. 보고 들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흩날린다. 지나치게 나를 괴롭히는 이벤트가 아니라면 억지로 억지로 정리하여 들지 말고 머릿속을 떠다니게 당분간 둔다. 대부분의 일은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객관화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시간에 쫓기는 자 같이 굴지 않고, 세상의 비밀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노라 마음먹고 나면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치 다 자란 어른 같고 어른 중에서도 꽤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순간적 번뜩임과 잠시 마주하게 된다. 이 마주함을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드는데, 나는 그걸 뜸 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과 어려움을 입 밖으로 계속 내뱉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을 다물고 잠시동안이라도 침묵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복잡 요란하고 시끄러운 일상 속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침묵을 택해 보는 것, 내 머리와 마음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차 있는지를 차분히 생각해 보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자라면 응당 해야 할 일 같다. 터진 입이라도 하고 싶은 말 다 내뱉고, 기분 상하고 더럽다고 몇 시간째 술만 쳐 마시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맨 정신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입은 다문채로 뜸을 들여보는 거다.

그럼 뭔가 달라진다. 내 방정맞음과 가벼움, 참을 수 없이 끼어들어 아는 척을 기어이 해야 하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참아 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봐 보자는 말이다.

나는 이 뜸 들이기 훈련에 도움을 받고 있다. 관계에서도, 내 감정을 정리하는 데도..

나를 위한 쇼핑, 자기애 가득한 위로, 육체의 쉼을 위한 널브러짐도 필요하지만 그건 잠시 뿐이다.

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싶다면 잠시 침묵을 택해서 뜸 들이기 훈련에 시간을 할애해 보길 추천한다.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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