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었다.
엄마가 고기를 먹고 있었다. 어색했다. 평생 고기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내 나이 27살, 어느 여름날, 엄마를 다시 만났다. 엄마는 많이 늙어 있었고, 나는 많이 자라 있었다. 긴 헤어짐의 시간이 무색하게 단번에 엄마를 알아볼 수 있었다. 피는 진하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싶었다. 노랗게 염색된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진한 화장을 한 엄마의 모습.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고기 집으로 향했다. 메뉴는 돼지 갈비였다. 엄마가 고기를 먹고 있었다. 예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엄마가 낯설었다. “엄마, 고기 먹어?” “먹어보니까 맛있더라. 고기 냄새가 역해서 잘 못 먹었는데, 달달한 양념 때문에 갈비는 맛있더라.” 고기 먹는 낯선 모습,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첫 기억이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엄마와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 엄마가 같이 살기를 제안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언니는 시집을 가 살고 있었고, 남동생은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는 이혼 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 오래된 동네에 있는 낡은 집이었지만, 엄마는 “내 집”이라고 말하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희망하던 내 집 마련의 꿈을 스스로 이뤄낸 것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와 시작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텔 청소부터 조선소에서 페인트칠하던 일까지,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조선소 일을 하며,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긴팔과 긴바지를 입어야 했던 이야기, 한 달만 일을 하면 살이 쏙 빠졌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했다. “월급이 좋았으니까 계속했지. 웬만한 남자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가는 일이었어.” 월 300만 원. 그 300만 원은 엄마 인생에서 가장 큰 돈이었을 것이다. 그 돈이 엄마의 목숨 값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매일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맥주 한 병을 꼭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마셔야 소화가 잘 돼. 이걸 안 마시면 뭔가 답답해.” 술을 좋아하던 그 시절의 나는 엄마와의 술자리가 좋았다. 한 잔하며 듣는 엄마의 과거가 즐거웠다. 우리가 없던 시절의 엄마를 그렇게나마 느끼고 싶었다.
나와 함께 지낼 때도 엄마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 같았다. 낮에는 공공근로로 돈을 벌고, 집에 오면 옷 수선을 하고, 자정이 되면 목욕탕 청소를 하러 갔다. “엄마, 그렇게 일하면 안 힘들어?” “돈 많이 벌어서 좋아.” 엄마의 해맑은 대답에서, 나는 돈이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든 쓸 일이 있을 거라며 리본 끈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것도 살려면 다 돈이야.”
엄마의 집에는 아직도 내가 그 시절 쓰던 다이어리와 인형들이 그대로 있다. 페트병 하나, 포장 상자 하나도 버리지 못하던 엄마는 그것들을 모두 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 번은 집이 너무 복잡해 쓰지 않고 쌓여만 있던 물건들을 엄마 몰래 갖다 버렸다. 속이 후련했다. 몇 년을 쓰지도 않으면서 왜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는 그것들을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엄마에게는 그 작은 리본 끈 하나도 자식처럼 소중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엔 언젠가 다 쓸 물건들만 있으니, 절대 다시는 버리지 마.” 모든 물건에 투영된 엄마의 삶과 영혼이 느껴졌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낯선 시간을 조금씩 껴안으며 살아갔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엄마의 삶을 다시 만나는 시간은 분명히 있었다. 매일 밤, 술 한 잔에 실려 오던 지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역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조금 늦게, 다시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