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죽음이 남기고 간 것.(下)

by 아니아즈

-28화 비 오는 날, 죽음이 남기고 간 것.(上) 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자리에서 목놓아 울던 형의 어머니도 자리를 비우셨다.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했던 장례식장엔 우리만이 남았다.

나는 고요함이 두려웠다. 누가 나를 계속 쫓아오듯이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모두가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시선을 돌렸다.

나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그 과정에서, 지독한 현실을 계속 마주 봐야만 했다.


"야야. 향에 불 꺼졌다."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형 가는 길 어두우면 안 되지." 형을 잃은 친구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향에 불을 붙이고, 영정 사진 속 형을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던져,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형에게로 옮겼다.

여전히,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풀리지 않는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옥죄었다.

나는 해가 뜰 때까지 장례식의 자리를 지켰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해가 떴다. 내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가 그치는 걸 볼 새도 없이, 쪽잠도 이루지 못한 채,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해야 했다.

버스에 몸을 싣자 아직도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버스가 출렁일 때마다, 과음 탓인지 속이 출렁거렸다.

속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버스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창문에 눌어붙었다. 창문에 들러붙은 빗물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 비는 언제쯤 그칠까. 쓸데없는 사색에 빠졌다.

사색의 정답은,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였다.


학교에 도착했다. 밤새 내 안에 들어찬 것들 탓인지, 나의 발걸음은 비틀거렸다.

그렇지만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는 발표해야 했다.

어지럽게 돌고 있는 내 눈앞의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교실로 들어서자 막 수업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발표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비틀거리며 교단에 섰다. 모두의 앞에 선 순간,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났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심호흡을 하였다. 어지러움이 한층 나아졌다.

나는 고개를 들고 모두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 뒤에 말을 덧불였다.

"제가 좀 아파서요."

그 말과 함께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 주제는 손창섭의 ‘비 오는 날’.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치 오늘 같지 않은가.

내가 정한 발표 제목은 '비가 온다. 그 비는 그치지 않는다.'였다.

그 제목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자조했다.

발표 내내, 내가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얽히고설킨 머리 안의 생각도, 가슴 안의 감정도 무엇 하나 정리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부딪치며 내 안을 어지럽혔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시간은 흐르고 발표도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발표는 끝에 도달했다. 나는 내가 준비한 발표의 마지막 대사를 토해냈다.

부고 연락을 받기 전, 내가 작성하던 그 문장이었다.



"비는 그친다. 그치긴 할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치는 것이 이치기에.

하지만 그치면, 다시 올 것이다. 내리고, 그치고, 내리고 또 내리고. 이를 반복할 것이다.

그렇게 비는 세상에 범람하고, 이는 곧 노아의 방주 없는 대홍수의 재림이다."



지금까지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발표는 끝이 났다.

나는 다시 휘청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자리에 앉자 교수님이 손뼉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잘 봤지? 발표는 이렇게 준비해야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 발표를 참고해서 준비해 오도록."


그것을 듣는 순간,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그렇지만 내 입에서는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 상황 자체가 내게는 웃길 따름이었다.

웃겨서 미칠 지경이었다. 다시 머리가 죄여왔다.

나는 수업 내내 엎드려 있었다. 교수님도 내게 아무런 제재가 없었기에 동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수업이 끝나고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 비가 그쳐 있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며, 세상이 밝아졌다. 정확히는 밤보다는 밝아졌다.

여전히 드넓은 하늘을 가린 먹구름 탓에 세상은 흐릿했다.

밤 사이에 내 안을 가득 채운 것이,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술기운이 세상을 일그러져 보이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세상은 애초에 일그러져 있었고 그 세상을 지금에서야 직시한 게 된 것일까.

어쩌면, 둘 모두일지도 모르겠다.


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기를 잡고 미친 듯이 토했다.

그날 내게 쌓인 모든 것을 게워내려는 듯이.


죽음은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난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이기엔 버겁고 또 버거운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방에서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토한다. 그걸 계속 반복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것이 내 인생의 두 번째 장례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없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 하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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