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12
바쁘고 지친 하루의 끝,
수많은 관계 속에
조금씩 나를 잃어갈 때가 있다.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의 누적이 아니라,
마음이 더는 걸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조용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한계에 닿은 마음을
누가 알아차려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알아챌 만큼
나의 무너짐이 겉으로 드러난 순간이라면,
그건 결국,
혼자 괜찮은 척 해온 날들이 너무 많았다는 뜻 아닐까.
티 내지 않고,
조용히 감당해온 마음의 무게가
마침내 흘러넘친 것인지도 모른다.
신체의 통증으로,
정서적 무력감으로,
혹은
이 둘이 엉켜버린 채—
아무 말 없이 드리워진 번아웃의 그림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눈물일 수도,
침묵일 수도,
혹은 이유 없는 짜증과 무기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그 고통을 견디고 있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비교하고 해석하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나를 잃어버리곤 한다.
무의식적으로 시작된 비교와 판단은
결국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들고,
내 감정조차
어느 순간 희미해진다.
그렇게 밀어붙이며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진다.
방해받지 않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의 감정과 몸의 감각을 들여다보는 일—
그 단순하도 본질적인 행위조차
어느새 낯설고 어색해진다.
호흡은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생명의 언어다.
단순한 숨의 흐름 속에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의학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복식호흡은 교감신경의 긴장을 가라앉히고,
두통을 포함한 긴장성 통증을 완화하는 데 실제로 효과가 있다.
이는 여러 연구와 임상적 관찰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며,
통증의학에서도 비약물적 치료 접근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작은 호흡 하나가
신체의 긴장을 풀고
불안의 회로를 잠시 끊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불안은 언제나,
작은 변화 하나를 삶 전체의 위협으로 해석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떠오르기만 해도
우리의 일상은 무너질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변화보다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건
그 변화에 우리가 덧입힌 해석일지도 모른다.
왜 나만 아플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이런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고통의 중심에
나 자신을 가두어두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삶은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은 멈춰야 할 때다.”
쉬어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쉼이
오히려 아픔을 덜어주는
가장 깊은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삶의 어느 순간엔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할 때가 있다.
당신이 조용히 숨을 고르는 그 순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몸과 마음은
그제야 조금씩
다시 걸어갈 힘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니,
오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잠시 자신을 안아주듯
천천히 숨을 고르기를 바란다.
그 숨 사이에,
당신의 회복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더 이상 마음을 휘감지 않고
일상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회복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저 달리라고만 말한다.
잠깐 멈춰 서 있는 사람에게
게으르다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멈춤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지 않을까.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걸어갈 준비를 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어떤 바쁜 시간보다도 깊고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지금,
가장 깊은 회복이 자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Sometime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a whole day is the rest we take between two deep breaths.”
“어떤 날엔, 하루 전체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은 두 번의 깊은 숨 사이에서 쉬는 그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 Etty Hillesum (네덜란드 작가, 홀로코스트 희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