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제 유머를 찾아주세요.

by 아니아즈




*긴급 공지. 제 가출한 유머를 찾아주세요.*



매우 긴박한 상황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왕과 만났을 때 하는 말은?


정답은 바로.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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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 안에 있던 유머가 가출한 모양입니다...


어느 날부턴가 제 유머가 사라졌습니다.

그 사실을 번뜩 깨달은 순간은, 제 글에서 유머가 실종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볼 때면, 글이 너무 답답해 숨이 막혀 켁켁거립니다.

제 가출한 유머는 어디에 있을까요.


애타는 마음으로 아무리 외쳐보아도, 유머는 묵묵부답입니다.

혼자로는 역부족인 것 같아, 아무쪼록 여러분이 제 유머 수색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가칭 '유머 실종 사건'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몽타주부터 그려보도록 하죠.

가출한 유머의 특징에 대해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유머의 특징.


잠시만요. 눈물 좀 닦고요. 정말 유머는 제 마음도 몰라주고 어딜 간 걸까요.

유머와 함께 했던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죠.

유머는 늘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곤 했습니다.

(가끔은 저도 당황했습니다. 특히 면접장에서요.)

유머는 항상 저보다 먼저 말을 꺼내곤 했고,

때로는 제가 원치 않을 때도 튀어나와 민망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머가 밉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웃기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에서 유머는 등장했으니깐요.

둘이 함께 보낸 나날들은 '행복'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지나간 시간이네요.


정확히 언제 유머가 사라졌나고요? 음. 잠시만요. 아, 떠오를 것도 같은데.

시간이 더 주어지면 생각날 것 같은데,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그럴 수가 없네요.

... 네. 죄송하지만, 사건 발생 시각은 기억나지 않네요.




실종 당시 상황.


정확한 실종 시각은 모르겠습니다. 어, 어디 갔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뿅 사라진 후였습니다.

세상일이 바빠진 탓이었을까요. 제가 관심이 없던 탓이었을까요.

휘몰아치는 세상의 맞바람에 정신 못 차리는 사이, 유머는 자연스레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제 잘못 아니냐고요? 판사님, 저도 억울할 따름입니다.

삶이란 게 원체 그렇지 않습니까. 한눈팔 순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세상은 숨 돌릴 틈조차 없고 여유는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 잘못은 없다고, 자신을 변호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유머가 제 안에서 사라졌을 무렵에 친구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제 유머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 목격자의 진술이 떠올랐습니다.




목격자의 진술.



저는 유머를 상실하고 상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깊은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술에 헤롱헤롱한 매일이었죠.

마지막으로 유머를 목격한 친구와 나란히 마시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죠.


"요즘 너 변한 것 같다. 사람이 각박해졌어. 너무 무언가에 쫓기듯이 사는 거 아니야?"


목격자의 그 말은 심란했던 마음에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목격자를 향해, "네가 뭘 알아!!" 요란을 떨며 심통 난 마음을 표출했습니다.


당시의 소란을 다시 돌아보니, 이상함이 샘솟긴 합니다. 마치, 착란에 빠졌던 기분이랄까요.

어지러울 란(亂). 빙글빙글 돌아가는 제 인생은 ‘란’으로 가득 찼습니다.

언제부터 가시를 쫑긋 세우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과 여유 속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던 저는 어느 순간 실종되었을까요.

무엇이 저를 교란시킨 걸까요.




브리핑을 하며 정리하니, 차츰 유머 실종 사건의 윤곽이 갖춰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범인은… 바로 저였습니다.





유머는 본인의 발로 나간 것도,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유라는 집을 허물어버린 탓에, 머물 곳이 없어진 거였죠.

본래, 유머는 본인의 집에서 두 발 뻗고 푹 자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공간에 있는 여유, 그 자리가 유머의 아늑한 집이죠.

누군가가 한걸음 다가올 수 있는 거리.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공간.

그 여유에서 유머는 살아 숨셨습니다.


하지만 삶이 각박해질수록, 빈틈 하나 없는 마음만이 남았죠.

그 좁아진 틈에서 유머는 편히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뿔이 나고, 웃음 대신 가시 돋친 말로 상대를 찌르고.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범죄를 행하던 제 탓에.

사실, 유머보다 먼저 가출한 건 이해와 배려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줄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죠.

여유가 제 마음의 자리에서 사라지자, 그와 함께 유머도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살던 집을 잃은 유머는, 엉엉 눈물 흘리며 떠나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죠.





세상에 여유가 사치라면, 저는 사치 좀 부리며 살아보려 합니다.

유머 없는 삶은 외로우니깐요.




마음에 여유를 만들기 위해 제가 택한 방법은,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며 토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에 쌓여가는 것들을 덜어내는 것. 풍선에 바람을 가득 채우면 펑 터지니 말이죠.

적당한 여유의 공간을 만들어주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가칭 '유머 실종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여유를 되찾아 마음에 공간이 생기자, 유머가 함께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유머가 할 말이 있다고 하네요.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왕과 작별할 때 하는 말은?


정답은 바로.


바이킹.




휴. 다행히도, 제 유머가 제대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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