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티모시 모자와 조용히 손절했던 사건 이후로 몇 달이 흘렀다. (친해지는 것도, 손절도 5G 시대 참조)
조슈아는 그 때 수학학원을 그만둔 후, 아직까지도 마땅한 곳을 찾지 못 해 방황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 때 전화로는 학원에 선생님 문제는 아니라고 했지만 선생님 문제도 없지는 않았다. 조슈아가 영 수학에 흥미를 못 붙였기 때문이다.
“휴…진짜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데…마땅한 학원이 없네.”
그간 김 여사는 조슈아를 데리고 이 학원, 저 학원 상담도 다니고 레벨 테스트도 봤다. 그 중 어떤 곳은 30분 상담했다며 상담비 10만 원을 내라고 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이런 양아치 같은 학원에는 당연히 등록도 하지 않았다. 어떤 곳은 선생님도, 커리큘럼도 꽤 괜찮아 보여 레벨 테스트까지 봤건만 조슈아와 비슷한 레벨의 친구들이 두어 명이 더 등록하면 반을 편성해 연락해 주겠다는 말만 남긴 채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안 되겠다!! 일단은 학원 찾을 때까지 엄마표다!!”
김 여사는 그간 미뤄왔던 조슈아의 수학 공부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찮은 학원을 서치할 때까지만 집에서 조슈아와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소싯적, 과외로 용돈 벌이 좀 했던 그녀였다.
‘남도 가르쳐 봤는데, 아들은 당연히 가르칠 수 있지!‘
김 여사는 우선 조슈아와 집에서 공부할 수학 문제집부터 탐색하기 시작했다.
‘음…얘가 아직 수학을 잘 하지는 않으니까 심화는 패스…블랙라벨? 당연히 패스. 응용? 응용 정도는 풀려나? 하…아니야. 일단은 몇 달 수학을 쉬기도 했으니까 기본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응용하는 게 나을 거야.’
서울이라면 집 근처 큰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하나하나 꼼꼼히 비교해본 후 구매할 텐데 여기는 집 근처에 한국 수학 문제집을 푸는 서점도 없었다. 김 여사는 인터넷으로 꼼꼼히 리뷰를 비교해본 후, 그 중 가장 적당해 보이는 기초 문제집 하나를 쿠팡에서 구매했다.
“조슈아, 며칠 후부터 수학 다시 시작이야.”
“에? 아…수학 싫어…학원 등록했어?”
“아니, 엄마랑 할 거야. 당분간.”
“뭐? 엄마랑? 오 마이 갓!!!”
“엄마도 오 마이 갓이거든!!!”
“언제부터 하는데? 언제부터 지옥문이 열리는 건데?”
“이틀 뒤. 오늘 쿠팡으로 샀으니까 내일 모레 온다. 그 때 시작할거야.(제주는 쿠팡 배송이 이틀 걸린다)”
이틀 뒤, 조슈아의 하교 후 김 여사와 조슈아의 수학 공부가 시작됐다.
“일단, 너 어느 정도 실력인지 봐야 되니까 혼자 두 장만 풀어봐. 정말 쉬운 기초 문제집 샀으니까 진짜 이것도 어려워하면 너 큰일이다 진짜. 비상이야 비상.”
김 여사는 책상에 문제집을 내려놓으며 조슈아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조슈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조슈아가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그간 조슈아와 수학 공부를 해본 적 없었던 김 여사였기에 내심 그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수학학원 꽤 다녔는데, 어느 정도는 풀겠지? 완전 생기초인데.’
김 여사는 조슈아 옆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문제 풀기를 기다렸다.
한 30분쯤 지났나…김 여사가 읽고 있던 책을 열 장 정도 읽었을 때쯤 조슈아에게 물었다.
“다 했어? 두 장만 풀라고 했잖아.”
“아니? 반 장 했어.”
“…뭐? 한 장?”
“아니! 안 들려? 반 장!!”
너무도 당당한 조슈아의 태도에 김 여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자신이 기초가 아니라 블랙라벨 문제집을 잘못 산 건가 하고 조슈아가 풀고 있던 문제집 겉표지를 들춰보았다. 거기에는 똑똑히 적혀 있었다.
<초등 6학년 기본 수학>
정확하게 ‘기본’이라고 쓰여 있는 문제집을 바라보며 김 여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속도만 느리고 답은 다 맞을 수도 있으니까…’
거의 1시간 반은 걸려서 수학 2장을 푼 김 여사는 채점을 하다가 득음을 할 뻔 했다.
“야!!!!!!!!!!!!! 제정신이야!!!!!!!!! 이게 뭐야!!!!!!!!!!!”
간단한 계산 문제마저 다 틀린 조슈아는 뚜껑이 열리기 직전인 김 여사와는 상반되게 평온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려워.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도 이해 안 됐어.”
“그럼,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야지.”
“말하기 창피해.”
김 여사는 그간 학원을 믿고 손 놓고 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문제집에 내리는 빨간 비를 보며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당연한 결과였다는 듯 받아들이는 조슈아를 보니, 수학에 대한 조슈아의 어려움은 꽤나 오래 지속된 것 같았다.
