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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일이었네, 유니콘!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주말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간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던 김 여사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Spring Festival에 초대합니다. 이번 Spring Festival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플리마켓과 공연을 펼치며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예정입니다. 부디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고,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꾸민 부스에서 다양한 활동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하는 Spring Festival 관련 문자 메시지였다. 작년까지 저학년이라 장기자랑 공연만 했던 조슈아는 이제 고학년이 되어 친구들과 스스로 부스를 꾸며서 물건을 팔거나,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게임의 체험을 도울 수 있었다.



그 날, 하교한 조슈아에게 김 여사는 페스티벌에서 어떤 걸 하게 됐는지 물었다.



“나는 게임 부스해!”


“무슨 게임 하는데?”


“그거 알려주면 안 되지!“


“누구랑 하는데?”


“3명인데 다 딴 반 애들이야.”


“아는 애들이야?”


“당연하지! 4학년 남자애들끼리는 다 알아!”



한 반에 일반 초등학교에 비해 적은 수의 인원이 있는 데다가, 그 중에서도 반만 남자이기에 4학년 남학생 전부라고 해도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되면 전교생이 함께 어우러져 내 반, 네 반 관계없이 뛰어노는 게 이 학교의 분위기였다.



페스티벌 준비를 위해 조슈아는 학교에서 무언가 매일 열심히 만들고, 붙이고 하는 모양이었다. 하교 후 돌아온 조슈아의 교복 바지는 매일 못 보던 본드, 물감, 흙 자국이 가득했고 김 여사는 그걸 깊은 한숨과 함께 매일 빨았다. 하루는 교복 소매 부분에 싸인펜 자국이 가득해 참고 참다가 김 여사가 조슈아에게 폭발한 적도 있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학교에서!! 대체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뜨거운 물에 네 빨래 불려다가 비트로 매일 100번씩 문지르면서 이거 지워대야 돼?!!!!!! 손 아파 죽겠어!!!”


“뭐 만드느라 어쩔 수 없었어!”


“아니, 꼭 이렇게 다 묻히면서 해야 돼? 4학년이나 돼서 칠칠맞게 뭘 이렇게 다 묻히고 다니냐고 대체!!!”


“나만 그런 거 아니야!!”


“어휴…내 팔자야…”



김 여사는 별에 별짓을 해도 안 빠지는 사인펜 자국 때문에 씨름하다 인터넷에서 발 빼고 다 씻자는 별명의 ‘발을 씻자‘까지 사와 결국은 자국을 지워냈다.



‘어휴…내일 또 묻혀오겠지…’



깔끔한 그녀의 성격상 얼룩덜룩 지저분한 교복 상태 그대로 학교에 보내기는 맘에 걸렸고, 이렇게 매일 새로운 자국이 생기는 아들의 교복을 손목이 부서져라 지워대자니 죽을 맛이었다.



‘아오, 페스티벌!!! 빨리 좀 끝나라!!!’



그렇게 고난의 며칠이 지난 후 페스티벌 당일이 되었다. 학교로 향한 김 여사는 교문부터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 놓은 페스티벌 장식에 미소가 지어졌다. 학교로 들어서는데 벌써부터 아이들의 함성 소리와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려 진정 큰 축제인 게 실감이 났다.



김 여사의 아들 조슈아와 윗 학년 학생들은 필드에서 부스를 세워 저마다 다양한 테마로 음식과 물건, 게임 진행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스가 준비되는 동안, 필드 위 단상에서는 아이들의 춤과 노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 여사는 몇몇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공연을 바라보았다.



‘애들 잘 하네! 연습 많이 했나 보다!’



격렬한 안무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아이돌 같은 표정과 포즈를 지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에 김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학생들이 직접 노래를 선곡해, 의상을 고르고, 댄스 연습을 했을 걸 생각하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김 여사는 대학생 때 밤새 친구들과 팀플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20살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고작 지금 11살, 12살이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게 임무를 멋지게 완수해내는 걸 보니 뭉클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공연이 끝나고 조슈아가 활약하는 부스 타임이 시작됐다. 조슈아는 친구들과 승부차기 게임 부스를 만들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이거 공을 차서 여기 골대에 3번 넣으면 상품! 5번 넣으면 게임 1회 더 할 수 있는 이용권!”



