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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중심을 잘 잡으며 내 몫을 해내보기로 했다.

복직하고 한 달이 지나서..

by 김태경

40대 중반, 18년 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두 아이의 엄마, 출산 휴가 아이당 90일씩 2번을 제외하곤 쉼 없이 일해왔다. 큰맘 먹고 둘째 아이가 10살 되던 해 육아휴직 하겠노라 회사에 통보 비슷한 걸 하고 집에 들어앉았었다. 저출산 해소한다며 육아휴직 급여를 사상 최대로 높인 국가 제도 혜택을 누리며 인생 처음으로 근심걱정 없는 호사의 나날을 누렸었다. 다 큰 아이들 등교하면 찾아오는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은 바쁘게 열심히 살았던 내 지난 시간을 반성하게 해 줬고, 오직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살림꾼으로의 내 모습을 꺼내 주었다. 한적한 도서관에서 앉아 책을 읽고 있노라면 특별한 줄 몰라던 햇빛이 이토록 따듯할 수가 없다. 나 홀로 인왕산 숲 속 카페에 앉아 새소리 곁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온 천하가 내 것이 할 만큼 남 부러울 것 없었다. 이토록 편안해던 적이 있었나 싶다. 알고 보니 호사라는 게 별게 아니었다.


휴직 10개월째를 맞이할 때쯤 회사로부터 복직 명령(?)을 받았고 지금은 다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9개월 전까지 40년을 넘게 살았던 나와 그 9개월을 지나온 나는 약간 달라져 있었다.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야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자 하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았다. 평생 생계를 위해 휴직은 엄두도 못 내는 대부분의 남편들에게, 휴직 따윈 언감생심인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들에게 빚진 마음이 약간 들었다. 그래서 더욱 휴직 9개월이 의미 없지 않았기를 기대했다.


복직하고 한 달이 지났다. 내 삶은 이전과 달라졌을까?

지난 15년 동안 빌렸던 친정엄마의 살림손과 육아손이 종료되었다. 그래서 복직 후에도 집안 살림은 여전히 휴직 때와 같이 내 몫이었다. 남편 아침밥을 대충이라도 차려야 하고, 아이들 아침 먹여 학교 보내고, 퇴근 후에는 저녁밥을 해야 한다. 빨래도 일주일에 3번은 해야 하고 반찬거리도 샤야 한다. 10살 둘째 아이는 하교 후 운동 학원에 갔다가 혼자서 집으로 귀가하고, 내가 오기까지 2~3시간은 혼자 있어야 한다. 몇 달 전 시작한 호사스러움의 최고라 할 만한 한강변 나 혼자러닝은 이제 평일엔 어림도 없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복직시기가 연말이다. 내년 준비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어내야 하는 바쁜 시기. 내가 복직한 부서는 일종의 문제 덩어리였다.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비난하고 있는 부서였다.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줄 줄이었다. 휴직 전 보다 내 업무 영역이 넓어진 대신 권한의 영역도 커졌다. '네가 돌아왔으니 이제 해결이 좀 되겠구나'하는 복직 인사는 내게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제야 워킹맘의 고됨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애들은 집에 왔나, 저녁은 뭐 해 먹어야 하나, 내일 아침 반찬은 뭘 해야 하나 궁리가 연속이다. 저녁 6시 땡 하면 사무실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뛴다. 집에 혼자서 기다리고 있을 둘째 아이에게 얼른 도달하기 위해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8시 30분까지의 루틴을 만들었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6시 40분부터 대략 8시까지 집안일을 끝내는 루틴도 연습 중이다.

업무 파악을 위해 일주일에 3번은 노트북을 끼고 퇴근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일과가 끝나면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을 들여다본다. 밀린 결제를 하고 일정을 정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머릿속에 펼쳐 놓는다.


그래서 머릿속이 꽉 찬 느낌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졌다. 휴직 전에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믿고 '회사일' 쪽이 무게를 두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노트북과 동반퇴근하는 날 수를 줄여 나가고 있고, 주말에는 일 생각을 밀어낸다. 주말 아침엔 침묵이 가능한 30분 러닝을 나 혼자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 한 달간 미뤄왔던 글쓰기도 이제야 다시 시작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스트레스가 내 삶 전체를 망치게 둘 순 없다. 다사다난한 회사지만 월급값에 부응하는 직장인, 맛있는 것 해 주고 따듯하게 맞아주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 모두가 내 삶이고 내 몫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모든 역할을 나름 잘해 내려면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나를 위해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행운이다.

나의 상태를 나 스스로 점검하는 나만의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 것 역시 축복이다.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며 신세 한탄하는 것만큼 세상 미련하고 바보짓은 없다.

나를 위해 좋은 것이 나만 좋은 것이어서도 안 된다. 나를 위해 좋은 것은 내 삶의 장면 장면에,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의미가 참이 된다.


지난 9개월 휴직은 내게 아직까지 좋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단 9개월의 휴직'이 아니라 '휴직이 9개월이라도'라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그러니 다소 얼마간의 휴식은 휴식을 넘어 안식이 되는 셈이다. 휴직하며 배웠던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 부디 3개월, 6개월, 1년, 그리고 계속 효과적이길 바란다.


내 인생은 내 몫이지 않나. 상황이 어떻든, 내 몫은 해 내는 건 언제나 나뿐이다.

바르고 선하게,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로 내 인생의 몫을 다 해 보련다.

내일 월요일이네. 푸념, 한탄, 불평 꾹꾹 누르고 다시 소소하고 사사로운 인생 모험 속으로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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