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삶에 대한 공식. 야구 = 삶.

by 아니아즈

야구는 마치 삶과 같다.

삶은 마치 야구와 같다.


누군가의 야구이자 삶은 죽고 죽이는 전쟁이다.

상대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상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누군가의 야구이자 삶은 '홈'이라는 목표로 나아가는 삶이다.

고난이 앞을 막아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자신의 동료와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간다.


우리는 어떤 야구와 삶 속에서 살아갈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세상일까.

동료와 함께 공생해 가는 세상일까.




나의 야구는,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라는 격분의 문장이 짙게 새겨져 있다.



유년기 시절, 친구들과 공원에서 야구를 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머리 안의 백과사전에서 ‘야구’라는 부분을 찾아 펼쳐보면 작은 점 하나 없이 새하얀 상태였다.

내가 아는 규칙은 단 하나였다. 공을 치고 달린다. 그뿐이었다.

내가 없다면 인원수가 한쪽으로 기울어버려서, 혼자 슬며시 빠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인생 첫 야구를 하게 되었다.


2 아웃 상황에서 나는 투수 앞에 서게 되었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투수의 앞에 섰을 때의 그 긴장감.

내가 아웃당하면 3 아웃으로 공수가 교대된다는 불안감.

투수의 공이 내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감.

여러 감정이 서로 몸을 배배 꼬며 공존했다.

내 안에서 날뛰는 감정을 달래며,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고 방망이를 잡아 들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투수가 공을 던졌고 깜짝 놀라 눈을 꽉 감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초심자의 운이라고 설명해야 하나. 겸손하게 생각해 보면, 운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아 앞이 깜깜한 상태에서 귀로 깡하는 경쾌한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친구의 ‘달려, 달려.’ 하는 소리에 얼떨결에 달렸고, 나는 1루에 안전하게 들어섰다.

1루에 도착한 나는 들떴다.

사실 나는 야구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또 나의 재능을 하나 찾아버렸구나.


이런 나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야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1루수 친구에게 야구의 규칙에 관해 물었다.

그 친구는 내게 '네가 밟고 있는 베이스에서 너무 붙어 있을 필요는 없고 떨어져 있으면 돼',라고 설명했다.

친구의 말에 '고맙다.'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백과사전의 ‘야구’ 부분에 새로운 정보를 기록하며, 베이스에서 거리를 두었다.

내 다음 타자가 투수 앞에 서고,

내게 떠나온 나의 길을 바라보며 채 가시지 않은 인생 첫 안타라는 도취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사이, 1루수와 투수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투수는 타자가 아닌 내 쪽으로 공을 던졌다.

그 상황을 난 눈앞에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투수가 타자가 아닌 내게 공을 던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공이 내 쪽에 도착해 1루수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1루수인 친구는 환호하며, ‘쓰리 아웃 체인지’를 외쳤다.

같은 팀 친구가 내게 아쉬운 말투로, 왜 베이스에 안 붙어 있어서,라고 물었을 때야 난 깨달았다.


아. 속았구나.


그 순간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취감은 분노감으로 바뀌었다.

공수를 바꾸기 위해 가는 1루수를 향해, 주먹을 꽉 쥐고 다가갔다. 1루수 친구의 어깨를 꽉 잡고 말했다.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냐?”


그 모습에 다른 친구들이 몰려와 나를 그 친구와 떼어놓았다.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했지만, 서로 간의 몸의 거리만 멀어졌을 뿐, 내 온 정신은 그 친구에게 가까이 있었다. 아웃이 된 나는 야구를 하는 내내 그 친구를 노려보았다. ‘넌 어떻게든 내가 아웃시키고 만다.‘,

그런 악감정이 내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혔다. 품 안에 꽉 쥔 주먹을 품은 채.


내 야구에 대한 첫 기억은 그것이다. 도취감. 그 이후의 분노감과 복수. 내 품속의 꽉 쥔 두 주먹이었다.

내가 처음 새긴 야구란, 서로를 죽고 죽이는 권모술수가 판치는 전쟁이었다.




우리는 같은 대상을 보고 있지만, 다른 대상을 느낀다.



이 법칙은 야구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같은 야구를 보고 있지만, 다른 야구를 느낀다.


누군가의 야구는,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게임이다.


자신을 지나, 달려가는 상대의 발목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눈을 부라리며 상대의 방심을 노리고, 상대의 길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고,

상대가 달려가는 걸 막기 위해 몸을 부닥치고, 부상도 무릅쓴 채 필사의 항쟁으로 상대의 앞길을 막는다.

그리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 칼의 뾰족한 부분이 가리키는 곳을 찌른다. 상대를 죽인다.

그렇게 죽임 당한 상대에게도 공평하게 차례는 돌아온다.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차례이자, 복수의 차례이다.

발목을 잡혀 나아가지 못한 상대는, 자신의 차례 때 상대의 발목을 필사적으로 부여잡는다.

