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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커가는 과정이 중요한 건지, 커서 맞이할 사회에 맞춰야 하는 것인지..

by 김태경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회사에서는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열심히만 할 뿐 잘하지 못하는 직원은 난감하다. 게다가 착하기까지 하면 더 측은하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하는 직원이 있다. 기본 일머리가 있고, 눈치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 최소 50%는 그냥 따로 들어가는 셈이다. 잘하는 사람이 착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일은 잘하는데 성격이 모질고 재수 없으면 그것 역시 난처하다.


그럼 중학생 내 아들에게는 뭐가 더 중요할까.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줄이고 나 홀로 공부시간을 만들어 초열공하는 아이,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 대신 시험 성적 잘 나오면 그 아이는 '잘하는' 아이가 된다. 열심히 공부는 하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도 있다. '열심'의 수준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이 아이 입장에서는 최대의 열심이었다고 치자. 성적이 아주 나쁘지 않음에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명제를 스스로 검증하지는 못한다.

평균 90점을 넘으면 일렉 기타를 사기로 했던 아들은 끝내 90점을 넘지 못했다. 본인이 내건 조건에 미달되고 만 아이는 기타 얘기는 안 꺼내는데 표정과 온 몸이 시무룩하다.

나름 열심히 했고, 퇴근하고 집에 온 엄마가 잠을 미루며 시험준비를 도와주었건만 하필 엄마가 도와준 과목점수가 잘 안 나온 게 영 미안한 눈치다. 계속 엄마 곁을 맴돈다.


아장아장 아기 때는 내 품에 두고 안아주고 먹여주고 놀아주면 된다. 엄마가 육체적으로 고될지는 몰라도 세상에 맞설 필요는 없다.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중인 중학생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다르다. 세상 사람들 속 우뚝 서서 자기 발로 걸어가게 해야 하니 그 아이의 생각, 아이의 사람들, 아이의 취향을 온전하게 마주하며 수용해야 한다. 지난 15년간 내가 어떤 부모였는지를 채점당하는 기분도 간혹 든다. 가장 어려운 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때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이 흔들릴 때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성적이 안 좋다는 말을 듣고는 속이 상해 왔다. 뭔지 모를 찝찝하고 알싸한 기분이 지속되었다. 기분 탓인지 다시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고 열심히 하게 하면 될 거라는 자기 위로와 다짐이 막 생겨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막 굴리기 시작한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말이다. 아이가 알면 까무러칠만한 장황한 공부 계획을 풀어놓으려다가 집에 와서 쭈빗쭈빗 거리며 시험이 어려웠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책상에 놓여 있는 풀이로 빽빽한 시험지를 보니 아이가 안쓰러워 공부 계획을 싹 다 접어 버리고 안아 버리고 말았다.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되지, 열심히 공부했잖아. 잘했어. 이쁜 내 아들"


이제 고작 15살, 열심히 하는 아이가 언젠가 잘하게 되고, 혹여 잘해 내지 못하는 열심이었더라도 그 열심만으로 격려받으며 자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바람이 담긴 내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까.. 엄마 아빠 말고 열심히 했으니 괜찮다. 잘했다. 말해줄 사람이 또 있을까 이 세상에.. 씁쓸하다. 그래서 공부, 공부, 공부하는가 보다.

그렇게 공부 지긋지긋하다 하며 자랐으면서 왜 그렇게 다들 공부공부 할까. 나라고 뭐 다를까 싶지만, 시험 성적 앞에 시무룩해하는 아이를 보니 공부가 가장 쉬운 길인데 너는 왜 못하냐 나무랄 수가 없었다.


혹시 나도 열심만 있고, 마음 여리고 착해빠지기만 한 엄마인 건 아니겠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엄마가 아니라 말이다.

아이고 참. 많고 많은 것 중에 '공부' 그거 하나 잘하지 못하는 것뿐인데, 그리고 앞으로 치를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두룩 빽빽인데 그 시험 하나로 이렇게 심각해 지다니..

문제다 문제. 나도 문제고 우리나라 교육도 문제고 사회도 문제고 학교도 문제고.. 정작 내 아이는 문제가 없이 잘 자라고 있는데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마음 가는 대로 하련다.

시무룩한 아이 웃을 일 만들어 주고, 괜찮다 말해주며 맛있는 것 먹으러 데리고 나가고 나들이나 같이 가련다.

잘하지 못한다고 열심마저 포기하는 인간으로 살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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