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페인>을 보고
어느 한 날, 한 공간에 있었던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살 아이는 엄마 휴대폰으로 냥코 게임을 너무 하고 싶은데 그전에 숙제부터 끝내야 한다.
학교에서 친구가 일러준 이벤트가 곧 끝날지도 모르는데 숙제를 하고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짜증 나고 불편하고 싫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엄마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15살 아이는 엔믹스 팬미팅 티켓을 예약하기는 했는데 2층이 되어 버렸다. 1층이 더 잘 보이는데 순간적으로 마우스를 잘못 눌러 놓쳤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일반 예약창이 열려 기회가 있다면 다시 1층을 도전해야 하는지 아니면 2층 좀 더 좋은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 재티켓팅을 위해 피시방을 가야 하는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러니까 내 손가락은 왜 실수를 가지고 내게 이런 고뇌를 준단 말인가.
이 아이들의 엄마는 친정아버지의 병원 검진 결과를 방금 들었다. 지난번보다 종양의 크기가 약간 커졌다고 한다. 증상 없으니 본인은 괜찮다 하시는데 마음이 찝찝하고 심란하다.
위의 세 사람이 겪는 심적 고통 중에 무엇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을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두 사람(아이 두 명)이 겪는 심적 어려움은 어떻게 취급받아야 하는가...
영화 <리얼 페인(REAL PAIN)>은 제목과는 다르게 표면적인 고통이 연출되는 영화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촌 형제 벤지와 데이비드는 6개월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향 폴란드로 홀로코스트 여행을 떠났다.
할머니는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던 시대를 사신 유대인이셨다. 폴란드에 살던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모든 자식들은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자손들은 할머니의 뿌리를 기억하고 있다.
벤지와 데이비드는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 학살 수용소와 유대인의 묘지, 폴란드 내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 등을 방문하며 할머니를 삶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중이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관계를 보여준다.
첫째는, 벤지와 데이비드.
둘은 할머니 품에서 함께 자란 친형제 같은 관계이다. 하지만 강박적이고 이성적인 완전 T성향의 데이비드와 달리 벤지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다. 어느 쪽이 더 나쁘고 좋고는 없다.
데이비드는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강박증으로 매일 약을 먹고 있고, 아무도 안 불편한 상황에서 혼자 불편한 감정을 계속 느껴야 한다. 그런 데이비드는 너무 감정적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인기가 많은 벤지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벤지도 삶이 녹록지 않다.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대마초를 피우고, 변변한 직업도 없으며, 얼마 전에는 수면제로 자살 시도를 했었다. 기차를 타고 유대인 수용소에 가는 동안 일등석에 앉은 동행들을 급비난하는 모두를 불편하게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사람들의 동조를 얻기도 한다.
두 번째는, 그들이 함께 이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벤지와 데이비드를 포함해서 4팀이 함께 여행을 다닌다.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생존자, 유대인 학살 당시 생존자를 어머니로 둔 방금 이혼한 중년의 여성, 은퇴한 유대인 부부, 그리고 유대인과 전혀 상관없는 영국인 가이드이다.
각자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수용소와 마을을 둘러보며 웃었다가 위로했다가 기다렸다가 다퉜다가를 반복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벤지와 데이비드를 중심으로 홀로코스트 투어를 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제노사이드 생존자가 있다고 해서 현재 벤지가 느끼는 삶의 어려움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고,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아픔이 생생하다고 하더라도 데이비드가 느끼는 강박적 일상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거라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여행이 모두 끝난 후 공항에서 사람 구경을 하겠다며 혼자 멀뚱히 앉아 있는 벤지의 표정 속에서 그가 마주하고 다투고 있는 고통이 전해질뿐이다. 벤지뿐 아니라 데이비드도 가이드도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처한 다양한 어려운 감정과 상황 속에서 다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상을 보며, 한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거 봐, 아프리카에 저 아이는 저렇게 가난하고 먹지도 못하고 아파도 병원도 못 가고 있어.
너는 얼마나 행복하니? 엄마 아빠가 먹을 거 다 사주고 입혀주고 병원도 데려가고. 감사한 줄 알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영상은 엄마 아빠의 훈계를 바라고 제작된 것이 아닐 것이고,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아이보다 더 나은 환경에 살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지금 모든 상황을 '행복한 줄 아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한 용도도 아닐 것이다.
영화는 누구의 고통이 더 크고 아프다고 떠들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벤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형제이고 다투더라도 그에 대한 걱정을 그가 즐기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전달한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안아주고 들어주고 함께 식사를 한다. 약속 시간마다 늦는 벤지를 타박하지도 않으며 그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준다.
아무도 누군가의 고통이 가장 크다, 작다를 말할 수 없다.
모두 자기 자신이 처한 현재의 고통이 가장 큰 법이다.
리얼 페인은 온전히 나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니 재단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짐작해 주고 귀 기울여주는 건 어떨까
네가 갖고 있는 고통은 쓸데없고 한심한 것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저 아무 말 안 하고 있어 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잠시 고통을 내려놓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고통 속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으면
다른 이에게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있을 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고통을 줄 세워서 보지 말고, '그 사람'의 고통으로 이해하다 보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차례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