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문장들

잡다한 문장 모음.

by 아니아즈




글을 쓰다 보면 길을 잃는다.




문장이 길을 잃기도 하고, 작가가 길을 잃기도 한다.

나는 지금, 문장처럼 길을 잃은 작가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글을 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길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미로의 좁은 복도를 돌고 도는 것처럼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돌려 쓰고 있었다.

지금 나는 회전의자 위에서, 내 눈앞의 글처럼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미안한 마음으로 공책의 문장들을 내려다본다.


공책엔 내 부족함 탓에 빛을 보지 못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길을 헤매다 멈춰버린 그 자리에 멈춰서 버린 그런 문장들.

나는 그 문장들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데리고 왔다.

이 아래는 갈무리되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문장들이다.








-사람이라는 시계-



시계는 앞으로 달려만 간다.


뒤로 돌아갈 때는 오직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 때이다.

태엽을 천천히 감으면, 시간이 잠시 돌아간다.

하지만,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계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멈춘 시계는 쉽게 버려진다.


사람도 멈출 때 버려지기 쉽다.

그러나 멈춤에서 제 시간이 시작되기도 한다.





"시계의 멈춤처럼, 내 글도 멈추었다. 그러나 멈춤은 곧 쉼이었다.

멈춤에서 나는 시작을 찾았다."







-짐과 쉼-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꽃은 진다.

아니다.

꽃은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갈 뿐이다.


다시 올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햇살을 맞이할 그날을 설레며.





"차이는 생각에서부터 피어난다.

생각의 차이는 때로 온도의 차이로 번져,

우리는 그 사이에서 머문다."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는,

뜨거움도 차가움도 아니다.

사람들은 둘의 사이를 애매하다고 적는다.


그건 애매함이 아니라 포옹의 온도, 적당함이다.

맞잡아도 덥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 온기.




"우리는 적당한 온도에서 손을 맞잡듯, 서두르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결국 온도를 넘어, 말이 되어야 했다."






-고백-


이곳이 꿈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즐겁다.

꿈이기에 말할 수 있으니까.


“좋아해.”


이 꿈이 내가 원했던 현실인가 보다.




“하지만 그것은, 더는 현실이 아닌 달콤한 꿈이었다.”







-사랑과 어른-


좋은 사랑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좋은 이별은 어른이 완성되는 순간.





"사랑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고,

이별은 다시 길 위에 세웠다."





-무심한 마음-


사람은 떠나가고, 길 잃은 마음만이 자리에 남았다.


아무것도 아닌 척하면, 내 마음도 그렇게 따라와 줄까.

그런 무심하지 못한 마음을, 애써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마음은 끝내 무심해질 줄 모른다.






"가끔은, 두고 가야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시계가 달려가듯, 나도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나아가는 길에는 여전히 무심히 남겨둔 마음도 있다."






-나아감-



우리는 흔히 길의 이름만 보고 목적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천국이라 불리는 길에도 누군가의 악의가 숨어 있고,

지옥이라 불리는 길에도 선의가 깃들 수 있다.


앞에 무엇이 있어도, 그것을 보러 가려 한다.

남겨둘 것이 있다면, 그대로 두고서라도.


앞에 옳은 것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나아갈 것이다.


나아감은 언제나, 무언가를 두고 가는 일이라 했다.

그래도, 나는 나아가려 한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기에, 알고 싶기에.





"나아가기 위해, 나는 이제 받아들이려 한다."








-모든 것의 시작-



시작은, 자기의 미약함을 받아들이는 데서 열린다.

거기서 길이 열린다.








-글-




글은 한 점에서 시작해 선이 되고, 면이 된다.

그리고 결국 숨 쉬는 존재가 된다.







지금까지 길을 잃은 글을 꺼내놓았다.


하나둘 흩어진 문장들이 발자국이 되었고, 그 발자국은 결국 길이 되었다.

길을 잃는 일조차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길을 잃은 문장들이 나를 데리고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 문장들이 나를 이끌고 당신의 길 위에서도 잠시 머물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문장들이 발자국이 되어, 당신과 이어지는 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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