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오징어게임 3>을 보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는 늘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수업 시간에 잘 듣고 개념 이해하고 많이 풀고 외우고, 엉덩이 값이 기본이라는 답이다.
글 잘 쓰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이다.
많이 읽는 것이 글을 잘 쓰는 방법의 기초.
체중 감량을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당신도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냐고 답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질문들의 답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
문제는 아는 데로 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2021년부터 시작된 넷플릭스 시리즈물 <오징어게임>의 최종 결말이 드러났다.
제한된 공간 속 익숙한 어린 시절 놀이들을 통해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한껏 까발리고, 그 돈을 가지기 위해 인간들이 보이는 잔인성과 폭력성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열광했다.
이제까지 없었던 기발한 상상력에서 기인한 소재가 <오징어게임> 첫 시즌의 인기 요인이겠지만,
무엇보다 게임이 진행되면 시청자들 역시 게임 속 참가자가 된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이야기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56억이라는 상금은 비현실 속 게임이 현실이면 좋겠다는 동기가 되어 시청자 역시 게임의 속행 여부를 남몰래 투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시즌이 공개된 후 호평과 혹평이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분량을 채우기 위한 느슨한 이야기들이 과하게 나열되었다, 인물들이 예측 가능한 일차원적 캐릭터들에 그칟다, 이 시리즈의 키 메시지였던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주의 폐해의 풍자가 희미해졌다, 도파민이 부족하다 등이 혹평의 주요 내용인 듯하다.
시청자들은 각기 다른 기대를 가지고 드라마를 볼 테니 해석과 평가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에서 했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시각으로 <오징어게임>의 최종장을 기념하는 감상평을 써 보려고 한다.
#익히 알고 있고, 보고 있고, 살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폐해, 풍자가 더 필요한가
대부분의 영화, 드라마가 탐욕, 허영 등을 다루고 있다. 보여주는 장르만 다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뉴스를 통해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지금 이 시대가 오징어게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정치인, 범죄자, 일반 시민.. 미국인, 한국인, 멕시코인..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풍자가 더 필요한가.
3개의 시즌을 통틀어 극 중 무수히 많은 참가자들이 돈을 가지기 위해 살인과 폭력, 방관을 서슴지 않았다.
좀비나 오컬트물이 아닌 이상, 이 이상으로 욕망을 잔인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어떻게 끝나야 맞는 것인지, 주인공 성기훈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고 의미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게임이 정말로 끝이 날 것인가 하는 것도..
#결국 늘 들어온 재미없는 말들이 게임을 끝내는 답이 된다.
<오징어게임 3>에는 1,2 시즌은 다루지 않았던 요소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아들, 만삭 임산부와 갓난아기의 등장, 형제 우애, 의리, 모성애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게임 참가자와 시청자들의 심리는 더 복잡해졌고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런 설정은 탐욕인 것과 탐욕이 아닌 것을 더 선명하게 구분해 주었다.
가까스로 낳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젊은 엄마, 아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을 막는 엄마, 출구를 발견했으면서도 노약자를 데려오러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군인.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여야 했던 프런트맨은 성기훈도 그와 같이 행동할 거라 예상했지만 성기훈은 다른 선택을 한다. 갓난아이와 아기 엄마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었음에도 마치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표정으로 상금을 포기하고 갓난아기만을 남겨둔 채 스스로 게임을 하차한다.
반면 상금에 눈이 멀어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판 것 같은 자들은 살인하지 않으면 살해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게임을 속행하고 급기야 갓난아기 마저 죽이려고 덤벼든다.
참가자 중에는 돈 때문에 시작했지만 막상 죽고 사는 문제가 되니 사람 목숨 귀한 줄 알고 게임 종료에 투표하는 자들도 등장한다. <오징어게임 2,3>은 대부분 이 부류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에서 첫 번째 시즌과 대조된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기대했던 도파민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K-드라마의 고유명사가 되어 무거운 왕관을 쓰게 된 <오징어게임>은 도파민 감소를 알면서도 무게를 감당하기로 한 듯하다. 그러니 결국 정답은 언제나 늘 들어왔던 재미없는 말들이 될 수밖에...
희생, 책임, 생명, 옳은 것을 분별하는 것..(이 단어를 보는 순간 벌써 재미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는 데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어쩔 거야.. 아마도 성기훈이 게임 창조자들을 모두 찾아 죽이고 없앴다면 더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럴 거면 마블 영화를 보는 게 낫지. 애초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목숨 걸고 게임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오징어게임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시리즈는 끝났지만, 우리네 인생 속 거대한 실사판 오징어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판은 점점 더 커지고, 위험한 게임은 계속 생겨나고, 이기기 위한 사람들의 기술은 날로 향상되어 간다.
어느 순간, 게임을 속행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X를 선택하면 될 일이다.
다행히 드라마처럼 실사판 게임은 시작과 끝을 누군가와 동시에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내가 게임에서 하차할 수 있다. 게임에서 진다고 당장 목이 부러지거나 총을 맞아 죽는 일도 거의 없다.(물론 어떤 일은 심적으로 죽음과 같은 상태에 이르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소생의 기회는 늘 다가온다)
과도한 학업 경쟁의 <오징어게임> 속에 있는 아이에게 '대충 해도 된다. 인생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많아'라며 토닥여 줘 보기도 하고,
종일 회사 <오징어게임>에서 시달리고 온 남편과 아내를 보고 '고생했다'하며 꼭 안아줘 보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으면서 그 시절 이야기 나누며 추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가끔은 옛날 옛적 내가 쓴 일기장을 열어 보며 순진하고 순수했던 나를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이 마음가짐이 내게 유익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계속, 스스로 투표해야만 한다.
뜯어말리는 사람이 있다면 왜 뜯어말리는지도 한번 들어보고, 내 초심이 뭐였는지도 되돌아본다면 상금이 고작 1인당 10만 원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게임을 그만둘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글을 쓰고 보니 고작 시리즈물인데 이렇게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머리 긁적긁적할 일이지만,
그만큼 무거운 왕관을 쓴 시리즈물이므로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내었는지를 잠깐 해석해 보고 최종장을 기념하는 것도 K-드라마 강국에 살고 있는 자로서 나름 재미있는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