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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코끼리 양말을 샀다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아유, 이것도 5000원이야. 에? 이건 6000원?”



김 여사가 제주에 살면서 가장 안 좋다고 여기는 건 바로 ‘제주 추가 배송비’였다. 직접 가서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네이버에서 가격을 비교해본 다음에 구매하는 걸 좋아했던 김 여사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을 때마다 추가되는 ‘제주 추가 배송비’에 기함을 토했다.



쇼핑몰마다 달랐지만 제주 추가 배송비는 보통 5000원부터 시작이었다. 배를 타고 오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울에 살 때는 무료로 받았던 물건들을 제주에서는 5000원이나 추가하고 받아야 하니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싸! 15000원 이상 배송비 무료?? 진짜? 이건 사야돼!!‘



네이버를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시스루 양말을 발견한 김 여사는 15000원 이상 배송비 무료라는 문구에 혹해 3000원짜리 양말 5쌍을 골랐다. 여름에 반바지에 이 양말을 매치해 운동화를 신으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았다. 지난 결혼 기념일에 남편이 사준 미우미우 로퍼에도 찰떡으로 보였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들어가 결제창을 켠 김 여사는 댕!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생각에 어질어질했다. 여지없이 결제창에 ‘제주 추가 배송비’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6000원이었다.



‘6000원? 이 양말이 3000원인데 그럼 양말 두 쌍만큼을 배송비로 내라고?’



김 여사는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져 네이버 어플을 종료해 버렸다. 제주에 살면서 불편한 것들이 이것저것 있긴 하지만, 김 여사에게는 이놈의 ‘제주 추가 배송비‘가 단연코 1등으로 불편했다. 아까 인터넷에서 봤던 귀여운 시스루 양말 같은 건 제주에서 오프라인으로 살 곳마저 없었다.



‘서울에 산다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라도 갈 텐데…’



김 여사는 자꾸 머릿속에 아까 봤던 그 귀여운 시스루 양말이 맴돌았다.



적당한 길이감에 시스루톤으로 여성미를 살리면서 토시처럼 약간 흘러내리는 느낌이라 다리까지 일자로 곧아 보이게 해주던 그 양말…



‘내가 좋아하는 헤더그레이 색이랑 기본인 화이트, 블랙까지 색깔별로 사면 참 활용도 높을텐데…아…아쉽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말 두 쌍 값을 배송비로 지불하는 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일이었다. 김 여사는 쿠팡에 혹시 아까 봤던 비슷한 상품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쿠팡은 월마다 구독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제주더라도 무료배송이었다. (물론, 그 구독료 안에 배송비가 다 포함돼 있고, 제주 쿠팡 물건은 서울 쿠팡 물건보다 아주 조금씩 비싸긴 한 건 안 비밀이다.)



‘하…없어…없다고…’



한 번 꽂히면 계속 생각나는 성격의 김 여사는 아쉬움에 검색어를 조금씩 달리해 쿠팡에서 계속 검색해 보았지만 그녀가 꽂혔던 그 물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그냥 사? 배송비 미친 척 하고 질러?’



김 여사는 네이버 어플로 다시 들어가 장바구니에 들어갔다. 아까 봤던 시스루 양말 다섯 쌍이 고이 그녀의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15000원+제주 추가 배송비 6000원=21000원



결제창을 한참 바라보다 김 여사는 끝내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 했다.



‘배송비!! 너무 아까워!!!!‘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 어플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던 김 여사는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 소식이 끊겨버린 전 회사 사람들의 근황을 보고 있었다. 김 여사는 주로 인스타그램으로는 실제 친구들, 페이스북으로는 회사 다닐 때 지인들과 소통했다. 지금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언 6년째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페이스북 지인들 역시 6년 전 지인들이란 얘기였다. 그래도 서울에 있을 때는 생일 같은 때 카톡으로 안부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그마저도 제주에 내려온 이후로는 완전히 끊겨버렸다.



이제는 이렇게 간간이 페이스북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나 지켜볼 뿐이었다.



‘이 부장은 아직도 페북에 정치 발언만 쓰네. 어휴, 친구 끊던가 해야지. 어? 소정 씨는 결혼했나 보네. 남편 잘 생겼네’



밀렸던 근황을 확인하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어? 이거?“



그녀는 너무 놀라 마음의 소리를 그만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그녀가 아까 그렇게 미련 뚝뚝 흘리며 마음 속에서 고이 보내줬던 그 시스루 양말이 페이스북 광고에 떠있는 것이었다. 그 양말 위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테무!



