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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문제, 우리가 직접 해결한다!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이게 뭐야….?”


메일을 확인하던 김 여사의 눈에 낯선 영어 제목 문구가 들어왔다.



“school issues? 뭔 말이야? 학교에서 온 거야?”



김 여사는 영어로 된 그 메일을 클릭했다. 4년 정도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메일을 받아본 적 없었던 김 여사는 메일 첫 줄을 읽자마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메일 전체를 복사해 파파고에 번역을 돌리면서 천천히 한줄한줄 읽어나가던 김 여사는 쿵쾅대던 가슴이 이제는 귀에서 울리기 시작함을 느꼈다.



메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동 수업을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조슈아를 엘리사가 밀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안 들어준 것에 화가 난 조슈아가 엘리사에게 너무 바짝 다가갔기 때문에 엘리사가 밀친 것이므로 서로 사과하며 마무리했고, 엘리사의 폭력은 절대 정당화돼선 안 되지만 조슈아가 상대에게 바짝 다가간 것도 당연히 큰 잘못이기 때문에 두 학생을 나무랐다는 내용이었다.



조슈아에게 어젯밤 들었던 내용과 사뭇 메일에 써 있던 내용이 다르자 김 여사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젯밤, 김 여사는 자기 전에 조슈아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조슈아 방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쭈뼛쭈뼛 조슈아가 할 말이 있는 듯 김 여사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조슈아, 무슨 할 말 있어?“


“…안 혼 낼 거야?“


“뭘 또 엄마가 매일 혼내는 것도 아닌데! 뭔데? 무슨 일 있던 거야?“



조슈아의 낯빛이 어두워짐을 확인한 김 여사는 황급히 누워있는 조슈아의 침대로 다가갔다. 조슈아는 우물쭈물하다가 김 여사에게 털어놓았다.



“사실은 아까 학교에서 혼났어.“


“…왜? 무슨 일이 있었어?“


“…그게…엘리사가 하루종일 내가 말하면 계속 따라 말하는 거야. 내가 ‘아싸 오늘 스파게티!‘ 하면 이상한 목소리로 ’오늘 스파게티!‘ 이렇게. 내가 꾹 참았는데, 음악 수업 가려고 줄 서 있을 때 또 내 말 따라하는 거야.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하면 또 “하지 말라고” 이러고. 그래서 내가 말하면 따라하니까 걔 깜짝 놀라게 하려고 몰래 가까이 갔거든. 하지 말라는 뜻으로. 걔가 그래서 내 배를 밀었는데 선생님이 그걸 봐서 혼났어.“


“…넌 왜 혼난 건데?“


“걔가 내가 가까이 와서 무서웠다고 해서.“


“…“



김 여사는 겨우 잊고 있었던 엘리사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 번 속에서 끓어 올랐다. 엘리사는 저번 체육 시간에도 조슈아가 저리 가라며 밀었다고, 얼굴을 세게 긁어버려 심한 흉터를 남긴 애였다. 그 흉터는 여전히 조슈아의 얼굴에 희미하게 남아있어 보일 때마다 김 여사의 속을 긁어댔다.



그런데…또?



“너…왕따야? 너희 반 애들이 널 괴롭혀? 엄마가 도움을 줘야하는 상황이야?“


“아니. 걔만 그래 나한테.“


“흠…알았어. 그리고 조슈아! 제발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할 때처럼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 저번에는 네가 먼저 엘리사를 밀었다고 해도, 이번에는 고스란히 네가 당한 상황이잖아. 걔가 하루종일 네 말 따라하고 그랬다며.“


“응. 말했어. 자꾸 내 말 따라하고 내 말 안 들었다고.“


“아니, 그러니까 자세히 말했어? 엄마에게 말한 거처럼?“



김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조슈아의 잘못이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싶었던 것 뿐인데,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만 것이다. 김 여사는 주눅 들어 보이는 조슈아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엄마가 미안해. 큰소리 내서.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 엘리사가 널 자꾸 타겟팅해서 괴롭히는 게. 선생님은 이 모든 상황 알고 계신 거야?“


“그냥 내 말 안 들어줬다고 말했어.“


“휴…알았어. 다음에는 그냥 엘리사를 피해. 그리고 엘리사가 놀리거나 하면 그냥 바로 선생님께 말씀드려. 가까이 가고 그런 행동은 걔가 여자애니까 위협적으로 느꼈다고 하면 너도 할 말 없어지는 거야. 조슈아도 다른 방식으로 걔한테 의견을 표출하는 게 좋아. 조슈아는 기분이 어때? 그래서 많이 속상해?”