‘괘…괜찮을 거야,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괜…괜찮은 거…맞겠지?‘
김 여사는 연습장을 펴들고 조슈아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분수의 나눗셈과 곱셈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엄청난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다. 김 여사의 정수리는 올라온 화 때문에 뜨끈뜨끈 날계란도 익을 판이었다. 김 여사는 화를 꾹꾹 참으며 다시 한 번 조슈아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엄마가 진짜 딱 한 번만 더 얘기한다. 곱셈은 위 아래를 이렇게 지우면 되고, 나눗셈은 이걸 이렇게….뒤에 있는 분수를 거꾸로 바꿔서 곱하라고. 이제 좀 외워라 제발.”
“아~~ 이게 매일 헷갈렸어!!”
“아니…이건 기본이잖아. 헷갈리면 그동안 어떻게 문제를 푼 거야?”
“그래서 틀렸잖아 헤헤”
해맑은 조슈아를 보며 김 여사는 할 말을 잃었다. 말 그대로 뚜껑 열린 김 여사는 그날 부로 김 여사의 수학교실도 같이 열었다. 매일매일 그녀는 조슈아의 하교 후, 조슈아에게 분수와 소수를 가르치고, 평면도형과 각기둥을 가르친 다음에 원의 둘레와 넓이에 대해 가르쳤다. 흰 종이 같았던 조슈아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수학 지식이 쌓여가 제법 그럴 듯한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그 때 그 학원…조슈아가 레벨테스트를 너무 못 봐서 연락 안 준 거였나봐…‘
김 여사는 그 때서야 마음에 들었던 그 수학학원에서 연락이 왜 안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알고나니 짜증과 함께 그간 헛되게 보낸 시간이 더욱 아까워졌다.
조슈아는 김 여사와 함께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5학년 수학은 좀 더 탄탄하게 다지고, 구멍투성이였던 6학년 수학은 빈 곳 구석구석을 메꿨다.
두 달쯤 후, 수학 기본 문제집을 마치며 조슈아는 외쳤다.
“엄마 최고!! 나 이제 수학 완전 잘하지?”
‘음…잘하진 않고…이제 조금은 아는 것 같다’
김 여사의 솔직한 마음은 이랬지만, 조슈아의 동기부여를 위해 그녀는 말했다.
“응 우리 아들 정말 잘 한다! 이제 좀 더 어려운 응용편 하면 딱 좋겠다!”
“응! 하자하자! 엄마랑 하니까 이해가 잘 돼! 엄마랑 할래!”
“….응?”
기본을 끝냈으니, 이제 응용은 학원에 보내려던 김 여사는 아들의 성화를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김 여사로서도 아들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긴 했다. 몸이 예전보다 한 10배쯤 힘들어서 그렇지..
“그래!! 엄마가 왕년에 과외로 돈 좀 벌어봤던 사람이야!! 너 하나 못 가르치겠니?”
“왕년이 뭐야?”
“…조슈아, 너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국어는 어느 정도 아는 거야?”
그 날, 쿠팡에서 초등 국어 독해 문제집을 구입한 김 여사는 며칠 후 문제집이 도착하자마자 조슈아에게 펼쳐 보였다. 첫 문장부터 모르는 단어투성이라는 조슈아를 보며 김 여사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다시금 길게 내쉬었다.
‘진짜…국제학교라서 국어가 이 지경인 거야, 아니면 믿고 싶지 않지만 내 아들 머리가….?’
그 날부터 김 여사의 초등수학 응용편 교실과 더불어 초등국어 교실이 열렸다. 김 여사는 아들이 모르는 단어를 최대한 쉬운 다른 단어로 바꿔 알려주면서 조슈아의 이해를 도왔다. 다행히 조슈아의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던지 날이 갈수록 김 여사의 아들 조슈아의 머릿속에는 빠르게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조슈아가 지식을 얻는 동안, 김 여사는 샤우팅 기술을 얻었다.
“나 이제 노래방에서 김현정이랑 김경호 노래도 키 안 낮추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거의 득음 수준이라니까? 내 애 가르치는 게 진짜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얼마나 답답한데! 내 생각에는 애 낳는 거보다 이게 더 어려워.”
주말에 내려온 남편과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김 여사는 조슈아를 가르치는 고충에 대해 토로했다. 남편은 아까부터 계속 한 주간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김 여사를 빤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여보는 전문직이라니까? 유준이 멘털, 체력 이제는 지식 케어까지. 그거 여보밖에 못 해.“
“그런데 오빠…아까부터 왜 이렇게 날 빤히 봐? 나 뭐 묻었어?“
“….음…아니야. 아무것도“
“뭔데?“
“아….솔직히 말해도 돼?“
“…뭔데?“
불안감이 엄습한 그녀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이마랑 미간 보톡스 다시 맞아야겠다. 흰머리도 너무 많이 났는데…뿌염 좀 해야 될 듯.“
“….“
김 여사는 요즘 샤우팅 기술뿐 아니라 주름과 흰머리까지 덤으로 얻었다. 아, 급속 노화도!!
‘와, 하나를 했더니 4개를 얻었네? 이거야말로 1타 4피네^^ 우리 아들만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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