그 말로만 듣던 테무, 그렇게 싸다는 테무, 김 여사는 페이스북 광고에서 그렇게 테무를 처음 마주했다. 그것도 그녀가 그렇게 사고 싶어했던 양말 광고로. 그녀는 사고 싶어하던 걸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광고로 보여주는지 알고리즘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진짜로 이제는 알고리즘이 머릿속을 읽나 봐.’



신기하다는 생각도 잠시, 김 여사는 곧 떨리는 손으로 그 광고를 클릭했다. 순식간에 번쩍번쩍 수만가지 물건이 깜빡깜빡거리며 그녀의 눈을 현혹하는 테무 홈페이지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00시 00분까지만 30% 할인! 김연주 님을 위한 150,000원 쿠폰 혜택!



눈 돌아가게 하는 문구들로 김 여사를 유혹하던 테무 홈페이지에서는 그녀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던 그 양말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7..798원?????“



3000원짜리가 여기서는 798원이라고? 정말로?



김 여사는 스크롤을 내려 정말 아까 그녀가 봤던 그 양말이 맞는지 확인했다. 분명 그녀가 네이버 쇼핑 상세페이지에서 봤던 그 양말이 맞았다. 디테일이며, 색상이며, 모델의 다리 모양 사진까지 이건 완벽하게 동일한 상품의 상세페이지였다.



그렇다면 안 살 이유가 없었다. 김 여사는 홀린 듯 아까보다 하나 더 담아 양말 6쌍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자 김 여사를 유혹하던 테무는 밑에 이런 문구로 그녀를 한 번 더 유혹했다.



10212원만 더 담으면 무료배송!



‘정말? 15000원이면 중국에서 한국까지 무료배송을 해준다는 거야?‘



김 여사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팝업처럼 큰 글씨가 휴대폰 화면에 떠올랐다.



김연주 님을 위한 타임 어택! 30% 추가 세일! 20분 안에 10212원을 더 담으세요!



김 여사는 마음이 급해졌다. 20분 안에 10000원 정도를 더 담아야 30% 추가 세일을 받을 수 있었다. 김 여사는 테무에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담기 시작했다.



‘음…휴대폰 충전 케이블 세일? 이런 건 매일 고장나니까 사두면 좋지. 무조건 사야지 장바구니! 음…휴대폰 케이스? 오 이거 되게 귀엽네! 뭐? 심지어 맥세이프 케이스잖아? 3000원? 진짜? 이런 거 지하상가에서 20000원에 팔았던 거 같은데? 장바구니! 오 이 그림 포스터 진짜 귀엽다! 조슈아 방에 걸어주면 상큼하고 딱 좋겠다! 이것도 장바구니!‘



김 여사는 정확히 1분 50초가 남을 때까지 장바구니에 열심히 물건들을 담았다. 이것저것 담다보니 장바구니 총 금액은 21000원이었다. 30% 추가 할인쿠폰까지 야무지게 적용한 가격이었다. 심지어 제주 추가 배송비 같은 것도 없었다!! 모든 게 프리!!



그렇게 아까 네이버 어플에서 양말 5쌍에 추가 배송비가 붙었던 값으로, 김 여사는 테무에서 무려 4개의 아이템을 살 수 있었다.



‘아 나 너무 합리적인 소비 했어! 진짜 내 자신 럭키비키!!‘



김 여사는 아까 네이버에서 무턱대고 결제하지 않았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남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왜 그래? 뭔 일 있어?“


“휴…장사가 안 되니까 그렇지. 요즘 환자가 왜 이렇게 없는 거야.“


“오늘 몇 명 왔는데?“


“지금까지…20명?“



‘오후 3시인데 20명이면 적게 오긴 했네…’



남편의 풀 죽은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 좋았다. 김 여사는 밝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내가 오늘 합리적인 소비 했어! 다음에 제주 내려오면 휴대폰 충전 케이블 좀 가져가. 저번에 병원에서 쓰던 거 망가졌다고 했지?“


“응. 알았어.“


“나 케이블 그거 얼마에 샀게?“


“몰라. 3개에 9900원? 쿠팡에서 그랬던 거 같은데.”


“짠! 5개에 5000원!”