“아니, 난 괜찮아. 다른 애들이랑 놀았으니까. 그런데 선생님한테 혼난 거 엄마한테 바로 말 못 해서 그거 때문에 혼날까봐…”


“어유, 됐어. 오늘 많이 피곤했겠네. 얼른 자. 잘 자!”


“응! 잘 자 엄마!”



‘휴….맘에는 안 들지만….학교의 방침이 그렇다면…말해봤자 또 나만 극성이라고 보겠네…’



김 여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김 여사는 어쨌든 조슈아와 엘리사 간에 있었던 일을 선생님이 모두 다 파악하고 조슈아도 그거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고 하니 이번에는 학교의 방침에 따라 그냥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번 체육 시간에 엘리사가 조슈아의 얼굴을 긁었을 때도, 그냥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게 학교의 방침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조슈아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많은 아이에요.”


소아정신과 선생님이 조슈아에 대해 말해줬던 게 생각났다.



김 여사는 인류애가 충만한 조슈아가 이러다 지금의 자신처럼 인류애가 바사삭 되는 건 아닌지 우려에 우려를 거듭하며 잠을 설치다 새벽쯤 겨우 잠에 들었다.




이게 바로 어젯밤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메일은 뭐란 말인가. 김 여사는 원문으로 된 메일도 꼼꼼히 다시 읽어보고, 파파고로 번역한 내용도 다시 읽어보았다. 아무리 읽어봐도 이 내용은 김 여사에게 이렇게 들렸다.



“당신 아들이 그 여자애한테 가까이 가 위협을 취한 것이므로, 당신 아들이 맞은 게 유감스럽지만 어쨌든 잘못을 한 거다.”



말은 정말 한 끗의 차이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 여사였다. 김 여사는 학교에서 어제 엘리사가 조슈아가 말할 때마다 따라하며 말을 못 하게 괴롭혔던 건 학교 측에서 파악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게 파악됐다면, 김 여사에게 이런 내용의 메일이 오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 진짜 극내향 I인데…진짜 학교에 전화하는 거 나서는 거 진짜 싫어하는 사람인데…..’



김 여사는 참아볼까도 했지만,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같은 학생이 조슈아에게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벌써 두번째다. 김 여사가 아는 것만 두번째니, 아마 학교에서 지나가듯 이런 일이 더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김 여사는 심호흡을 하고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네, 학굡니다.”


“안녕하세요. 저, 저는 4학년 조슈아 엄마입니다. 어제 제가 학교에서 조슈아와 관련해 메일을 받았는데요.”



김 여사는 최대한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중간에 평정심을 여러번 잃을 뻔 했으나 입술을 꽉 깨물고 꾹 참았다.



“아, 그러시군요. 지금 말씀하신 거 메일로 보내주시겠어요?”


“영어로요?”


“네.”



김 여사는 가슴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짜증이 확 솟구침을 느꼈다.



“저…제가 한국인이다 보니 정말 죄송하지만 영어로 메일을 쓰는 게 조금 힘들어요. 그리고 영어로 제가 지금 말씀드린 모든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도 우려되고요.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쓴 말인데 외국인 선생님께 결례가 되거나 무례하게 들릴 수 있을 수도 있어서 메일을 쓸 때마다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돼요. 게다가 지금 제가 좀 흥분한 상태라 침착한 상태로 오피셜한 메일을 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김 여사는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영어로 메일을 보낼 때마다 자신이 실수한 건 없는지, 이 뉘앙스가 외국인에게 무례한 느낌으로 비춰져 혹시 조슈아에게 불이익이 가지는 않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 그럼 한국말로 메일 써 주세요. 저희가 번역해서 교무실 내부에서 공유하겠습니다.”



