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뉴스. "서울시와 버스노조의 임금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노조는 '준법투쟁'을 결의했습니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봄이라는데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 코끝을 스쳤다. 출근길, 분주히 걸음을 재촉하던 내 발걸음이 문득 멈춰 섰다.
준법투쟁.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다. 법을 지키겠다는 말이 왜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그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법을 지키겠다. 그게 왜 투쟁인가?
근로자들이 정해진 모든 규정을 철저히 따르겠다는 건데. 정차 시간 다 채우고, 쉬는 시간 빠짐없이 갖고, 속도 제한 꼼꼼히 지키겠다는 건데. 그게 왜 사회를 멈추게 할까.
버스는 늦어지고. 배차는 엉망이 되고.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시청은 비상 근무에 들어간다.
법을 지키는 게 왜 문제가 될까?
묵직한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우리는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은 채로 굴러가는 세상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편의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눈감아온 현실, 그 위에 우리의 일상이 세워져 있었던 건 아닐까?
보건소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보건법 시행규칙」은 광역시 보건소에 최소한 의사 3명, 치과의사 1명, 한의사 1명, 약사 2명, 간호사 14명, 정신건강전문요원 1명을 배치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1995년부터 그랬다.
3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부산시 16개 보건소 중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매일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빠진 자리를 메울 사람이 없어 허둥지둥했다. 내실 있는 보건의료 사업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렇게 시민의 건강권은 하나둘 뒤로 밀려났다.
건설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올 2월, 부산의 한 신축공사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6명이 목숨을 잃고 27명이 다쳤다. 조사해보니 안전관리 규정이 곳곳에서 무시됐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았고, 그 대가는 소중한 생명들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은.
나의 공직 생활을 돌아본다. 현실과 타협했던 순간들. 편의를 위해 기준을 낮췄던 때. 지침이 그저 종이 위의 글자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때.
법을 지키겠다고 하면 융통성 없다 했고, 기준을 고수하면 경직됐다 했으니까. 그래서 다들, 적당히 눈 감고 살았다.
그 결과?
법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투쟁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규정대로 하겠다는 선언이 온 사회를 비상 상태로 몰아넣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우리는 지금... 무엇 위에 삶을 쌓고 있는 걸까?
법은 선택이 아니다. 모든 걸 지탱하는 기반이다. 기준은 현실에 타협해 낮춰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실을 끌어올려야 할 목표여야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섰다. 누군가는 법이 정한 노약자석에 앉고, 다른 이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각자의 아침을 시작했다. 이 평범한 일상도 모두가 암묵적으로 지키기로 한 규칙들 위에서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는 이제, 법을 지키겠다는 다짐이 더 이상 투쟁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지키는 일.
그 소박하고도 묵직한 가치를 삶의 중심에 놓는 것.
그것이 오늘 아침, 준법투쟁이라는 단어가 내게 남긴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