자신이 당했던 것, 그 이상으로. 돌고 도는, 그런 복수의 게임이다.


누군가의 야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임이다.


누군가는 달리고, 달린다.

간혹 넘어질 때도 있지만, 넘어지는 건 잠시다. 일어나면 그만이다.

때론 길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품속의 나침반을 꺼내 든다.

나침반의 뾰족한 부분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이다.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상대를 부수고, 부러뜨리고, 무너뜨린다고 해서 자신의 목표가 눈앞에 오는 게 아니다. 달려야 한다. 결국, 달려야만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을 막는 사람도, 장애물도, 시련도, 모든 것들을 뒤로 보내주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그런 귀향의 게임이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대상을 보고 있지만, 다른 대상을 느낀다.

이는 야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같은 '삶'이 주어졌지만, 다른 '삶'을 살아간다.

'삶'.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삶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삶으로 바라본다.

누군가는 삶을 함께 돕고 도우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으로 바라본다.


야구와 삶. 우리는 같은 것을 눈에 담지만, 다른 것을 망막에 띄우고 있다.

우리가 같은 대상을 보고 있지만 다른 대상을 느끼는 이유는,
바라보는 대상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 속박된 채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들의 본질을 바라볼 수 없다.

야구의 속에 있는 우리에 얽매여, 야구의 본질을 망각한 것처럼.





야구는 함께 즐기기 위한 스포츠이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다.


야구 경기는 서로를 죽고 죽이기만 해서는 끝나지 않는다.

결국 '홈'에 도달하여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모두와 함께 힘을 이루어 고난과 역경을 지나, 목표에 도달해야 경기가 끝난다.


삶도 야구와 같다.


함께 즐기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서로를 죽고 죽인다면, 그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 하나 남지 않은 빈 페이지가 될 것이다.

모두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지나, 목표에 도달해야 삶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야구이자 삶의 온전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결말에 단순히 도달하였다고 완성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그대로 펼쳐 둔다면, 그것은 소설의 끝이 아니다.

다 읽은 소설책을 덮는 것까지가 소설의 완성이다.

경기가 끝이 났다고 하여, 야구가 완벽하게 끝매듭을 맺은 것은 아니다.

마무리까지 이루어져야 완벽한 결말이 완성된다.


야구라는 경기가 끝나면, 야구장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야구장 안에 묻어 두고 와야 한다.

투수와 타자 서로 간의 신경전. 수비수와 공격수 간의 몸싸움 등.

서로 간에 있었던 갈등은, 야구장 안에서의 일이다.

그 일을 야구장 밖으로 가져오는 순간, 야구는 야구로 머물 수 없게 된다.

야구는 경기로 끝나야 한다. 야구 경기에서 있었던 울분, 분노, 격노, 증오, 심지어는 기쁨도.

모든 것은 야구 경기장 그 안에서 끝나야 한다. 야구 경기장의 모래와 함께, 바람에 날려 보내야 한다.


삶이라는 길을 나아가다 보면 서로 간의 마찰은 필연과도 같다.

마찰이란 불씨는 우리 안에 울분, 분노, 격노, 증오가 불타 오르도록 한다.

한 번 타오른 불꽃을 진압하지 않고 계속 감정이란 장작을 넣어준다면,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순간까지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품기보단 날려 보내야 하는 존재다.


야구장 안에서 일어난 일은, 야구장 안에서 마친다.

그 순간에 일어난 감정들은, 그 순간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것이 야구가 야구로 남을 수 있는,

그것이 삶이 삶으로 남을 수 있는 공식이다.




유년기 시절, 내 첫 야구 경기가 끝났다. 우리 팀의 승리였다.

승리에 기뻐해야 했지만, 격분이 풀리지 않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구시렁거리며, 내 짐들을 챙기러 가는데, 그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친구는 머뭇거리며 자신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난 그 손바닥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친구의 펼쳐진 손바닥 속으로 빠져들었다.

야구 경기 그 한 번이 무엇이었길래 나는 그토록 화냈을까.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날 이유가 없다.

나를 죽인 상대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울 필요가 없다.

야구는 그저, 함께 달리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홈'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된다.


그 생각이 들며 헛웃음의 콧김을 내뱉었다.

나는 야구 경기 내내 꽉 쥔 두 주먹을 풀고, 그 손바닥으로 친구가 내민 손을 받아들였다.

그 손을 받아들인 순간, 나의 야구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맘에 새긴 '야구'의 정의 란에 가득 채웠던 증오를 지웠다.

그 옆에 '야구'의 정의를 한 글 자 한글자 다시 적었다.



야구란, 죽고 죽여야만 하는 그런 선혈이 낭자하는 싸움이 아니다.



야구란.

서로를 추억할 수 있는.
그리고, 함께 즐기는.
삶과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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