김 여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놈의 메일!!!메일!!!!!!!‘



단 한 글자도 쓰기 싫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나름의 작가로 활동하던 김 여사여서 그럴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을 쓰기 시작하니 술술 써지기 시작했다. 김 여사는 어제의 상황과 선생님께서 오해하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국제학교의 방침에 따르고 공감하는 바이지만 겁이 많고 갈등을 싫어하는 성격에다가 덤벙대는 초등학생 남자애라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 해 모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들며 부득이하게 자신이 개입하게 된 이 상황을 사과했다.



‘됐어. 이 정도면!‘


김 여사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학교 측의 답신을 기다렸다.



하지만…답신이 오지 않았다. 수신 확인도 수시로 들어갔지만 ‘읽지 않음‘ 상태 그대로였다. 애타는 김 여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한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엄마!! 나 왔어!!”



조슈아가 하교했고, 김 여사는 신발장에서 조슈아의 가방을 받아주며 물었다.



“오늘은 별 일 없었어? 엘리사가 혹시 너 또 괴롭히거나 그런 거 없었어?”


“있었어!!”



당연히 조슈아가 없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김 여사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에 그 자리에 얼음이 됐다.



“….또? 또? 걔가 또 그랬다고?”


“응!”


“야!!! 뭐가 이렇게 해맑아!!! 또 뭔 짓을 한 거야 걔가!!”


“아, 시끄러워! 귀 아파 엄마!”



김 여사는 심호흡을 쉬며 한 템포 쉬었다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오늘은?“


“걔가 줄 서 있는데, 내 등에 자꾸 복싱하는 것처럼 잽잽 날렸어.“


“….걔는 무슨 깡패야? 왜 자꾸 가만히 있는 너를 건드리는데? 아니, 네가 걔를 건드렸어?”


“아니야!! 나 이번에는 그냥 앞에 제이미랑 얘기하고 있었어. 진짜 오늘은 하나도 안 건드렸어.”


“….야. 그 ㄴ…아니 걔는 무슨 깡패질 하러 학교 오는 거야? 너한테 대체 왜 그래? 너한테만 그러는 거야?”


“몰라.”


“뭘 몰라!!! 학교에서 같이 하루종일 있잖아!!”


“조용히 말해!! 귀 아프다고!! 걔한테 관심이 없는데 걔가 뭐 하고 다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김 여사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또 끊어져 버렸다. 김 여사는 씩씩대며 거실 소파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학기 초 공유했던 비상연락망에서 엘리사 엄마의 번호를 찾아 메시지를 보내놨다.



<조슈아 엄마입니다. 전화 가능하실까요?>



김 여사는 휴대폰을 든 김에 메일함을 다시 확인했다. 학교에서 메일은 오지 않았고, 수신 확인도 아직 ‘읽지 않음‘ 상태였다. 김 여사는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그 놈의 아이들끼리 스스로 해결!!!!!!! 개뿔!!!!!!‘




학교에서도, 엘리사 엄마에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 여사는 박살나는 인류애를 느끼며 조슈아의 수학과 국어를 봐주고 있었다. 공부를 봐주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바라봤지만, 김 여사의 휴대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띠띠띠띠



그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다!!!!“



문제집을 풀고 있던 조슈아가 현관으로 뛰쳐 나갔다.



“엥? 오빠가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내일 오는 거 아니었어?“


“우리 가족들 보고 싶어서 오늘 저녁 비행기로 급하게 바꿔서 서프라이즈로 왔지!!!“


“아….잘 왔네. 힘들었겠다.“


“남편 왔는데 텐션이 왜 이래? 뭔 일 있었어?“


“엄마 엘리사 때문에 열 받아서 그래.“


“엘리사?“



김 여사는 남편에게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듣고 있던 남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김 여사는 “애들끼리 그러면서 크는 거다“라고 말할 줄 알았던 남편의 표정이 점차 험상궂어지는 걸 보고 오히려 더 깜짝 놀랐다.



