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13
“평소에 얼마나 주무시나요?”
“거의 못 자요. 근데, 그게 목 아픈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환자분의 경우는, 허리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셔야 디스크가 제자리를 찾고,
그러면 지금 다리에 느끼는 불편함도 줄어들게 됩니다.”
“저는 허리는 하나도 안 아픈데요. 왜 자꾸 허리 때문이라고 하시나요?”
진료 중에 흔히 마주하는 장면이다.
표면에 드러난 결과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는,
원인에 대한 고찰이 끼어들 틈이 없다.
손이 저릴 때, 목의 신경 문제를 말하면 낯설어하고,
종아리가 당기는데, 허리 디스크 때문이라 하면 의아해한다.
만성통증의 원인이 사실은 불면, 긴장, 혹은 회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그저 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다.
불편한 곳에 집중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눈앞의 고통이 전부인 듯 살아가고,
그 고통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 믿으며 하루를 지나친다.
그러나 때로는,
원인과 결과가
우리의 생각만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해는 시간이 필요하고,
수용은 용기를 요하며,
바른 길로 향하는 첫걸음은 ‘멈춤’ 일지도 모른다.
삶의 빠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 과정을 자주 놓친다.
너무 바쁘게, 너무 급하게 지나오다 보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뒤에 두고 온 줄도 모른 채
증상이라는 표지판 앞에만 서 있게 된다.
감정은 몸의 모든 감각과 맞닿아 있다.
만성통증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심리적 경직과
끝내 풀어내지 못한 긴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많은 환자들은
“허리만”, “어깨만”, “무릎만” 치료하길 원한다.
문제를 하나의 원인으로 단순화할수록
치료는 쉬워 보이고,
해결도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길은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증상과
끝내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단편적인 증상을 넘어
삶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서 있다.
통증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불편 이면에는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상처,
직면하기엔 마음이 너무 여린 기억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회복은
그 상처를 억지로 덮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다시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충분한 쉼과 마음의 여유,
그리고 다음 단계를 향한 작은 결심이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그 불편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앞에 설 수 있다.
마음의 방이 어지럽다 느껴질 때가 있다.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감정들,
정리되지 않은 채 쌓인 생각들,
잊은 줄 알았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말들.
그 방을 정리해야 할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하나씩 꺼내고, 닦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 되돌려놓다 보면
점점 그 방엔 빛이 스며든다.
처음엔 더디더라도,
조금씩 질서가 돌아오고,
우리 마음은 스스로의 회복을 믿기 시작한다.
이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이 되고,
확신은 삶의 방향에 속도를 붙인다.
우리 뇌는 익숙함을 고집하고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려한다.
그래서 변화보다 정체를,
도전보다 회피를 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익숙한 함정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와야 할 시간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하려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믿음을 품고서.
회복은 늘,
쉬운 길이 아닌, 바른 길 위에 놓여 있다.
그 길은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지만
끝내 우리를 자유와 평안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평안은,
정돈된 마음의 방 안에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그 누군가는
새로운 관계일 수도,
새로운 목표나 오래 품었던 비전일 수도 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 ‘무엇’을 함께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혼자라 생각하지 말라.
당신 곁에는
말없이 걸어주는 이가
언제나 있다.
그리고,
부디 잊지 않기를.
어린 시절 마음 한켠에 남겨진 상처,
친구에게 외면당했던 순간,
가난하거나 서툴다는 이유로 움츠렸던 날들,
무심코 내뱉은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기억,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공허함,
그리고 또—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같이 웃고 울었던 시간들,
기대하며 맞이한 새벽 같은 시작의 설렘까지.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당신을 만든다.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조각들,
잊힌 줄 알았던 순간들,
흩어지고, 감추어지고, 어딘가 버려두었던 나의 모습들까지—
제자리를 잃고 흩어졌던 감정들이
조용히 다시 모이기 시작하면,
말없이 괴롭히던 아픔도
더 이상 머무를 곳을 잃는다.
그렇게 조용히 모아진 마음 위로
빛은 말없이 내려앉고,
그 삶은,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다.
지금 드러난 모습만으로
당신을 정의할 수는 없다.
어떤 별은 더 밝고, 어떤 별은 작지만
모든 별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충분히 찬란하듯,
당신의 삶도,
분명 그러하다.
“Although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it is also full of the overcoming of it.”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낸 이야기로도 가득하다.”
— Helen Keller, 『Optim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