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자, 이번주도 선생님이 제일 잘 쓴 친구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네!!!!”
“오늘도 나는 붕붕 공중을 떠돌았다. 내 여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인 것은 분명하다. 난 오늘도 소파 뒤 명당 자리에 앉아 가족을 바라보았다. 주말이라 짜파게티를 먹고 있는 세 명의 가족. 아빠가 짜파게티를 큰 솥에 끓여오면 아이와 엄마는 환호했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입가에 잔뜩 까만 자국을 묻히며 맛있게 짜파게티를 먹는다. 너무 맛있어 보며 나도 먹고 싶다. 꼴깍 군침을 삼키는데, 짜파게티를 다 먹었는지 입가가 온통 새까만 아이가 내 쪽으로 달려온다. ”아싸! 디즈니 만화 타임!!“ 털썩! 아이가 소파로 점프하자 내가 뛰어오른다. 멀리 멀리 또 공중으로 날아간다. 엄마가 말했다. ”안되겠다. 오늘 청소 좀 해야지. 아유“ 윙윙 청소기가 다가온다. 마루바닥으로 떨어진 나에게 다가온다. 윙윙. 안녕, 난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자, 이 이야기의 제목은 ‘먼지의 여행‘이에요. 어때요? 잘 썼어요?“
“네!!!“
“자, 이번주도 제일 잘 쓴 연주! 연주에게 모두 박수쳐 주세요!!”
짝짝짝
“연주 참 잘했어요. 나와서 포도알 스티커 받아가.“
“네!“
위잉위이위잉
손목에 알람시계 대용으로 차고 있던 김 여사의 애플 워치가 일어나라고 진동을 보낸다.
‘와, 오랜만에 꿨네. 초등학교 때 꿈’
김 여사는 기지개를 켜고는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해 방을 나왔다. 아직, 6시 20분. 조슈아가 일어나기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김 여사는 보통 그 1시간 동안 조슈아가 아침에 먹을 사과를 깎고, 블루베리를 씻어 놓으며 어젯밤에 미리 해둔 미역국을 데우고, 냉동실에서 꺼낸 밥을 해동해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김 여사의 아침 루틴이었다.
모든 루틴이 끝나면 남는 시간 20분 정도. 김 여사는 스트레칭을 하며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김 여사는 간밤에 꿨던 꿈을 생각했다.
‘내 리즈시절이었지…’
김 여사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그러니까 조슈아 나이때 쯤. 그녀의 담임 선생님은 매주 아이들에게 글짓기 숙제를 냈다. 주제는 매주 바뀌었다. 어젯밤 꿈에 나왔던 그 날은 주제가 ‘여행‘이었다. 김 여사가 쓴 글은 거의 매주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주 하찮고, 하기 싫은 숙제로 손꼽던 그 숙제를 김 여사는 제일 좋아했다.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녀는 일주일 내내 이번주는 무슨 글을 쓸까하고 고민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책에 적어 놓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찬 문과 감성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몰랐다.
‘진짜 좋아했는데…글쓰기…’
하지만 좋아하는 걸로 밥 벌어 먹기는 힘든 세상. 김 여사의 꿈은 점점 멀어져갔고, 잊혀진지 오래였다. 오랜 만에 꾼 꿈은 그녀에게 ‘그땐 그랬지‘라며 희미한 미소를 남길 뿐이었다.
“조슈아!! 일어나!! 이제 7시 20분이야!!“
“콜록콜록 켁켁“
“어머, 조슈아! 왜 그래? 감기야?“
조슈아의 심상치 않은 기침 소리를 듣고 방으로 뛰어간 김 여사는 조슈아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뜨끈뜨끈한 게 열이 있는 듯 했다.
“증상이 어떤데? 콧물도 나? 침 삼킬 때 목구멍 아파?“
“…응…목 아파…코 막혀…”
어제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한 후,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리고 바람이 쌩쌩 부는 운동장에서 한참을 뛰어 놀았다던 조슈아가 결국 감기에 걸린 듯 했다.
“아오, 아침에 병원 가봐야 겠네!! 못 살아!!”
김 여사는 아들의 콜록콜록 기침 소리에 속상한 마음으로 거실에 던져놨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네이버 어플로 근처 소아과, 이비인후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제일 빨리 시작하는 데가….아…여기가 8시에 여네! 여기 가야겠다!’
진료시간이 가장 빠른 곳은 이 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의 이비인후과였다. 김 여사는 집 바로 앞 소아과에 갈까 하다가 사람이 몰릴 것을 우려해 진료 시간이 더 일찍 시작하는 이비인후과에 가기로 했다.
