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우리는 너를 거부한다
나는 샤머니즘을 꽤 좋아한다.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
천주교라며? 근데 샤머니즘을 좋아해도 돼?라고 하시는 분들을 위한 소개를 하자면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건 괜찮지 않나 라는 게 나의 소신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거랑 몰입해서 모든 것을 믿는 건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누가 사주를 보러 간다더라 누가 점을 보고 왔다더라 하면 "진짜? 무슨 말 들었는데?" 라며 나의 단순 재미를 위해 여기저기서 정보를 줍고 다녔더랬다. 샤머니즘은 나에게 딱 그 정도의 즐거움이었다. 그랬던 나를 전적으로 뒤흔들었던 내용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저승사자에 관한 이야기었다.
지금부터는 샤머니즘, 또는 우리가 흔히 미신이라 치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므로 이와 같은 주제가 불편하신 분들께는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거듭 말하자면 나의 종교는 천주교지만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고 샤머니즘도 그중 하나로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천주교 이외의 종교를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은 없다.
아빠와의 이별을 조금씩 준비할 무렵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가족이 죽었을 때", " 아빠가 없으면" 등등의 검색어를 인터넷에 치며 다양한 글들을 접했다. 그중 가족의 임종에 관한 내용을 자주 보았는데 하루는 '저승사자라는 게 진짜 있을 수 있다.'라고 쓰인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방대한 양의 글들을 보던 때라 각색이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길 바란다.)
저승사자가 1명이면 아픈 사람들이 있는 거고 2명이면 위중하고 3명이 있으면 임종을 위해 데리러 온 거라는 문장으로 글이 시작했었다. 글쓴이의 가족도 병환으로 다인실에 입원했는데 하루는 같은 병실에 어떤 할머님이 자꾸 저승사자가 들락날락한다며 무섭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별스럽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날 같은 병실에 환자 3명이 몇 분 간격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너무 멀쩡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가시니 의사도 같은 병실 사람들도 너무 황망해했었다고, 글쓴이는 나중에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나중에 돌아가신 환자분들이 임종 직전에 허공에 대고 가자는 말을 했었다 했는데 그게 저승사자였던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만약 나중에라도 저승사자를 만났을 때 저승사자가 가자는 말을 하면 절대 알겠다는 말은 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었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뭐 이래 깔깔하며 들어갔다가 다 읽을 때쯤에는 귀신 이야기를 들은 초등학생마냥 엄마에게 쪼르르르 가 방금 본 글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엄마는 딸내미의 오두방정을 가만히 듣다가 "고운이 너 친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셨어." 했다.
처음 듣는 소리에 소파에 누워있던 몸을 발딱 일으켜 입을 하마처럼 벌리며 뭐? 하고 소리쳤더랬다.
나의 행동과는 반대되는 차분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엄마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안 좋으셨을 때 병원에 입원하셨었잖아. 그때 삼촌이랑 아빠가 번갈아가면서 간병을 했었어. 언제부턴가 할아버지가 자꾸 문 앞에 누가 있다고 그러셨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그러셔서 섬망 증상이 나타났나 보다 했었지. 하루는 할아버지가 허공을 보시면서 "그래요 이제 갑시다." 하셨다는 거야. 그래서 아빠가 "가긴 뭘 가요. 얼른 주무세요" 했는데 그날 쇼크가 와서 돌아가셨어."
엄마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나의 동공은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수십 년의 소신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우리 집에도 많이 위중한 사람이 있는데... 아빠가 헛것을 보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앞섰다. 사람이 힘들고 지치면 별별 말을 다 믿게 된다던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니 있는지도 모르겠는 저승사자라는 인물은 그날 나에게 불안이란 감정을 한 보따리 더 안겨주었다.
주치의 선생님과 엄마와의 언쟁이 있던 다음날 토요일은 엄마와 동생이 면회를 가는 날이었다. 일을 하러 가야 해 함께 하지 못하는 나는 엄마를 동생 편에 보내며 다른 건 몰라도 아무것도 모르시는 간호사님께 화난 건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 만큼은 엄마가 잘못한 게 맞았다.
