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간다. 외래!

26 ) 갔습니다. 이비인후과 안과 그리고 MRI

by 김 고운


쇼크가 와 생명이 위험했던 그날을 기점으로 아빠의 열이 조금씩 내려갔다. 뭐 내려갔다고 해봤자 38.5를 웃돌았지만 40도가 아닌 게 어딘가 싶었다. 그 사이 아빠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붕대도 착실히 풀러 져 나갔다. 처음에는 머리, 그다음은 손, 발, 다리, 팔... 아빠는 우리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그 이후로는 면회를 가면 아빠의 손을 잡으므로써 우리가 왔다는 걸 알리기도 했다.


염증수치도 내려가고 있고, 소변색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아빠가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급성으로 안 좋아지고 있는 간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검사라는 검사는 다 해봤지만 간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원인을 도통 찾지 못했다. 검사 결과를 물어보면 스티븐존슨으로 인한 원인미상의 이유로 나빠진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우리가 그 난리를 친 게 무색하게 정밀검사결과에서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아 전원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자 한참을 고민하시던 주치의 선생님은 MRI를 한번 도전해 보자고 하셨다. MRI를 찍을 때 어떠한 장비도 없이 맨 몸으로 들어가 숨을 참는 걸 반복해야 하는데 아빠는 산소호흡기가 있어야만 호흡이 가능했기에 MRI는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이제는 염증 반응이 점차 내려가고 있고 피부 감염 위험도 많이 사라져 MRI를 도전해 보자 하셨다.


"이참에 안과와 이비인후과도 함께 다녀오시죠!"

뜻밖의 외래소식에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쁘지도 했지만 역시 가장 앞선 감정은 걱정이었다. 붕대도 푸르고 염증수치도 내려갔다고는 하나 아직도 중환자인 것은 변함없으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이번 외출은 작은 도박과도 마찬가지였다. 카지노에 가서 노름판을 벌일 정도는 아니지만 명절에 가족들과 소소하게 화투를 치며 내기판을 벌이는 그 정도의 도박이랄까

주치의 선생님은 외래당일 전에 컨디션이 다시 나빠진다면 외래는 없던 일이 된다는 말씀을 남긴 채 다른 환자들을 보러 떠나셨다. 며칠 뒤 이동침대에 누운 아빠와 함께 중환자실을 나왔다. 입성 3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글을 어떻게 전달을 해드려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날 세 군데의 과를 돌아다니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서야 외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첫 외래는 간병일기에도 꽤 많은 페이지수를 차지하고 있는 에피소드다. 드리고자 하는 정보도 많았기에 그냥 지금처럼 일기 형식으로 쓰는 게 나을까, 아니면 발표형식으로 쓰는 게 나을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일기 형식으로 쓰자니 얼마나 길어질지 예상이 가지 않고 ( 여기서도 많은 일이 있었기에...) 나의 글솜씨로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래서 괜히 욕심내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 바에는 이 글을 쓰게 된 원래 목적처럼 정보를 전달해 드리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써보려 한다.






이비인후과 검진 결과


- 귀에 물이 찼다.

- 물이 차는 증상은 몸 상태가 급성으로 안 좋아지시는 환자분이나 항암을 하시는 분들에게 자주 보인다.

- 증상이 호전되면 귀에 물도 점점 빠지는데 사람마다 빠지는 속도가 다르다.

- 평균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 절대 귀에 자극이 갈만한 행동을 하지 말고 3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셔라.


- 목 안쪽 점막이 다 녹고 헐었다.

- 지금 목에서 나오는 것은 가래가 아니라 점막이 녹아서 나오는 진물이다.

- 원인미상 케이스의 스티븐존슨 증후군이라 약 처방이 불가능하다.

- 무조건 미지근한 물로 가글 많이 해라. (가글액 안되고 무조건 물로만)

- 물을 입 안에 머물고 있다가 뱉어내는 행동을 아주 수시로 하고 밥도 미지근하게 식힌 것으로 먹어라.

- 뜨겁고 찬 거 절대 금지 자극될만한 행동을 아예 하면 안 된다.

- 상태가 많이 좋지 않기에 일주일 뒤에 다시 뵙자.






안과 검진 결과


- 점막이 다 녹아서 눈에 들러붙었다.

-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심각한 상태.

- 임시방편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떼어냈지만 많이 붙은 부분은 후에 수술로 눈을 떼야한다.

- 눈은 지금도 증상이 진행 중이다.

- 스티븐존슨이 눈에 오면 후유증이 심하거나 결국 실명에 이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 눈이 심해질 경우 구강점막을 떼어서 수술을 하거나 각막이식등의 방법이 있는데 스티븐존슨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아서 되도록 자신의 각막을 살리는 방향으로 치료를 한다.

- 양막이식도 고려해 봤지만 지금 상태로 수술을 하는 건 무리가 있기에 보존적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드라이양막을 넣고 보호렌즈를 껴드릴 테니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자.






MRI는 못했다.

조영제 처방이 정확하지 않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이때는 좀 화가 났는데 당시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때라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아빠의 경우 피부가 온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서 얇은 겉옷하나만 걸치고 다녀야 했다. 걱정을 달고 살던 우리는 혹여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갈까 집에 있는 담요란 담요는 다 가지고 쫓아다니는 우스운 광경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만큼 우리는 아빠의 염증과 또 다른 질병에 매우 민감했다.


MRI 담당자분들도 난감해하시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일단 MRI를 찍으실 수 있는지 시범을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 아빠가 찍게 될 MRI는 30분 동안 진행되는 것이라서 일반인들도 힘들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빠는 특히나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가능한지 먼저 보고 만약 진행이 어려우면 상태가 호전된 뒤에 다시 진행해 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선생님들은 아픈 아빠를 위해 종이에 그림까지 열심히 그려가며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해 주시곤 함께 MRI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빠가 숨을 열심히 참아보아서 찍는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음날 모두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가 잘 버텨주어 MRI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첫 외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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