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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는 글렀네 글렀어!!

국제학교 보내는, 서울 20억 자가, 병원장 사모님 미쎄쓰 킴!

by 유리


“엄마, 아빠 병원 가서 도와주고 올테니까 너무 늦잠 자지는 말고! 알았지? 아홉시에는 일어나 그래도!!“


“….음…알았어….“


잠에 취한 조슈아가 김 여사의 당부에도 듣는둥 마는둥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 여사는 그런 조슈아를 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남편을 따라 나섰다.



김 여사는 지금 서울이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이번주 초, 남편이 김 여사에게 전화로 이번주 토요일에 서울에 올라와 병원 카운터에서 근무 좀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여보, 이번주 토요일에 유준이 뭐 중요한 거 없지 제주에서?“


“응. 수영 학원 하나밖에 없어. 왜?“


“아, 그럼 수영 이번주만 빠지고 올라와서 나 좀 도와줘.“


“잉? 갑자기? 무슨 일인데?“


“이번주 토요일에 간호사 쌤이 연차냈었는데 내가 깜빡했었어.“


“…그래서?“


“당장 이번주고, 하루만이니까,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여보가 와서 하루만 일 좀 해주라. 카운터만 봐주면 돼. 지금 원래 있던 인력 한 명도 갑자기 관둬서 손이 모자르단 말이야“


“하…조슈아 수영까지 빠지고?“



김 여사는 남편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 수영, 내가 토요일에 돈 못 벌면 어차피 못 보내잖아. 응? 하루만 와서 일 좀 해줘. 알았지?“


“….알았어.”



남편의 학원비 공격에 할말이 없어진 김 여사는 수영 학원에 전화해 이번주 토요일에 있던 조슈아의 수영 수업을 다른 날로 급하게 옮겼다. 그 후, 금요일 오후에 조슈아가 하교하자마자 급하게 픽업해 서울로 날아온 것이다. 엄마, 아빠가 둘 다 일하러 나가 토요일 반나절 서울 집에 혼자 남게 된 조슈아는 늦잠자고 게임할 생각에 들뜨기만 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김 여사의 속은 부글부글 끓기만 했다.



‘엄마 아빠 없어도 혼자 제때 일어나서 제 할 일 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건가….‘



창 밖으로 보며 말없이 조슈아가 룰루랄라 놀고 있을 생각에 걱정이 가득했던 김 여사와 달리, 그녀의 남편은 룰루랄라 신이 나 보였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김 여사가 남편의 웃는 표정을 보고 심통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좋지. 오랜만에 마누라랑 이렇게 둘이 차 타고 출근하는데! 얼마나 좋아~”



서울에 살 땐, 간호사들이 급하게 휴가를 가거나 병원에 손이 모자를 때 종종 김 여사가 가서 남편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하지만 제주로 내려온 이후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해져 사실상, 김 여사의 오늘 출근은 거의 몇 년 만이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그녀와 병원에 가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김 여사의 마음과는 상관 없이.



‘아니, 그래도 병원장 와이프인데…사모님 취급은 못 받더라도…병원 가면 매번 허드렛일만 하고 말이야…휴…‘



김 여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창 밖만 바라보았다. 30분쯤 운전해 남편의 병원에 도착했다. 둘은 도착하자마자 지문으로 문을 열고는 병원 전체를 청소기로 싹 돌렸다.



“허허, 둘이 하니까 금방 하네 오늘은!!“


“아직도 오빠가 혼자 이렇게 청소하는 거야? 청소 이모님을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좀 불러.“



김 여사가 웃고 있는 남편에게 묻자, 남편은 그녀에게 말했다.


“그게 다 얼만데! 크지도 않은 병원, 내가 좀 일찍 와서 청소기 돌리고 닦고 하면 되지!”



‘으이그….그러니까 매일 지쳐가지고, 정작 서울 우리집은 청소할 기력도 안 남아있지…이 인간아…‘



김 여사는 애써 마음의 소리를 삼켰다. 시종일관 기분 좋아 보이던 남편이 가운을 입고 진료실로 들어갔고, 김 여사가 카운터를 닦고 정리하고 있으니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김 여사는 병원 이름이 적힌 가디건을 입고는 카운터에 앉아 손님 맞이를 시작했다.



