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소중한 아리에티의 세계 <마루 밑 아리에티>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고

by 김태경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고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그저 다큐멘터리로만 보고 교과서로만 보던 개미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길을 가다 개미를 보면 소설 <개미>가 생각나 그 일꾼개미를 마치 사람인양 여기며 밟지 않도록 살살살 피해서 지나가곤 한다. 그리곤 개미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수고해라'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세계도 존재한다.

놀랍도록 정교한 꽃들의 세계는 바람과 온도, 햇빛과 땅의 습도를 따라 피어났다 졌다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며 날개를 가진 곤충들과의 연대로 번식을 지속한다.

어느새 초록 잎이 무성해지고, 어느새 꽃이 핀 나무들은 뉴스 기상캐스터보다 더 정확하고 충분하게 시간의 변화를 감지하여 순응한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사는 우주 세계와 그들과 평생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쉬지 않는 태양, 씨를 품어 자라게 하는 땅과 그 땅 속에서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작고 작은 곤충과 동물들의 세계.


지구온난화, 기후위기로 매일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저들은 한 번도 사람들의 세계로 넘어와 탓하지 않고 있다.


'너희들이 지구에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지금 이런 거 아냐. 니들만 사냐?

우리도 진짜 쉽지 않아. 언제 활짝 피어야 되는지 헷갈리고 태양은 계속 화 내고..

내 친구는 겨울잠 자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잖아 봄인 줄 알고.

니들 계속 정신 안 차리면 우리가 가만 안 둬. 다 뒤집어엎어 버릴 거야. 혁명 알지 혁명?

침팬지만 그런 거 할 줄 아는 줄 알아? 이제는 안 되겠어. 너네들 각오해 가만 안 둬!'

라고 말할 법 한데 그러지 않는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2010년에 만든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The Secret World of Arrietty)>는 인간의 세계 속 어딘가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살고 있는 소인(小人)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고작 10cm의 14살 소녀 '아리에티'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어느 시골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 살고 있다.

월계수 잎 하나가 엄마의 생일 선물이 되고, 작은 빨래집게는 아리에티의 머리핀이 된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양면테이프는 서랍장 등정 시 아빠를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고, 각설탕 1개는 아리에티 가방을 꽉 채우고, 집 안 어딘가 있던 인형의 집은 소인들이 꿈꾸는 집이 된다.

티슈 한 장은 아리에티 가족이 한참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만큼의 생필품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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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아리에티가 아빠를 따라 인간의 부엌과 방으로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가는 부분이다. 소인이지만 아리에티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마루 밑을 나와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가 식탁과 서랍장을 등반하고 엉킨 전깃줄이 있는 배선관을 오른다.

그리곤 자신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만 '빌려' 간다. 실제로 아리에티의 아빠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빌려 온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이 시골집으로 소년 '쇼'가 요양차 오게 되고 마루에티는 쇼에게 정체를 들키고 만다.

그 이후로 마루에티 가족은 인간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쇼는 마루 밑에 소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프고 외로운 소년 쇼는 아리에티 부엌의 한 벽을 좋은 주방 집기들이 있는 벽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고, 아리에티를 도와 집사 아주머니에게 들켜 유리병 속에 갇혀 있는 아리에티 엄마를 구출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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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아리에티의 우정도 중요한 영화 속 얼개이지만, 결국 아리에티는 그 집 마루를 떠나게 된다.

아리에티 가족을 향한 쇼의 일방적인 호의는 아리에티 가족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집안 대청소를 통해 소인들을 잡으려는 집사 아주머니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벤트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집사 아주머니는 집안 살림을 도맡은 자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


공존한다는 건 한 집에서 다 같이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맞는 곳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살며, 필요한 것을 서로 빌리고 빌려주며 서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인정하고 그것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공존한다는 것 아닐까?

'잘 생긴' 쇼가 '예쁜' 아리에티와 결혼한다거나, 아리에티 가족이 쇼의 인형의 집에 산다거나, 소인들이 정체를 공개함으로 쇼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준다거나 하는 그런 전개는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


어린아이들은 개미집이 하도 신기하여 나뭇가지로 쑤셔 보기도 하고 발로 밟기도 한다. 호되게 야단치거나 뜯어말려야 할 일은 아니지만 개미의 집에도 많은 개미들이 생활하고 있을 거라고 아이들에게 한번쯤 설명해 주는 건 어떨까.

자연 속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세계 속에도 모양과 모습은 다르지만 각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 나가는 것이 사람들 세계의 질서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인간은 개미에게나 우월한 존재일 뿐, 더 거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에 비해 하찮은 존재일 수도 있다. 아리에티와 같이 이곳 마루 밑에서 필요한 것들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존재들 말이다.

공존은 내 세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세계와 다른 세계들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우리 모두 서로의 세계로부터 빌려 쓰고 또 빌려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나 보다.


내가 거인이 아니라 거인들이 사는 집 마루 밑에 사는 아리에티라고 생각하고 살면 좀 더 겸손하고 만족스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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