김 여사는 조슈아와 친구들이 그간 만든 게임 부스를 보고, 그녀가 빨아댔던 자국과 얼룩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방에 알아볼 수 있었다.



폐지와 버려진 상자를 한땀한땀 잘라붙이면서 묻은 본드, 그랗게 만들어진 골대에 색칠하면서 묻은 물감, Soccer Time이라는 자신들의 부스 제목을 쓰고 꾸미기 위해 묻은 사인펜…



김 여사의 머릿속에서 이제야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생각보다 아주 근사했다.



김 여사는 아이들이 역시 종이로 만든 콘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해 공을 찼다. 생각보다 정교하게 만든 장애물 때문에 골 넣기가 쉽지 않았던 그녀는 겨우 세 골을 넣고 상품인 막대 사탕 3개를 받을 수 있었다. 제법 땀이 나고, 긴장되는 게 썩 잘 만든 게임이었다.



“너희 진짜 잘 만들었다! 이모가 감탄했어!”


“감사합니다!”



함박웃음을 띠며 아이들은 김 여사의 칭찬에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 후 몰려드는 부스 방문객에 김 여사는 다른 부스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탕후루, 떡꼬치도 먹어 보고 컵쌓기 부스에서 컵 빨리 쌓기도 해보았다. 회전판을 돌린 후 자석을 던져 맞춘 곳에 있는 상품을 받는 부스도 가 보고, 다 본 책이나 옷, 신발 등을 파는 벼룩시장 부스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김 여사는 학교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문제를 학생 스스로 해결한다‘가 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꾸미며 만드는 동안 얼마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을까? 김 여사는 그것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이런 멋진 결과물을 부모들에게 선보여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김 여사는 문득, 잊고 있던 메일함이 생각났다. 사실 김 여사가 흥분해 학교에 메일을 보냈지만 수신 확인이 안 됐고, 엘리사 엄마와 통화하며 엘리사와 조슈아 사이에 일어났던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 날… 그 날 이후로 김 여사는 메일함에 들어가보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그날 통화를 통해 엘리사와 조슈아 사이의 갈등이 해결됐고, 엘리사는 통화 이후 학교에서 조슈아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김 여사는 생각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상처가 봉합된 이런 상황에서 만약, 또 다시 그 일과 관련해 김 여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뉘앙스의 학교 메일이 와 있다면…?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문제가 봉합돼 괜찮아진 마음의 상처를 벌리는 꼴이 될 것 같아 메일함을 열어보기가 진심으로 두려웠다.



그녀는 페스티벌로 북적북적 시끄러운 학교 스탠드에 앉아 휴대폰에서 메일 수신함을 열어 보았다. 역시, 며칠 전 학교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김 여사는 심호흡을 한 후 메일을 클릭해 보았다.


[어린 나이에는 감정에 따라 판단이 흐려질 수 있고, 아이들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학교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이들에게 자기 표현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게 저희가 생각하는 학교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 해결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통해 조슈아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손 내미는 방법, 문제 상황이 있을 때 스스로 이를 개척하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끔 학교에서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조슈아의 성장을 위해 함께 힘써주시는 등등한 동반자로서, 저희 학교가 앞으로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여사는 자신이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에 치우쳐 학교의 원칙을 넓게 보지 못 했음이 부끄러워졌다. 이미 갈등 상황은 다 잊고 친구들과 너무나도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조슈아보다도 부족한 행동이었음을 진심으로 반성했다.



그녀는 푸르른 하늘과 각자 부스에서 최선을 다하며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잔디 위에 굴러다니는 형형색색의 풍선들을 보며 생각했다.



‘유니콘이 아니었네! 진짜 할 수 있는 거였어! 내 아들이랑 이 애들이랑 산증인이네! 보내길 잘 했어 이 학교!‘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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