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을 보고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은 물맷돌로 거인 골리앗을 한방에 쓰러뜨린 구국의 영웅이다.
성경은 많은 분량을 다윗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기 속 별은 다윗의 별을 의미하기까지 할 만큼 그의 존재감은 지금까지도 막강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생의 가슴 아픈 고통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일 것이다.
압살롬은 생각했다.
'누가 나를 이 나라의 재판관으로 세워 주기만 하면 누구든지 소송 문제가 있을 때에 나를 찾아오면 내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텐데..(사무엘하 15장, 새 번역)'
아들의 반란으로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도망을 쳤고, 숨어 지내던 중 신하들이 가져온 기쁜 소식 즉,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목놓아 슬피 울부짖는다.
조선왕조 최초 쿠데타였던 계유정난은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왕위에 있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으로 등극한 사건이다.
수양대군은 정치적으로 가장 평화롭고, 문화적으로 학문적으로 가장 융성했던, 후손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역사 속 인물인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수양은 형 문종이 일찍 죽자 12살짜리 어린 조카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것 같았는지 조카 보호자 자리를 버리고 조카를 죽여 스스로 왕이 되었다.
세종대왕 역시 다윗처럼 땅 속에서 목놓아 슬피 울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도 쿠데타 급의 일들은 일어난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자식이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그래!"를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잘 사귀던 연인이 어느 날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미안해. 파혼하자"라고 한다거나
서로 잘 지내며 웃으며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사팀으로 달려가 저 팀장과 일 못하겠다며 폭로를 일삼는 직원의 행동도 일종의 쿠데타급이라 할 수 있다.
'쿠데타'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나라에 대한 타격'이라고 하니, 일개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가히 그 파장은 쿠데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광장>을 봤다.
개인적으로는 잔인한 폭력 범죄물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 길래 좋다 나쁘다 평들이 분분하지 궁금하여 보게 되었다.
액션신이나 원작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잘 만든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7개의 에피소드를 다 보고 나니 착한 편이든 나쁜 편이든 인간이 욕망하는 권력은 에덴동산의 뱀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 자체가 아니라 권력을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 말이다.
특히 그 쟁취의 방식이 비겁하고 잔인하고 정당치 못한 쿠데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권력'에 눈독 들인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그저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장한 자만심의 발로이거나 혹은 열등감에서 기인한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돈.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울 뿐 어쨌든 쿠데타는 쿠데타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 아입니까..!" 하는 유명 대사는 틀렸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쿠데타다.
<광장>에서 아버지의 뒤통수를 후려쳐 대는 짐승보다 못한 아들 이금손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새로운 광장을 만들 겁니다. 음지에만 머물러야 했던 아버지 때랑은 다르게 당당하게 양지로 나와서 아무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그런 광장을요'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내가 일인자가 되고, 대장이 되면 더 잘할 수 있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저 양반처럼은 안 할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때려 부수고, 규칙을 어기고 바꾸고, 사람까지 속이고 죽인다.
그런데 사람의 자기 과신만큼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때론 잠시 멈추어 숨 고르며 하늘도 보고 주변도 보고 새소리 물소리도 들으며 나는 그저 이 거대한 우주 질서 속에 있는 작은 존재구나하며 스스로를 줌아웃시켜 버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 'one of them'이라는 자기 경계가 내가 원하기만 하는 길보다는 바른 길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자가, 자기가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