토요일, 평일 동안 일이 있어 병원에 오지 못 했던 손님들이 하나 둘 병원 대기실을 채우기 시작하더니, 금세 조금 북적일 정도로 손님이 찼다. 김 여사도 한 분, 한 분 정성스레 응대하며 수납, 접수일을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진료비가 비싸지 않네..’



정신없이 수납할 때는 미처 매출이 얼마인지 일일이 확인할 틈도 없이 일하느라 몰랐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남편 피부과에 오는 손님들은 큰 돈을 쓰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미용 시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보다는 일반 피부 진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남편의 병원에는 미용 시술 기구가 많지 않았다. 남편이 몇 달 전, 다른 대형 최신식 피부과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 같다며, 몇 개의 시술 장비를 구매했다고 했는데 그래봤자 다른 데에 비해서는 그 수가 턱없이 적긴 했다.



“이 기계 하나에 중형차 한 대 값이야”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남편 병원에는 차 두세 대는 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그럼, 다른 병원들은 원내에 차가 한 10대쯤은 있는 거야? 어휴…피부과가 비싼 이유를 알겠네…‘



김 여사는 가끔 미용 시술이 다양하지 않은 남편의 병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이런 피부과도 있는 거지! 난 틈새를 노리는 거야.“



‘남편이 말했던 틈새란 바로 이런 걸 말했던 건가. 돈 안 되는 일반 피부 진료하는 틈새…’



김 여사가 바쁘게 수납하며 생각했다. 그 때였다. 병원 문이 열리고는 어떤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 한눈에 봐도 걸음걸이가 너무 불편해 보였다.



“저…여기서 사마귀 제거도 해요?“


“사마귀요? 잠시만요. 앉아계시면 제가 원장님께 여쭤보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하…여기서도 안 봐주면 난 진짜 갈 데가 없는데…내가 원래 다니던 곳이 이제 오지 말라고 해서…여기 원장님은 이런 거도 다 봐주신다고 소문 들어서 그래서 온 건데…”


“네, 제가 금방 여쭤볼게요. 잠시만요.”



김 여사는 빠르게 카운터 컴퓨터로 남편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오빠. 어떤 할아버지가 사마귀 제거 되냐고 물어보시는데 뭐라고 말씀드림 돼?>



남편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바로 들어오시라 해. 부위가 어디시래?>



그제야 김 여사는 자신이 부위가 어디인지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다시 대기실의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할아버님, 혹시 부위가 어디세요? 사마귀 난 부위가 어디세요?”


“발가락. 여기가 두 번 재발해서 두 번 냉동 치료 받았는데 또 재발했어요. 너무 아파서 신발도 못 신겠고, 걷지도 못 하겠어요. 제발 좀 봐줘야 하는데…된다고 하세요?”


“잠시만요. 원장님께서 사마귀 부위를 여쭤보셔서.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쩝….”



할아버지는 너무도 간절한 눈빛으로 메신저를 쓰고 있는 김 여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 여사의 눈은 컴퓨터 화면의 메신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오빠, 발가락이래. 그리고 두 번 냉동치료했는데 재발하신 거래>


<바로 안내해 드려.>



“할아버지, 원장님께서 들어오시래요.“


“하이고. 하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 여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자신에게 이렇게나 고마워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마취크림을 바른 채 30분 대기해야 했다. 배드에 누워 사마귀 레이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마취크림을 발라준 간호조무사에게 계속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작은 병원이라 프론트에 있는 김 여사에게도 그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하이고, 이제는 살겠네. 너무 고마워요. 치료해 줘서.“



할아버지가 대기하는 동안, 김 여사의 남편은 두어 명의 환자를 더 진료했고, 모두 일반 피부 진료였다. 정말 할아버지의 말대로 남편의 병원은 ‘틈새 시장’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미용 치료보다 일반 피부 진료 보는 병원으로.



