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마지막에서 피어나는 힘
바람이 식어가는 저녁,
가장 먼저 어두워지는 것은
항상 땅 위의 것들이었다.
부서진 잎들,
젖은 흙에 눌린
구석으로 밀려난 가벼운 생들.
더 이상
어디에도 닿지 못할 것처럼 보였으나
어떤 날엔 갑자기 빛이 났다.
노을이 풀잎 사이를 스치면
마른 잎 하나가
골목의 온도를 바꾸었고,
바람이 한 번 고개를 돌리면
흩어지던 것들이
잠시, 제 이름의 모양을 찾았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남은 힘으로
천천히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느린 기울어짐은
슬픔도 아니고 견딤도 아닌
다만, 누군가의 발밑에서
아주 짧은 멈춤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 바라보았다.
사라지는 것들은
끝이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한 번쯤
다정함을 비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저녁
나도 그 잎들처럼
흐려지는 중심을 안고 서 있었다.
말이 금세 허공으로 흩어지고
손끝의 힘이 빠지던 날들,
세상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 순간들 속에서
희미한 빛 하나가
문득, 마음의 가장 안쪽에서 떨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가
오히려 가장 깊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아주 늦게 알았다.
약함이라 불렀던 것들의 속에는
끝내 버리지 못한 힘이 숨어 있었고
그 힘은 소리 없이
마지막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버려진 듯 누워 있는 것들 앞에
조용히 발을 멈춘다.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 결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느린 기울어짐을
조용히 듣기 위해서.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사라짐은 때때로 가장 깊은 빛을 남긴다.
기울어지는 순간에도 존재는 말을 건넨다.
우리는 그 느린 방향을 언젠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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