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아 맞다. 여보 아까 세스코 85000원 빠져나갔더라.”
“아 진짜? 안 그래도 이번주에 오셔 세스코 아저씨.”
“아니,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두 달에 한 번 오는 거잖아. 좀 비싸지 않아? 이참에 좀 쉬어보는 건 어때?“
“응. 안 돼 오빠.”
“두 달에 한 번 오는 건데…그래도 정말 도움이 되는 거야? 난 상가 건물 말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세스코 부르는 거 진짜 처음 알았어. 우리 병원에도 오잖아. 세스코 아저씨. 그런데 당신 서울 살 땐 집에서는 세스코 안 불렀었잖아.”
“오빠, 그게 제주 라이프야. 모르면 말을 마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김 여사의 남편은 모른다. 일주일에서 이주일에 한번씩 여기 오니까. 제주에 얼마나 무한한 자연이 살아 숨쉬는지 김 여사의 남편은 절대 모른다.
#세스코 당일
“오셨어요?”
김 여사가 파란 유니폼에 파란 모자를 쓴 세스코 기사를 반겼다. 김 여사는 이제 세스코 기사의 파란색 유니폼만 보아도 막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괜히 유니세프랑 유엔이 파란색이 아니라니까…? 유니세프는 아이들을 돕고, 유엔은 세계를 돕고, 세스코는 벌레로부터 날 돕고…‘
세스코 기사의 파란색 유니폼은 신발장에 기사가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김 여사에게 힐링으로 다가왔다.
“저번 달은 어떠셨어요? 저번달은 제가 방문 안 하는 달이었는데…어떻게 좀 수월하셨어요?“
“…저 자다가 발등에 물려가지고 큰 병원 가서 해독 주사까지 맞았잖아요…”
“어이쿠!!! 저런!!!”
“진짜 너무 아파가지고!!! 막 이만큼 부었어요!!”
김 여사가 투덜투덜 지네에 물렸던 상처에 대해 토로하자, 세스코 아저씨는 이해한다는 듯 그녀를 위로했다.
“진짜, 지난 달에 다른 집들도 난리였어요. 올해 지네가 아주 이 지역에 기승이에요. 어떤 분은 마당 있는 집인데 분갈이하려고 화분을 들었다가…”
“…잠깐…설마….”
“맞아요…그 설마….고 화분 놓여있던 그 얼마 안되는 자리에 지네 수십마리가 우글우글해가지고, 원래 제가 가는 달도 아니었는데 급하게 연락 주셔서 그 집 가가지고 약 한 번 더 쳐드리고 했다니까요.”
“와….진짜….듣기만 해도 너무 소름…어떻게 안 되는 거예요? 지네 진짜….너무 싫어요!!!”
김 여사는 지난 달 새벽, 자다가 괴성을 지르며 깼다. 갑자기 발등에 말도 못 할 정도로 큰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진짜 깜깜한 밤 중에 김 여사의 눈 앞에 별이 보였다. 김 여사는 통증이 있는 쪽 발을 바닥에 질질 끌다시피 해서 겨우 전등 스위치를 켰다.
“어머! 이게 뭐야!!”
그녀의 발이 벌에라도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친 한 마디가 있었다. 엄마들 모임에서 들었던 그 말 한 마디.
“지네 물리면 진짜 별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침대 위에는 진짜 그 놈이 있었다!! 김 여사의 손바닥 만한 지네는 수백개의 다리를 꿈틀대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김 여사의 사고가 순간 정지됐고, 지금이 새벽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그녀는 포효했다.
“끼야야야야야야야야약!!!!!!!!”
그날 새벽, 김 여사는 황급히 안방문을 걸어 잠그고, 조슈아 방에 가서 쪽잠을 잤다. 아침에 되자마자 당근에 ‘지네 잡아주실 분’ 이라는 글을 올리니 몇몇 분이 김 여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중 김 여사는 가장 빨리 오실 수 있는 분을 삼만원에 겨우 모셔 그 몹쓸 지네놈을 잡을 수 있었다. 잡히는 순간까지도 그 놈의 다리는 너무도 세차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챠라락챠라락
그 놈이 도망치면서 바닥을 기어갈 때, 벽을 탈 때 났던 소리가 김 여사의 귓가에 생생히 남았다. 그렇게 너무나 강렬했던 그 놈과의 조우는 김 여사의 눈과 귀에 아직도 사진처럼 박혀 있었다.
사실, 김 여사는 지네에 대해 엄마들을 통해서도 익히 들어왔기에 그 놈의 악명 높음을 아주 잘 알고는 있었다. 새 학년이 되어 학부모 모임을 할 때마다 새로 제주에 내려온 엄마들이 기존 엄마들에게 “제주에서 뭘 신경써야 되느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벌레랑 습기!!! 꼭 조심하세요!! 특히 지네한테 물리면 진짜 순간 별 보이고, 습기 우습게 봤다가는 온 가구가 곰팡이한테 잡아 먹힙니다!!!”