“오, 어디서 그렇게 싸게 샀어?”


“테무! 오빠 테무 들어가본 적 있어?“


“테무? 들어만 봤는데. 거기가 그렇게 싸?“


“응! 아까 보고 깜짝 놀랐어! 가격도 싼데 거기다가 30% 추가 할인까지 해줘!!“


“오, 잘 샀네. 어, 여보 나 환자 와서 끊을게.“


“응, 파이팅!“



김 여사는 힘 없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의 합리적이었던 소비가 더욱 뿌듯해졌다. 앞으로도 남편을 생각해서 필요한 물건들은 오늘처럼 테무에서 합리적으로 가격 비교해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이 뿜뿜 샘솟았다.



약 열흘 후, 테무에서 산 물건이 배송완료됐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조슈아를 수영 학원에서 픽업 중이던 김 여사는 문자를 보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 기대돼!! 양말 빨리 신어보고 싶다!!’



조슈아를 재촉해 얼른 집으로 귀가한 김 여사는 부푼 마음으로 그렇게 테무 하울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단골 소재로 올라오던 바로 그 ‘테무 하울’! 김 여사는 마치 자신이 그 하울하던 유튜버들이 된 기분으로 하나하나 소중하게 택배를 뜯기 시작했다. 한 번도 그런 영상들을 본 적 없었지만…



“조슈아, 네 방에 휴대폰 케이블 새로 산 거 갖다 놔. 너 쓰던 거 고장났다며.“



김 여사는 휴대폰 케이블 하나를 조슈아에게 넘겨줬다. 남편이 내려오면 줄 케이블 2개도 따로 챙겨놨다. 다른 비닐을 뜯어보니 동그란 통이 나왔다. 포스터가 둘둘 담긴 통이었다.



‘오 통에 담기기까지! 퀄리티 좋네! 뜯어볼까?….음…어?‘



통에서는 김 여사가 화면에서 봤던 그림과는 영 다른 그림이 나왔다.



김 여사가 화면에서 봤던 건 분명 쨍한 색감의 보기만 해도 터질 듯 탱글탱글 샛노란 색을 뽐내던 레몬 포스터였는데, 실제로 그녀에게 배송된 건 오래돼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듯 푸르딩딩해 쳐다만 봐도 식중독에 걸릴 것 같은 레몬 포스터였다.




‘음….그래 뭐 괜찮아, 하나쯤은 뭐 실패할 수도 있지! 다음 꺼는 휴대폰 케이스!!‘



김 여사는 은근 이 휴대폰 케이스를 기대했다. 맥세이프 기능까지 있는데 3000원이면 너무 훌륭한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케이스는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곰팡이 레몬 포스터처럼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김 여사는 바로 휴대폰 케이스를 갈아낀 후 집에 있던 맥세이프 충전기에 휴대폰을 갖다댔다.







분명, 맥세이프 충전기에 찰싹 달라붙어야 하는 휴대폰이 자꾸만 떨어졌다. 김 여사는 이게 왜 이래 하고 요리조리 살펴보다 쎄한 느낌에 상품 상세페이지에 다시 한 번 들어갔다.



맥세이프st… 즉, 맥세이프 모양이라는 뜻이었다. 실제 기능은 없고, 모양만 흉내낸…



김 여사는 이제 조금 짜증이 몰려왔다.



‘음….그래, 양말! 양말은 네이버 상세 페이지랑 완전 똑같았다고!‘



그녀는 테무 하울을 하게 만든 장본인, 오늘의 주인공 ‘시스루 양말’ 봉투를 뜯었다.



‘……..어?’



김 여사 말고 남편이 신어도 흘러내릴 것 같은 양말이었다. 통이 어찌나 넓은지 밑에 발 부분만 없으면 초등학생 조슈아의 복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코끼리용…잘못 온 거 아니지?’



그런 사이즈의 양말이 6쌍이나 있었다.



‘이걸…어디다 쓰냐…아니 누가 신냐…동물원에 기증해야 돼?’



그 때 김 여사에게 조슈아가 소리쳤다.



“엄마! 이거 안 돼! 새로 산 거 맞아? 딴 거 줘!!!!”



빠직


보톡스를 맞아 팽팽한 김 여사의 이마에 분노의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김 여사는 남편용으로 챙겨놨던 테무발 휴대폰 케이블 2개를 조용히 창고에 던져 버렸다.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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