“조슈아, 가서 진료받고 약 먹어야 되니까. 일단은 가기 전에 미역국 조금만 먹고 가자. 과일이라도 조금 먹든지. 빈 속에 약 먹음 안 돼.”
“아….더 잘래…목 아파…“
“목 아프니까 병원 가서 약을 타와야지! 얼른!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만 먹어. 병원 가게!”
김 여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겨우 일어난 조슈아를 끌고 와 식탁에 앉혔다. 목이 아픈지 삼킬 때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아들을 보며 미역국 국물 위주로 먹이고 김 여사는 얼른 나갈 채비를 했다.
“혹시 모르니까 교복 입고 나가자. 얼른 가자.“
7시 50분에 병원에 도착한 김 여사는 자기 앞으로 4명 정도 대기 중인 걸 보고 안도했다.
‘휴, 이 정도면 오래 기다리지는 않겠다. 그런데 여기는 새로 연 덴가봐. 처음 와보네.’
김 여사는 쓱 병원 내부를 둘러 보았다. 인테리어한 지 얼마 안 된듯 병원 안은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었다. 벽에는 원장님이 팔짱을 낀 채 환한 미소로 찍은 프로필 사진과 함께 약력이 써 있었다.
‘젊은 여자 분이네. 인상 좋으시네.’
15분쯤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김 여사 모자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 교복 입고 왔네. 여기 국제학교 다녀요?“
“네.“
“우리 애도 여기 국제학교 다니는데. 친구는 몇 학년이야?“
“그레이드 4요.“
“어머, 우리 애돈데! 학교에서 서로 알겠어요! 어디 보자…유준이? 유준이는 오늘 목이 아파요? 한 번 벌려 볼게요. 아~ “
인상 좋은 원장님은 능숙하게 조슈아의 목구멍을 살피고 콧속과 귓속을 살피더니 목 감기가 시작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조슈아의 목에 칙칙 스프레이를 뿌려주고는 따뜻한 물을 마시고, 약은 3일치 먹어보라고 덧붙였다.
“잘 가~ 유준아~“
“네…안녕히 계세요.“
원장님이 목에 뿌려준 스프레이가 진통 효과가 있는지 조슈아는 아침보다 한결 목소리 내기가 편안해 보였다.
진료비 수납을 하고,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밀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을 조제해 가지고 나오는 약사님의 얼굴이 낯익었다.
“어머, 조슈아 어머님!“
“…?”
“저, 저 제이든 엄마예요!”
“어머! 제이든 어머님이시구나!! 가운 입고 이렇게 안경 쓰시니까 정말 못 알아 뵀어요!! 죄송해요!”
“아녜요. 일부러 못 알아보게 하려고 안경 쓰는 거예요ㅋㅋ”
“와, 멋지시다. 커리어우먼!”
“커리어우먼은 무슨…실상은 하루하루 돈 벌기 힘든 자영업자예요.”
“그래도…여기 병원 원장님도 같은 학교 학부모라시던데?”
“네, 주드 어머님이세요.”
“아…”
계산하고 약국을 나서는데, 뭔지 모를 허탈함이 김 여사의 마음에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단녀 6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이 사고를 당하거나 김 여사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될까? 수입 0원인 채로 살아온지 6년이 넘어가자 이제는 매일 아침 출근전쟁을 안 해도 된다는 편안함보다는 혼자 됐을 때 어떻게 살지라는 불안함이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퇴사한지 6년에, 난 지금 제주도까지 와있는데…복직은 꿈도 못 꾸지…진짜 마트 알바 같은 거라도 나가야 되나..?‘
내 손으로 돈을 못 번다는 게 이렇게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인 줄, 김 여사는 회사에 다닐 땐 절대 몰랐다. 예민한 성격의 그녀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힘들어 했고, 상사에게 깨지기라도 한 날에는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 젖은 빵을 삼키기도 했었다. (눈물 젖은 빵은 정말 실제로 존재 가능한 일이었다!!)
조슈아를 학교에 보내고, 김 여사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도 일할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아니, 보니까 조슈아 친구 엄마들 중에 일하는 사람 많더라고. 막 다 전문직이고. 멋있어 보여서.”
“갑자기 나이 40에 무슨 수로 전문직을 해ㅋㅋ”
“휴…그렇지? 그렇겠지?”
“왜 그래 여보. 여보도 전문직이야! 조슈아 멘털케어, 체력케어 전문직!!”
“피…여보가 아프거나 나랑 헤어지자고 해서 내가 갑자기 돈 벌어야 될 상황이 되면 너무 막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그렇지…”
“나랑 헤어질 거야?”
