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남은 것은 남겨진 것들의 몫이다.
남겨진 것을 맞닥뜨린 내가 느낀 건, 오로지 무력함 뿐이었다.
23살의 봄과 여름 사이의 어느 날.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정도로 내리는 비.
너무 평범하기에 기억에서 사라져도,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비.
하지만, 나는 그날의 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부고. 訃告.
그것은 소나기처럼 내게로 왔다.
내일 있을 대학교 발표과제의 마지막 문장을 작성하던 중,
오랜 친구에게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아래와 같이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우두커니 서서 눈을 깜빡였다. 자꾸만 정신이 멍해졌다.
오랜 친구의 형이 죽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머리 안에서 필사적으로 꺼내 보려 하였지만,
길은 좀처럼 말끔하게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의 자판을 만지작거렸지만, 그 행동은 내게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다.
답을 더는 미룰 수 없기에, 나는 형식적인 답변을 보냈다.
"오후에 찾아뵙도록 할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몸을 움직였다. 일단,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입었다.
그것이 내 부족한 머리로나마 지을 수 있었던 결론이었다.
외출을 하는 나의 뒷모습을 향해 어머니께서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신발을 우겨 신던 채로 말했다.
"친구 형 장례식."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잘 다녀와라.라고 말하셨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정도로.
버스를 타고 가며, 나는 과거의 기억을 헤집었다.
그 속에서 오랜 친구의 형에 대한 기억을 찾아냈다.
친구와의 추억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나왔지만, 그의 형과 나눈 추억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형에 대한 정보는, 나보다 2살 많다는 것뿐이었다.
오랜 친구의 형이 죽었다는 소식에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는, 그 탓일지도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친구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성인이 되고 맞이한 첫 장례식이었기에, 나는 미숙했다.
어두운 밤. 비가 오는 하늘.
그 어둠 속에서 장례식장 건물은 혼자만 이질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아이러니함이 담긴 건물의 아가미로 들어갔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몸과 뇌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오는 길에 준비한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머리에서 사라졌다.
티 없이 새하얗고 동그란 두 눈이, 내 탁하고 흐릿한 두 눈을 관통해 왔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게 내게로 파고들어 와 심장을 후벼 팠다.
하얀 옷을 입고 아직 머리카락이 채 다 나지 않은 서로 꼭 닮은 두 명의 아기.
그런 두 명의 아기를 안고 있는 검은 옷의 젊은 여성과 친구의 어머니.
젊은 여성의 팔에 둘려 있는 상주 표식.
차츰 상황의 윤곽이 진해지자, 내가 속으로 뱉은 단어는, ‘씨이발’이라는 외마디 욕뿐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무심한 세상을 향해 뱉을 수 있는, 외마디 단말마였다.
그 단어를 속으로만 연거푸 뱉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발을 쥔 내 손은 파르르 떨렸다.
세상이란 어찌 이리 잔혹하단 말인가.
상주 표식을 단 형의 아내 분이, 내가 누구인지 묻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동생 분의 친구입니다." 나는 낮게 말했다.
형의 아내 분은 아, 하고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오랜 친구가 걸어왔다.
몇 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서로 말투며 행동에서 어색함을 숨길 수 없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 친구가 내게 악수를 건넸다.
나는 친구의 손을 꽉 잡았다. 생각보다 서늘한 그의 손에 흠칫했다.
"당연히 와야지."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냈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찰나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친구가 서둘러 말했다.
"형한테 인사부터 할래?"
"그래."
나는 분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꽃과 그 사이에 놓인 형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그는 웃고 있었다. 내 손에 꼽히는 기억 속의 그도 항상 웃고 있었다.
얕은 지식으로 향에 불을 붙이고, 두 번 절을 하였다.
영정 사진 속 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눈은 메말랐는지, 눈물을 쏟아내지 않았다.
형과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상주인 형의 아내에게 목례했다.
지친 얼굴로 서있는 형의 아내 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틀에 박힌 말이었다.
분향소에서 나오며, 친구의 어머니가 안고 있는 쌍둥이 아기에게로 눈동자를 굴렸다.
아기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심장이 터질 듯이 조여왔다.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은 정신을 붙들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내게 친구가 육개장을 내오며 천천히 먹고 있으라고 말했다.
친구는 사람들을 맞이하러 떠났다.
나는 육개장을 단 한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곡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어머니의 곡소리였다.
그 곡소리를 들으며, 나는 새빨간 육개장의 표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곡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곡소리에 익숙해졌다.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과거 항상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한두 명씩 도착했다. 그들과의 만남도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변한 것은 시간뿐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격변시킨 듯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골이 있었다.
그들은 도착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친구의 형을 위한 눈물을 흘렸다. 나를 제외하고.
그들의 눈물이 내 눈에 비칠 때마다, 내 온몸과 마음이 비틀렸다.
나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오기 전부터 내가 크나큰 실수를 저지름과 함께,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시작과 그 전제의 뿌리부터 엇나가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만들어왔던 세상이 더 커다란 세상을 맞닥뜨린 순간,
내 여리고 작은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며 무너져 내렸다.
내 세상이 무너지자, 끝을 알 수 없는 무력감만이 남았다.
내 어깨를 짓눌러 오는 존재의 무게감을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모두가 눈물 흘리지만, 나는 눈물 흘리지 못하는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그 자리에서 잔을 들어 올리고 내림과 동시에,
소주병도 같이 들어 올리고 내리며, 잔을 채웠다가 비우기를 반복하였다.
빈 잔이란 건, 그 순간만큼은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바와는 반대로만 흘러간다. 취하지 않고자 하면 취하고, 취하고자 하면 취하질 않는다.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처럼,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내 시야 속의 세상이 서서히 일그러지며, 세상의 소리 또한 귀가 먹먹해진 탓에 한층 소리가 작아졌다.
그제야 다른 이들이 보는 세상과 동일한 세상의 실루엣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얼마나 더 소주병을 들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순간, 나는 잔을 들어 내 안에 술이라는 물을 가득 채웠다.
술을 마시는 행위가 옳은 행위였나 묻는다면, 그것은 모른다.
하지만 그 행동이나마 하지 않으면 내가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기에,
무언가를 하는 시늉이라도 하고픈 마음에 그치지 않고 소주병을 가져왔다.
그것은 재앙이었다. 재앙이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 받아들여야만 하는.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불가피한 것이었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나는 광대가 되었다.
실없는 소리를 내뱉고, 나 자신을 희화화했다.
고백했다가 차인 경험. 부끄러운 경험. 그 모든 것을 숨김없이 뱉었다.
그것은 부조리하고 잔혹한 세상에 저항하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