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벼랑 끝에 서서>를 보고
예전에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하차문 앞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옆에 서 있던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왜 내 손에 닿게 손잡이를 잡아요?"
무척이나 날카롭고 불쾌한 말에 옆에 사람은 무슨 말이냐 나는 손잡이를 잡은 거고 당신 손에 닿지도 않았다 라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둘의 손은 한 손잡이 봉을 잡고 있었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차에서 하차 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던 그 사람은 분명 버스를 타기 전 화가 날 만한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단박에 화를 낼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이 일 저 일을 하며 제각각 다른 모양의 사람들과 부대끼다 늦은 퇴근을 하는 길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누가 나를 치고 지나가는 거다. 고의가 아닌 걸 알았지만 피곤했던 하루에 이유 없이 치임을 당하니 고개를 획 돌려 상대의 얼굴을 보며 눈으로 욕을 했었더랬다. 하필 더운 날씨, 땀 냄새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 안이었다.
'아 그래서 불쾌지수 불쾌 지수 하는구나'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내 현재 상황과 감정을 억누르면서까지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를 갖는 것이 맞는 일일까?
듣기만 해도 짜증 나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특히나 요즘 같이 더운 날에는 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벼랑 끝에 서서 (원제: Straw)>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불친절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 준 영화이다.
주인공 저나 이어는 발작과 천식을 앓고 있는 8살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아이의 비싼 약값은 저나이어가 밤낮으로 일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탓에 월세와 공과금 미납이 반복되고 있어 진즉에 강제퇴거 경고를 받은 상황이다.
그날, 아침부터 오후까지 저나이어가 겪은 일들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것들이었다. 급식비 40달러를 내지 못해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한 학교는 복지당국에 신고해서 아이를 분리해 버리고, 현금을 인출하러 은행에 갔지만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저나이어의 차선변경에 열받은 운전자가 난폭한 보복으로 차를 들이받고 경찰을 부른다. 돈이 없어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못했던 저나 이어는 그 자리에서 벌금 딱지를 받게 된 것도 모자라 자동차까지 압수당한다.
그 덕에 사장에게 양해받은 근무시간 중 딱 30분의 볼일보기는 시간을 훌쩍 넘겨 버리고 말았다. 결국 근무 중 이탈로 간주 한 마트 사장은 저나이어에게 해고 통지를 한다. 하필 그날이 월급날이었고 그 월급으로 급식비, 월세, 밀린 미납금을 당장 해결해야 하는데 사장은 개 짜증과 분노를 쏟아내며 해고당한 자에게는 우편으로 월급이 갈 거라며 당장 꺼지라고 한다.
영화는 저나이어가 최악의 상황들을 짧은 시간에 연속적으로 겪게 함으로 그녀가 앞으로 하게 될 행동에 대한 예열을 진행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행동은 분명 범법 행동으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전까지 그녀가 겪게 된 상황을 목격한 나로서는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녀의 집주인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숙자에게 줄 동전은 있고 월세 낼 돈은 없나 보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퇴거 통지 했으니까 알아서 해."
"오늘 월급날이에요. 10시에 휴식시간이니까 그때 월세를 가져올게요"
"약속해. 아니면 그 집 살림 전부 길거리에 내놓을 거니까"
저나 이어는 해고 당해 돈을 가져오지 못했고, 집주인은 정말로 그녀의 방에 있던 모든 짐을 길거리에 내놓았다. 비가 쏟아지는 데 덮을 것도 없이 그리고 아이의 약병을 길거리에 던져둔 채 말이다.
저나이어의 차선변경에 화가 난 운전자는 기어이 그녀를 따라와 그녀의 차를 박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잘 오셨어요. 누가 제 차를 들이받았어요. 번호판도 기억해요. 아 저 남자예요"
"내가 경찰인 줄 몰랐지? 네가 내 차를 박았잖아. 운전면허와 차량 등록증을 가져와. 철창에 넣어 버리게 없다고 해 망할 년아, 어디서든 다시 내 눈에 띄면 합법적으로 머리통을 날려 버릴 거야 알았어?"
경찰이라며 협박을 해 대는 그 남자에게 저나 이어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면허증 갱신 기간이 지난 것이 확인되자 그 자리에서 차를 압수해 간다. 빨리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데 말이다.
마트 사장과 약속한 30분을 훌쩍 넘겨 마트에 도착한 저나이어,
그녀는 그 두 시간 동안 딸을 뺏겼고, 자동차를 압수당했으며 과태료 딱지를 받았고, 경찰로부터 공포스러운 협박을 받았을 뿐 아니라 퇴거 조치 당해 길거리에 내 앉는 신세가 된 상황이었다.
혼이 빠져 돌아온 저나이어에게 마트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젠 내보내야겠어"
"전 이 일이 필요해요"
"그래? 그러면 두 시간이나 늦질 말았어야지 애 학교에 간다고 해 놓고 은행에를 가? 이 거짓말쟁이"
"애 급식비 인출하러 갔었어요"
"뭐가 그렇게 핑계가 많아. 일을 이따위로 한 건 너야. 넌 해고야"
"월급 주실래요?"
"월급을 달라고? 해고되면 월급은 우편으로 가. 그게 방침이야"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월세도 내야 하고 급식비도 내야 해요"
"나더러 어쩌라고. 못 줘. 당장 꺼져"
월세를 독촉하는 집주인, 자동차를 압수해 가는 경찰, 근무 규정 위반으로 해고를 통지하는 마트 사장.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자신의 권리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이들이 더 이상 어디까지 봐줘야 하냐고 물어오면 답을 하기가 어렵다.
이들에게 한 번 더 저나이어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고 말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불친절했다. 맞는 말일지라도 상대에 대한 혐오, 비난, 위협이 섞여 전달되는 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이민자 체포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불법이민자를 색출하고 체포하는 것은 준법 행위라는 미국 대통령의 주장에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간을 주라는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저에 '미국에 들어와 미국 사람들이 벌어야 할 돈을 가져가고 세금을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라는 혐오와 위협이 깔려 있다는 것 아닐까?
다 자기 사는 게 힘들다.
내가 제일 힘들고 제일 가진 게 없고, 가장 억울하고 불쌍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늘 화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상황을 돌아볼 여력 같은 건 없다. 누구 하나만 걸려봐라 하는 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을 따르는 자에게,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표출되곤 한다.
오늘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딱 3명에게만 이전보다 친절해 보는 건 어떨까
이미 일상 속에서 타인들의 불친절함이 누적되어 혼이 나간 상태의 사람이 있다면 친절함을 장착한 나의 사소한 행동이 어쩌면 그에게 잠시라도 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세상엔 거지 같은 일만 있는 건 아니군. 저런 사람도 있네. 그래. 저런 사람도 있어서 좋네.' 하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오늘 히어로가 된 것과 다름없다.
설사 상대방이 내 친절을 받아주지 않고 알아채지도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행세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친절을 베풀고 나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그 사람이 어떤 싸움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