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은,
미래를 그리는 방법을 망각한 후였다.
“너의 꿈이 무엇이니.”
6살의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경찰이라고 했다.
그 꿈은 당시의 내게는 후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 같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다른 꿈을 찾았다.
8살의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그 꿈을 부모님은 수의사라고 이해했다.
부모님은 나를 직접 수의사 지인에게 데리고 가서, 대화를 진행시켜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말했던 동물을 좋아한다는 꿈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이는 사육사를 원했다.
그 꿈은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했고, 동물에 대한 아이의 생각과 함께 변해버렸다.
13살의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도장의 관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꿈은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극복하지 못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놓아주었다.
14살의 내게 물었을 때, 나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꿈은 재능이라는 벽에 막혔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15살의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소설가라고 말했다.
그 꿈은 주변인들의 '소설을 덮고, 현실을 보라'는 말에 뒤덮여 살며시 덮고 말았다.
그 이후론,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진 몰라도 나의 꿈에 대해 답할 순간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꿈을 묻는 순간들과 함께 사라져 갔다.
그 빈자리는 다른 질문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내게 하는 새로운 질문을 토해내고 거부하려 해도,
사람들은 그 질문을 내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무엇을 했니.
그 숨 막히는 말만이 내 세상을 빈틈없이 메꿀 뿐이었다.
"시험은 잘 봤니."
"대학은 잘 갔니."
"취업은 잘했니."
서서히 상승해 오는 수면과도 같은 질문들.
그 질문들은 발끝에서부터 차올라와 나를 집어삼키고 숨구멍을 틀어막았다.
내 입안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질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처절하게 발버둥을 쳤다.
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내가 손에 꽉 쥐고 있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한 줌 숨조차 내쉬기 힘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꿈을 그리고 미래를 그려내는 방법을 망각했다.
그렇게 현실에 충실하니,
꿈과 미래란 존재는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최근에 이게 술인지, 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에 취해 현실 감각이 무뎌졌다. 현실이 일그러지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제정신인지 오락가락하는 그 순간에, 나는 내 지인에게 숨겨왔던 내 꿈을 말할 수 있었다.
이제는 맨 정신으론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의 꿈을.
"나는 그냥 자유롭게 꿈을 꾸고 싶어."
어렸을 때 미래란, 궁금하며 나를 설레게 하는 존재였다.
미지와 탐구의 존재. 나는 항상 꿈을 꾸며 미래를 그렸다.
나는 항상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의 미래란, 불확실하고 나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존재다.
외면과 공포의 존재. 나는 항상 꿈을 망각하며 미래를 지우고 있다.
나는 항상 미래로부터 도망가고 있다.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 무언가는 아이가 기다려 왔을 꿈이자 미래였니,라고 내게 질문하지만,
성장한 아이는 그 질문에 답은 못하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며 침묵을 유지할 뿐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어느새 잊어버릴 그런 꿈일까. 다른 이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꿈일까.
상처를 입고 포기한 꿈일까. 벽에 막혀 애써 괜찮은 척 자신을 위로한 꿈인가.
아니면, 현실에 수긍해서 현실에 걸맞게 만든 꿈일까.
포기해 버린 꿈들의 시체가 내 안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닌다.
차갑게 식어버린 채 개화하지 못하고 축 늘어진 꿈들을 보며 자기 위안을 한다.
모든 건 현실과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 때문이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절절히 느끼는 건 나였다.
결국 그들의 마지막 숨을 끊은 것은 나였으니깐.
그들을 외면하고 나 홀로 살아남은 세상은, 그럴 가치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세상이 아니었다.
꿈과 미래가 없는 세상은, 황폐하고 메말라 풀 한 포기 자라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단절된 세상. 그럼에도 나아가야만 하는 세상.
그것이 꿈과 미래가 말라비틀어져 사라진 세상이었다.
하늘이 재로 뒤덮인 잿빛 하늘의 세상에서,
지금은 기억의 잔재로 남아버린 행복의 순간을 소생시키고자 한 문장을 내 안에 적어본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그 말을 통해 꿈과 미래를 그려내던 그 순간,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리던 그날들은, 사랑스럽고 또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 순간의 나는 행복을 품고 있었다.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지금, 너무 늦었을 진 모르지만 다시 한번 달려가보려 한다.
꿈과 미래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려 한다.
어느샌가 잊어버린 행복을 찾기 위해 나는 내게 묻는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이제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 그 말을, 나는 내게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나는 그냥 자유롭게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물으려고 합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