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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과 획 사이, 가장 오래된 안부〉

손길에 새긴 다정한 기억

by 숨결biroso나

말은 사라져도 마음의 숨은 남는다. 한글은 그 숨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언어다.



한글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건 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다. 한글이 위대한 이유는 설계의 정밀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결, 체온이 담긴 말의 리듬,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던 시절의 기억을 가장 오래도록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건 말보다 느린 숨이다. 한글은 그 숨을 가장 섬세하게 기억하는 언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정함은 이름을 불러주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이름은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름 속의 표정과 망설임까지 품은 마음의 형태였다.

화면 속에 뜨는 ‘○○님’, 택배 송장의 ‘받는 사람 ○○’, 모두 정확하지만 낯설다. 그 이름에는 어떤 호흡도 없다. 누군가의 입에서 불리던 그 울림이 사라진 뒤, 이름은 단순한 식별이 되고, 관계는 매뉴얼이 되었다.

어릴 적 도시락 뚜껑 위에 엄마가 꾹꾹 눌러써주던 글씨, 실수로 잉크가 번진 공책의 이름, 지우개 옆면에 삐뚤게 새겨 넣은 낙서 같은 내 이름. 그 글씨에는 한 사람의 하루와 마음의 결이 함께 있었다. 글자는 매번 달랐지만, 마음의 결은 늘 같았다. 세상 모든 부름 중 가장 다정했던 말, 그건 내 이름이었다.

한글은 모양보다 리듬이 아름다운 언어다. 말에도 숨이 있다. 조금 길게 내쉬면 다정해지고, 짧게 끊으면 냉담해진다. ‘ㅇ’으로 시작하는 말이 유독 부드럽게 들리는 건, 그 둥근 틀 안에 머무는 공기의 흐름 때문이다. “엄마”, “오늘”, “안녕.” 이 말들은 모두 입 안에서 둥글게 굴러 나온다. 그 둥근 리듬이 사람의 마음을 감싸듯 닿는다.

언젠가부터 이름 대신 호칭이 세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선배님’, ‘대표님’, ‘작가님.’ 예의는 남았지만 결은 사라졌다. 언어는 점점 매끄러워 졌지만, 그 매끄러움 속에서 감정은 미끄러졌다. 사랑은 관심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한 사람을 세상 안으로 초대하는 가장 단순한 마음의 기술이었다.

손글씨도 그렇게 잊혀져 갔다. 자판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속엔 손끝의 머뭇거림이 없다. 손글씨에는 맥박이 있다. 하루의 결, 감정의 결, 생각의 흐름이 획마다 묻어나며 시간을 만든다.

오래된 수첩을 펼치면, 불완전한 ‘ㄱ’과 ‘ㅏ’ 사이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살아난다. 조금은 덜 닦인 그러나 진심이 서린 그 글씨들. 삐뚤어진 획마다 망설임이 있고, 눌러쓴 자리에 사랑이 남아 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남아 있다.

지금의 글씨는 반듯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깨끗 하다는 건, 흔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면 위의 글자는 빛나지만, 그 빛엔 체온이 없다. 종이 위의 먹물은 스며들며 시간을 품었지만, 디지털의 글씨는 흘러가며 흔적을 지운다.

말도 그렇다. ‘고마워요’ 대신 ‘ㄱㅅ’, ‘괜찮아요’ 대신 ‘ㅇㅋ’. 편리함은 늘 감정을 압축한다. 짧아 질수록 말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얕아진다. 한글의 아름다움은 ‘정확함’이 아니라 ‘여백’에 있다. 획과 획 사이의 틈, 자음과 모음 사이의 숨. 그 여백이 사람의 마음을 머물게 한다.

하지만 지금의 언어에는 그 쉼이 사라지고 있다. 빠른 속도 속에서 마음은 번역되지 못한 채 스쳐 간다. 점점 사라져 가는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고즈넉하다’, ‘그윽하다’, ‘다사로이.’ 등 이러한 단어들은 낡은 사전 속에서도 여전히 빛난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언어는 천천히 잊힌다. ‘그윽하다’를 잃은 세상은 깊이를 잃고, ‘정겹다’를 잃은 대화는 향기를 잃는다. 언어의 소멸은 감정의 소멸이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문자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흐르던 사람의 숨이라는 것을. 세종대왕이 만든 건 단지 글자가 아니라,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길은 소리로 시작해,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정갈한 마음으로 이름을 다시 써본다. 손끝이 조금 떨리고, 종이 위에서 펜촉이 숨을 고른다. 글자를 다 쓰고 나면 마음 한편이 조용히 데워진다. 그건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단어 하나를 더 쓴다. ‘그립다.’ 이 단어는 다른 언어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리움은 한글로 표현될 때 가장 온전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이다. 손글씨는 사라지고, 호칭은 늘었고, 단어는 짧아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글로 마음을 쓴다. 글자는 변해도 마음은 여전히 서로에게 닿고 싶어 한다. 한글의 자취는 결국 사람의 자취다. 이름으로 불리던 날들, 손으로 쓰던 마음, 다정하게 남겨진 단어들. 그 모든 흔적이 이 언어의 품 안에 남아 있다. 한글은, 우리가 길이 남길 마지막 다정한 숨이다.






말은 사라져도 마음의 숨은 남는다. 한글은 그 숨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언어다. 한 획의 떨림, 한 모음의 울림 속에서 사람의 온기보다 깊은 결이 흐른다. 단어마다 마음을 얹으며 다시 말의 리듬을 다시 배워본다.


"언어는 결국, 서로를 부르는 또 다른 손길이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작가 노트>


이 글은 한글이 단순히 과학적인 문자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다정한 숨결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의 속도 속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손길의 따스한 기억과, 이름을 부르던 마음의 결을 글자의 획과 여백 사이에서 되찾고 싶었습니다.

독자님께서도 잠시 멈춰 서서, 화면이 아닌 종이 위에 펜촉이 닿던 그 순간의 떨림을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혹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불리던 당신의 이름의 울림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시면 어떨까요.

그 소중한 손길의 온기와 말의 여백이 지친 일상에 깊은 위로가 되어,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장 오래된 안부’를 스스로에게 건네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한글날 #손글씨 #한글의의미 #이름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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