엄마가 잘 말했을까
또 가서 쓴소리를 듣고 오진 않았을까
지운이가 옆에서 잘 다독여줬겠지...?
아니 근데 걔는 맨날 가서 병풍처럼 서있다가만 오고 장승이야 뭐야 진짜
불안과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생의 행실에 대한 비판과 짜증으로 막을 내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어 나는 재빠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말씀 드렸어?"
"응 말씀드렸어, 간호사님이 괜찮다고 하시면서 주치의 선생님 진짜 책임감 강하신 분이시라 전원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실 거라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
그러더니 엄마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빠가 엄청 조용하게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하는 거야. 그래서 뭐냐고 그랬더니 주치의 선생님께 병원 옮긴가 아빠 잘못되는 거 아니냐 그런 말 하지 말아 줄래? 그러더라고 우리 보고 가만히 있으래 "
주치의 선생님이 아빠에게 가서 말을 하셨었나 보다. 사실 잘한 건 없지만 억울한 것도 없진 않았기에 변명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해서 뭐 하냐는 생각에 말을 말았다.
"주치의 선생님이 매일매일 설명도 자세하게 해 주시고 간호사님들도 친절해서 자기는 절대 전원 안 갈 거니까 그런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래"
가재는 게 편이라던가. 나름의 노력이었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쓴소리만 잔뜩 듣고 온 엄마가 퍽 안쓰러웠다.
그래서 엄마 혼났어?
응 엄청 혼났어
그래 잘했네. 이따 집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 고생했어 엄마.
집에 돌아가니 엄마와 동생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전화로 미처 듣지 못했던 내용을 간단하게 들으며 늦은 저녁을 먹는데 할 말이 잔뜩 있다는 표정으로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일하고 있어서 신경 쓸까 봐 말 안 했는데 새벽에 아빠가 엄청 위험했대."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대략 아래와 같은 상황이었다 한다.
면회시간에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어제 아빠가 아주 위험했었다는 말을 하셨다고 했다.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호흡을 못하며 쇼크 직전까지 왔다고 했다. 기존에 투여하던 항생제가 잘 듣지 않아서 급하게 다른 항생제를 새로 투여했는데 그 항생제가 잘 맞아서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는 약물 부작용이 심하다는 병에 걸렸지만 반대로 약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간수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했다. 보호자들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고
처음 전화로 들었을 때는 속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죽했으면 그러셨을까 싶다.
그곳에서 위험하고 힘든 환자 중 한 명인 아빠를 살리고자 극악의 조건에서도 노력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 보호자들이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현실에 눈이 멀어 주치의 선생님만이 아빠를 받아주었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었다. 만약 그때 전원을 오지 못했다면 아빠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기에 이제는 아빠와 주치의 선생님을 믿고 조금 더 의연하게 판단하고 받아들이자 마음을 먹었다.
늦은 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지난 날 보았던 글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사실 쇼크가 오기 전에 침대 옆에 까만 사람 둘이 서 있더래.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처음에는 간호사인가 보다 했는데 다른 간호사분들이 들락날락하는데도 거기 가만히 서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누구시냐고 그랬는데 말이 없더래. 막 꺼지라고 소리를 쳤는데도 안 가고 서있었대. 한참을 꺼지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꺼져주세요 했더니 사라졌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아빠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보니까 그게 잠을 잔 게 아니라 쇼크가 왔었던 거라고 하더라. 저승사자를 봤었나 봐."
맞다 저승사자다. 섬망 증세였다고 하신다면 그것도 맞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다만 당시 관련된 글을 섭렵하고 있던 나에게 아빠의 이야기는 그건 분명 저승사자다!!!!!!! 철석같이 믿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저승사자를 보았다는 것에 불안해해야 하는 건지 저승사자를 보고서도 살아났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아빠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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