<나 이제 할아버지 CO2 레이저 들어가는데 시간 좀 걸릴 수 있으니까, 환자분들 오시면 대기하시라고 안내 좀 해줘>


남편의 메신저에 김 여사는 알겠다고 답변을 보내고는 카운터에서 손님 응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젊은 여성 손님 두 명이 들어왔고, 김 여사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 보톡스랑 LDM 이벤트 하죠? 예약 안 했는데 지금 되죠?“


“네, 그런데 원장님께서 지금 시술 중이시라 좀 대기하셔야 해요.“


“아….진짜요? 여기는 안 기다리고 바로 진료 볼 수 있대서 온 건데…많이 기다려요?“


“아니에요. 조금만 기다리심 돼요. 여기 접수하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어느 정도요?“


“음…10분~15분 정도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네.저희 약속이 있어 가지고 많이는 못 기다려서요.“


“네.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그렇게 바쁘면 예약을 하지 그랬어!!!‘



기다린다는 말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손님들을 보며 김 여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 두 손님은 대기실에 환자가 더 있지는 않았기에 많이 기다리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남편의 사마귀 레이저 시술 시간이 길어졌다. 5~10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점점 지나 거의 20분이 다 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 두 명이 김 여사에게 다가왔다.



“아까 10분 정도면 된다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원장님께서 시술 중이신데 좀 길어지시는 모양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 여사의 사과를 들은 둘은 불만을 토로하더니 또 다시 자리에 가 앉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김 여사는 점점 험상궂어지는 여자 2명의 표정을 보며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제 30분 정도 흘러 있었다. 결국, 여자 둘은 소파에서 일어나 가방을 홱 들더니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다음에 오겠다며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다음에….안 올 것 같은데….‘



김 여사가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발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은 할아버지가 절뚝거리며 나왔다. 할아버지는 긴 치료에도 싱글벙글하며 김 여사에게 기분 좋게 수납했다.



“고맙습니다. 원장님이 진짜 꼼꼼하시네요. 제가 제 주변 할아범들한테도 소개 좀 해야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치료 2만원 입니다.“


“네, 여기요. 아주 고맙습니다.“



기분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김 여사는 생각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치료했는데 2만원…그것도 초진비에 토요일 진료비까지 해서…아까 그 여자 둘 보톡스랑 LDM했으면 이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벌었을 텐데…‘



순간, 이렇게 생각한 자신이 너무나도 속물스러워 김 여사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할아버지를 끝으로 토요일 남편의 진료는 끝이 났다. 집에 가는 길, 조슈아와 점심으로 먹을 맥도날드를 드라이브 스루로 사가며 김 여사가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오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응? 뭐가?“


“할아버지 사마귀 치료 있잖아. 그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아, 이게 재발한 거라 아주 뿌리까지 뽑아야 됐거든. 내가 또 한 야무짐 하잖아. 내가 요고요고 요 손맛이 아주 일품이거든. 뿌리까지 싹싹 뽑느라 좀 늦었지.“


“아까 그래서 마지막에 여자 두 분 그냥 가신 거 알아?“


“그랬어?“


“응. 보톡스랑 LDM 하신다 했는데…그 할아버지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돈도 더 많이 벌었을 텐데…그런데 아까 그런 생각 잠깐 했다가 할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시면서 나가시는 거 보고 맘이 바뀌었어. 오빠 말대로 틈새 시장 맞더라 오빠 병원.“


“ㅋㅋ그렇지?“


“응. 돈 안 되는 진료 틈새시장 병원!!ㅋㅋㅋㅋ“


“그래도 와주시는 게 어디야!!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맥도날드도 맛있게 사먹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오빠 오늘 좀 멋있더라? 좀 참의사 같고 좀 그랬어?“


“ㅋㅋㅋ나한테 또 반했어? 오늘 그럼 어째 둘째 생기는 거야?“


“어우!!!!뭐래!!!!!!“



김 여사는 남편과 즐겁게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참의사 울 남편 멋지네!! 그런데 우리 평생 이래 가지고 포르쉐는 못 끌겠네!!ㅋㅋㅋ이번 생에는 글렀네, 글렀어!! ‘



※ 이 시리즈는 병원 운영, 초등학생 육아, 국제학교 생 활,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라이프스타일까지-

다양한 삶의 단면을 담은 하이퍼 리얼리즘 픽션입니다.


남의 집 얘기 같지만,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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