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정신을 찾아서

24 ) 보호자가 이성을 놓을 때 생기는 일

by 김 고운


5일 동안 이어졌던 투석이 끝났다.

투석이 끝난 후 결과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테니 정리를 한번 해 보고자 한다.


* 간 수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더 올랐다.)

* 간 수치가 굉장히 높은 것에 비해 복수가 차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하셨다.)

* 간 이식도 물어보았지만 염증 환자는 간이식 대상자에 올라갈 수 없기에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 피부는 아물어가는 단계로 전신의 붕대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다.

* 숨 쉬기는 여전히 힘들어해 산소호흡기를 해야만 산소 포화도가 95 이상이 나왔다.

* 입에서 피와 점액질이 나온다.

* 열은 여전히 40도를 웃돈다.

* 눈은 매우 빨갛고 부어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안약을 넣으며 기본적인 치료는 하고 있지만 일단 다른 것들이 너무 심각했기에 안과 검진을 간 적은 없다. (나갈 만한 몸 상태도 안 됐다.)

*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또한 나갈만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검사를 한 적은 없다.)


좋아진 게 없는데 왜 투석을 했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투석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염증을 걸러 면역력 수치를 높여보자는 것이었는데 투석으로 염증 수치는 조금 낮아졌고 백혈구 수치와 면역력 수치도 조금씩 올라서 면역력 주사를 맞을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투석이 끝났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나 간단하고 소리소문 없이 끝나버렸다. 혹시나 응급한 환자가 있어서 전화를 늦게 주시는 건 아닐까 오늘은 검사 결과가 늦게 나오는 게 아닐까 오전 내내 핸드폰을 붙들고 기다렸지만 끝끝내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면회를 가니 아빠의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초록색의 큰 기계가 보이지 않았다. 끝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상만 했던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기분이었다. 입안이 썼다.


"오늘 투석기를 빼더라고"


아빠의 호흡이 불규칙해진 이후로 아빠의 말에 묻어 나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기란 외국어 듣기 평기만큼이나 어려웠지만 그날만큼은 그 사이에서도 실망이라는 단어가 확연히 묻어 나왔다.


"열심히 했는데."


누구보다 속상할 아빠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괜찮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더 있을 거라고 괜찮다고 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말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간 수치가 다시 올라서 투석을 중단했습니다."

면회가 끝내고 집으로 가려는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예상했던 대답이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들으니 확실한 판결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 어제는 조금 내려가서 하루 더 돌렸는데 다시 오르는 걸 봐서 투석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CT상으로는 간에 이상 소견이 없어요. 저희가 의심하는 병명이 있기는 한데... 확실하지 않아서 정말 검사를 해 보려고 합니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며칠 걸릴 거예요. 만약 저희가 의심하는 증상이 맞다면 저희 병원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기에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합니다."



전원이라니, 또 어디로 가야 할까? 매일매일 쏟아지는 안부전화 속에서 지금 이 시국에 중환자실에 들어간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우리를 받아줄 병원이 있긴 할까? 이제는 전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답답했다.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설명을 전해 들은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투석도 하자고 해서 했고, 차도가 있었다며, 매일 전화 와서 좋아졌다고 돌려보자고 그랬잖아! 그것만 믿고 며칠을 돌렸는데 이제 와서 별 다른 방법이 없대? 근데 왜 검사를 또 해? 다른 병원으로 갈 수는 있대?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가서 들어야겠어. 고운이 너도 준비해."


화라는 감정이 온몸을 지배한 엄마를 진정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엄마도 두려움을 화라는 감정으로 포장한 걸 지도 모른다. 펑펑 울면서 어떡하냐는 말만 되뇌는 딸 앞에서 차마 엄마도 두렵고 무섭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엄마. 근데 지금 상담시간도 아니고 주치의 선생님이 계시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상담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자."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갈 것 같은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집에 가서 병원에 전화를 해 상담이 가능하다고 하면 출발하기로 약속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걱정이 되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긴 연결음 끝에 들리는 맑은 안내음성만이 내 귀를 울렸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연결되지 않는 전화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여나 엄마가 충격으로 쓰러졌나?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라도 나서 전화가 안되는 걸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집으로 뛰어갔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우리는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으므로 여기서 뭔가 하나 더 생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도어록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신발장에 엄마가 아침에 신고 갔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가 아까는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엄마가 지금 상황에 선생님이라 부를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대화는 마무리로 접어들고 있었다. 언뜻 들어봐도 하하 호호 산뜻한 내용이 오갔던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잉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표정으로 전화를 끊으라고 말했다. 혹시나 주치의 선생님이 화가 나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실까 봐 무서웠다.