“아니, 그 ㄴ..아니 그 엘리사라는 그 여자애는 왜 그런 거래?“


“몰라. 조슈아랑 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슈아가 만만한가 봐.“


“아들!! 그러니까 아빠가 김치도 먹고, 생선도 먹고, 우유도 많이 먹고 해서 키 쑥쑥 크라고 했지!!!! 남자 녀석이 그런 여자애한테 매일 그렇게 당하고 그럼 어쩌냐!!“


“남자가 여자 때리면 안 되잖아.“


“그래도!! 걔가 네가 때리고, 놀려도 그냥 넘어가주니까 널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나 본데! 아유, 이거 가만히 안 둬!!“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지 이제 1시간 된 김 여사의 남편은 전투력을 불태우며 김 여사에게 외쳤다.



“전화 오면 나 바꿔줘!!“




지잉 지잉 지잉 지잉



그 때였다. 김 여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김 여사 가족의 대화를 듣고라도 있었던 것처럼 타이밍 좋게 엘리사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김 여사의 남편은 낚아채듯 휴대폰을 잡아들어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조슈아 아빠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처음 들어보는 엘리사 엄마의 목소리는 날이 선 듯 경계심이 가득했다. 아마 그 엄마도 그간의 히스토리 때문에 조슈아를 좋게 보고 있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김 여사는 그 엄마가 제대로 된 히스토리를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었다. 김 여사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긴 대화가 이어졌다. 엘리사 엄마가 처음에는 뭐라뭐라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김 여사의 남편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자 점점 상대편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네, 네. 그러니까 제 요지는 저희 아들과 엘리사 사이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파고들자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저희 아들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엘리사 어머님은 엘리사에게서 이야기를 들으시니까 각자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조금씩은 다를 거 아닙니까.그냥, 우리 조슈아를 건들지 말아달라고 전해주세요. 둘이 안 친하잖아요.“



김 여사 남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둘이 친합니까? 전혀 안 친하죠? 그냥 같은 반 여자애 남자애 그뿐이잖아요. 둘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혀 안!친!하!잖아요.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된 이상 서로 감정이 상해서 더 이상 친해지기도 어렵잖아요.“



남편이 둘은 안 친하고, 앞으로도 친할 일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자 수화기 너머 상대편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사가 조슈아를 때리고 놀리고 이런 거에 대해서 더 이상 저희도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엘리사도 뭐 나름의 사정이 있었나 보죠. 다만, 친해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괴롭힘이나 다름 없습니다. 둘의 성향이 매우 다른 것 같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안 친하게 지내고, 엘리사는 조슈아가 뭘 하든 절대 신경 좀 안 썼으면 좋겠네요. 부탁 좀 드릴게요. 네, 네. 저희 애와 엘리사는 안 친하고, 앞으로도 아마 친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늦은 시간 죄송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김 여사는 제주로 내려와 씻지도 못 하고, 30분 넘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던 남편을 와락 끌어안았다.



“잘했어!!! 그 날 엘리사가 잘못한 거, 막 말 따라하고, 그 때 얼굴 긁어서 아직도 흉터 남아 있다는 거 이런 거 다 디테일하게 얘기 못 한 거는 아쉽지만 그래도 잘 했어!!“


“그런 거 하나하나 따지면 저 쪽에서도 그게 아니고 저게 아니고 하면서 따지고 들어서 싸움만 나. 오히려 그냥 당신 딸 우리 아들이랑 하나도 안 친한데 왜 이렇게 질척대고 건드려? 이럼 자존심 상해서 더 말 못 하지.“


“어유, 우리 남편! 진짜 똑똑해! 너무 스마트해!!!“


“내가 병원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클레임 대응 얼마나 많이 해봤겠니!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거라고! 적당한 때를 기다렸던 것 뿐이라고!“



김 여사는 그날 며칠 만에 아주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읽지 않는 학교메일 주소로 메일을 한 통 더 보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쪽 어머니와 통화해 저희끼리 해결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도 더 잘 관찰하고 가르치겠다고.



학교가 원하는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끼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은 조슈아에게 언제쯤 가능한 일인 걸까. 아니, 조슈아처럼 당하고도 대응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에게 졸업 전까지 가능은 한 일인걸까.



마치 꿈 속 유니콘처럼 느껴지는 학교 원칙을 곱씹어 보며, 김 여사는 그날 밤 간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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