3년 전, 김 여사가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그녀도 다른 엄마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그녀는 그냥 적당히 신경쓰면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이게 아주 큰 오산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지옥을 맛보았다. 제주에서의 첫 여름 방학 때 제주 집에 제습기를 안 틀어놓고, 서울에 올라갔던 그녀는 제주 집에 있던 모든 물건이 곰팡이에게 초토화된 현장을 보고 놀라 기절할 뻔 했다. 그녀는 플라스틱에까지 하얗게 곰팡이가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게 되었다. (김 여사도 정말 정말로 알고 싶지 않던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김 여사는 방학이라 집을 며칠 비우게 되면, 자동 배수되는 제습기로 시간 설정을 해 하루에 몇 시간씩 꼭 켜지게 설정을 해 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 때의 여파로 김 여사는 지금도, 언제나 하루의 시작을 옷방 제습기 돌리는 걸로 시작한다. 그녀가 아끼고 아끼던 가죽재킷을 그날 곰팡이와 함께 작별인사했기 때문이다. 제주는 그녀의 관심이 하루라도 닿지 않으면 가시라도 돋는 것처럼, 그녀에게 매일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습기와 벌레는 세트인지라, 습기가 한 번 그렇게 퍼져 집 안을 잠식하자, 온갖 벌레들도 그 집을 점령하게 되었다. 김 여사는 집에 타란튤라처럼 커다랗고 까만 거미가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과, 지네가 벽을 타면 asmr 유튜버들이 플라스틱에 태핑하는 소리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 여사는 이것들 역시 정말,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 방학 후 엄청난 충격과 공포로 집을 거의 갈아 엎었던 김 여사는 그 때부터 세스코를 계약해 두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도 처음에는 매달 부르던 것을 남편이 가격 부담 이슈로 자꾸 눈치를 주는 바람에 두 달에 한 번 간격으로 늘린 것이었다.
‘딱! 정말 딱 한 번이라도 그렇게 제주의 대자연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면, 이 집에 사는 동안 세스코 아저씨를 부르지 않는 무모한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질 텐데…’
김 여사는 남편이 세스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세스코 아저씨가집안 곳곳에 약을 치며 관리해준 결과, 벌레는 많이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1층이기에 아무리 안에서 벌레를 죽여도, 득달같이 바깥에서 또 벌레가 들어왔다. 결국, 그렇게 세스코 아저씨는 정기적으로 김 여사 집에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 되었다.
“지네 말고…뭐 딴 애들은 없었어요?”
“돈벌레랑 뭐… 돈벌레는 이제 징그럽긴 한데 슬리퍼로 보는 족족 죽일 정도는 됐어요. 하도 보여. 아! 그리고 거미는 이제 안 보여요.”
“다행이네요.”
“지네는…진짜 약으로도 안 되는 거예요?”
“네….아쉽게도…..습기 올라오면 바로 지네 생기니까 습기 관리 진짜 잘 해주시고 그럴 수밖에 없어요. 다음 달에는 서울 안 올라가세요?”
“네, 아직 방학이 아니라 서울 길게 갈 일은 없어요.”
“네, 진짜 제습기랑 틈틈이 틀어주시고, 나갔다 오시면 문 바로바로 닫아 주시고…”
“저희 집이 1층이라….더 그런 거죠?”
“네…아무래도…아파트 화단이랑 거실 창이랑 이렇게 맞닿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벌레들이 쉽게 잘 들어오는 구조이긴 하지. 1층이니까 땅에서 습기도 솔찬히 올라오고! 제가 아주 꼼꼼하게 약 많이 쳐 드릴테니 걱정 마셔”
김 여사는 제주에 내려오기 전, 학교 앞 아파트들이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글들을 읽었다. 안 그래도 내향적인데다가 남편도 없는데 누군가가 김 여사에게 싫은 소리를 하며 접촉하는 게 두려웠던 그녀는 아파트 1층을 계약하고 만족해 했었다.
하지만 층간소음으로 싫은 소리 안 들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대신, 습기와 벌레 이슈가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 내가 4년이면 많이 참았다!! 5학년 되면 조슈아도 좀 철 들겠지. 그 때는 나도 탑층으로 이사갈거야!! 1층은 이제 영원히 안녕이닷!!‘
김 여사는 오늘도 바라고 또 바랐다. 조슈아가 얼른 5학년이 되어, 이 1층과 작별할 날을.
마지막까지 여기저기 칙칙 약을 뿌려주신 그녀의 구세주 세스코 아저씨가 집을 나서다 말고 갑자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제주 민간 요법이긴 한데…“
“무슨 민간 요법이요?“
“우리 어렸을 때는 지네 물리면 그 자리에 소변 바르면 독소 금방 가라앉는다고 그러긴 했었거든요 “
“아…“
“에이, 사모님 같은 분들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긴 한데 실제로 내 친구들이나 나나 어렸을 때 그렇게 지네 물리면 그 자리에 소변 바르고 낫긴 했어요. 다음에 호오오옥시나 또 물리시거나 그랬는데 많이 붓게 되면…뭐 알고는 계시라고..“
“아…네… 감사해요.“
아저씨를 배웅하고 문을 닫은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변이라……하…..’
습기로 100% 충전된 제주의 공기 속에서, 건조함이라고는 모른 채 살아가는 오늘. 그녀의 피부는 탱글탱글하게 습기를 머금고 햇볕에 반사돼 반짝거렸다.
‘…건조한 날의 뽀송함….어떤 거였더라…이제 기억도 나지 않네…그나저나…이제는 소변도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건가….하…쉽지 않아 쉽지 않아….‘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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