몇 분 간의 이야기 끝에 전화가 마무리되었다.


"엄마! 그걸 못 참고 전화를 했어!"

"아니 간호사분이 전화를 받으셔서 물어봤더니 상담시간 끝났다고 안된다고 해서 내가 막 화내면서 끊어버렸거든, 그랬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다시 전화해서 화내셔서 같이 뭐라고 했어."


오. 마이. 갓.이다

나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마를 탁 쳤다. 엄마는 이마를 짚고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주치의 선생님과 오갔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에 유명한 대사가 있다."굉장해! 엄청나!"라는 대사인데 꽤 좋아하는 대사라 일상에서도 자주 써먹었다. 이 대사를 이런 상황에 쓸 줄은 몰랐지만 엄마의 설명을 다 듣고 난 감상평으로 저만큼 잘 어울리는 대사는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엄마"

"응"

"내일 가서 사과드리자."

"응"

"내일 토요일이니까 면회 가서 엄마가 오늘 화낸 간호사분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와 알았지?"

"알았어."

"그리고 전원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미리 병원 알아볼까?"



텍스트로 쓰니까 굉장히 의연해 보여서 덧붙이는 말인데 당시 나의 두뇌는 꼬깃꼬깃 구겨져버린 영수증처럼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어서 이성적인 판단이라는 걸 전혀 못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전원 트라우마라도 생겨버린 건지 전원이라는 말만 들었는데도 무서움이 먼 미래를 지금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곧바로 연이 되는 곳에 물어봐주겠다고 한 아빠의 지인분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리며 우리 사정 좀 들어달라 말하고 다녔다.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리면 염치도 없다던데 내 모습이 딱 그랬다.


"무턱대로 전화해서 죄송해요. 근데 제가 지금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없어서 정말 죄송해요..."


전원을 할 병원을 많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좋다는 것이 당시 나의 짧은 전원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최선의 결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최선의 결론이었을지 몰라도 그분들에게는 그냥 예의상 하셨던 말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 말 한마디를 붙잡고 늘어지는 지인의 딸의 행동에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싶다.



"그래요. 내가 물어봐줄게요. 증상이 어떻게 된다고요?"

"알겠다. 고운아 내가 물어봐줄 테니까 울지 말고 진정해라, 응?"

"원래 아픈 건 여기저기 알리는 거랬어요. 그래야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거라 하더라고요. 다시 전화드릴 테니까 전화 꼭 받아요."


인류애? 정?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덜덜 떨며 제대로 된 설명도 못하는 지인의 어린 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다독여줬던 그분들의 마음은 지금도 힘들거나 지칠 때 가끔씩 꺼내보게 되는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린 김자헌 환자의 딸 김고운 양은 중환자실에도 전화를 해 만약 전원이 필요하면 우리는 미리 동의할 테니 필요할 경우에 그냥 바로 전원시켜달라는 말도 했었다. 아마 중환자실에서 여기 보호자 또 그런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써보면서 보니 진상이긴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했을 때 무의식 중에 자기 방어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구지구지 이 내용을 쓰는 이유도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를 좋은 보호자로 포장하고 있진 않았을까 싶어 쓰게 되었다. 적어도 오늘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이성적인 보호자는 아니었다. 장담컨대 아마 이 일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이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흑역사란 흑역사는 잔뜩 만들어놓은 오후가 지나고 달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의 이성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어째서인지 이성적인 사람으로 돌아오자 다른 감정들에게 먹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던 선생님과 엄마의 대화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따님은 매일 와서 울고 가세요. 제가 의사로 일하며 김자헌 환자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버티는 분 못 봤습니다. 반대로 보호자분들처럼 감정적인 보호자도 못 봤어요. 보호자분,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성적인 판단이 전혀 안되고 계세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더 이상 면회를 가서 눈물바람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으니 주치의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 전해졌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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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존슨 증후군과 독성 표피 괴사용해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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