“아니!! 절대!!”
“그럼 나 아프라고 고사 지내??”
“내가 왜!!미쳤어?”
“그럼, 그런 일 절대 없으니까 쓸데 없는 걱정 말아.”
남편과 전화를 끝낸 김 여사는 생각했다.
‘내가….너무 배부른 소리하나? 진짜 남편 말대로 너무 편해서 잡 생각이 많아졌나봐..’
집에 와서 아까 못 치우고 나갔던 아침 설거지를 하고 김 여사는 자신의 지정석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조슈아의 준비물을 사러 쿠팡에 들어가려다가, 네이버 어플이 눈에 띄어 홀린듯 그걸 클릭했다. 신나게 인기 기사들을 읽던 김 여사가 스크롤을 내리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밀리의 서재, 이달의 크리에이터? 작가 되기? ‘
밀리의 서재라면 김 여사도 구독하고 있던 독서 어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하루의 마무리를 밀리의 서재나 예스24의 전자책들을 읽으며 하곤 했다. 홀린 듯 배너를 클릭하자 어플에 글을 써서 연재하면 내부에서 심사를 통해 ‘이달의 크리에이터’로 선정한다는 상세 페이지가 떴다. 무려 100만 원과 함께!!
‘이거다! 나 이거 해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녀에게는 한창 히가시노 게이고에 빠져 그의 모든 책들을 완독하던 시절, 그에게 영감 받아 몇 글자씩 끄적였던 ‘추리 소설‘ 원고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창피해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던 글인데 심해에서 허우적대던 자신의 글을 수면 위로 꺼내주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솟구쳤다.
“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 김연주야! 4학년 4반 대표 작가 김연주!!!”
그 날 이후로 김 여사는 묵혀뒀던 세이브 원고를 꺼내 살을 붙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를 시작만 하면 당연히 처음부터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출판사에서 연락까지 올 줄 알았던 김 여사는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자 점차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처참한 조회수와 밀어주리 숫자였다… 당연히 그녀의 글은 ‘이 달의 크리에이터’ 글로 선정되지 못 했다. 열심히 글을 올리던 그녀도 점점 힘이 빠졌다. 벽을 보고 혼자 이야기하는 기분에 우울해진 그녀는 결국, 절필해 버리고 말았다.
‘조슈아 엄마나 잘하자! 내 직업은 전업주부야! 직업이 없는 게 아니라고!!‘
그녀는 애써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했다. 글쓰기를 위해 쿠팡에서 구입했던 핑크색 로지텍 무선키보드는 그렇게 테무산 휴대폰 케이블(이전화 참조)과 함께 창고행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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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아이스크림!! 베스킨 사줘!!!“
“뭔 베스킨이야 갑자기“
“아, 사줘. 나 갑자기 진짜 먹고 싶어.“
“어휴…“
김 여사는 배달 어플을 켰다. 얼마 전부터 김 여사가 사는 제주에도 조금씩 배달 어플에 입점한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너무 흔해서 쳐다도 보지 않았던 베스킨라빈스도 얼마 전 김 여사 동네에 들어와 배달 어플에까지 입점했다.
그녀는 조슈아가 가장 좋아하는 요거트31과 그녀의 최애 엄마는 외계인을 고르고 최저금액에 맞춰 결제했다.
“시켰으니까 이제 숙제해!“
“오예! 네!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신나서 방에 들어간 조슈아는 영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김 여사는 저녁 먹은 걸 설거지하는 중이었다.
지잉
‘벌써 왔나?‘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배달완료 메시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밀리의 서재입니다.
<10월 월간 밀리로드>창작 지원 프로젝트의 우수 작품에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창작 지원금 지급과 제세공과금 신고를 위해……(중략)
밀리로드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다시 한 번 당선을 축하드려요!
“…..!”
김 여사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스팸 메시지인 줄 알고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잊고 있던 그 곳에서 김 여사가 글을 다시 쓴 지 두 달 반, 그리고 절필한 지 이주 만에 연락을 준 것이었다!
“흐흐흐…흐흐흐…”
그녀가 썼던 추리 소설 속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자조적으로 웃었던 것처럼…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어..엄마? 왜…그래? 무서워!!!!”
“조…조슈아…”
“왜? 베스킨 왔어? 빨리 줘. 현기증 나.”
“조…조슈아…”
“왜!!!왜 그래!!!”
“어..엄마…”
“왜? 왜 그래 엄마!!!”
“엄….마!!! 작..작가 됐어!!! 100만 원 벌었어!!!!!!”
그녀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인순이의 노래가 자동재생됐다.
“난, 난 꿈이 있었죠~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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