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에 차례로 새겨진 과거.
“아빠 머리 위에 처녀 귀신이 붙어 있어. 그래서 계속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거야.” 말 같지 않은 점쟁이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꼭 틀린 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호적에는 여러 명의 새엄마가 차례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18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서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 나,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오신 날, 그의 짐과 함께 바퀴벌레들이 따라 들어왔다. 그날부터 지긋지긋한 바퀴벌레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밤이면 얼굴 위를 기어 다녔고, 천장에서 툭툭 떨어지기도 했다. 입속으로 기어 들어가려던 벌레를 털어내야 했고, 화장실에 가려고 불이라도 켜면 검은 무리들이 냉장고 아래로 순식간에 우르르 숨어 버렸다.
공장일로 바빴던 엄마는 며칠 치 콩나물국을 큰 솥에 끓여 놓곤 했다. 밥을 먹으려고 뚜껑을 열면 새끼 바퀴벌레들이 둥둥 떠 있었다. 한창 먹을 나이였던 우리는 그것들을 건져내고 아무렇지 않게 국을 먹었다. 그마저도 아껴 먹으라며 혼이 났으니, 그 국이 얼마나 맛있었을까.
엄마와 아빠는 매일같이 싸웠다. 키가 크고 체격 좋은 아빠를 말릴 용기는 내게 없었다. 아빠에게 맞는 엄마를 보며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엄마의 울음소리는 어떤 귀마개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 싸움 소리와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기도했다. “제발,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결국, 그 기도는 이혼이라는 이름으로 응답되었다. 엄마는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갔다. 그렇게 엄마와 헤어졌다.
그 후로 새로운 아줌마들이 하나둘 집에 나타났다. 처음 온 아줌마는 키가 아주 작았다. 키가 컸던 엄마와는 정반대였다. 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한 다음 날,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아줌마가 내 뺨을 때렸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는 참지 못했고, 우리 삼남매와 아줌마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아줌마가 동생을 밀쳤고, 동생의 머리가 유리 장에 부딪칠 뻔한 순간, 언니가 맨손으로 막아냈다. 언니의 손에는 깨진 유리가 박혀 피가 흘렀고, 그 길로 언니는 집을 나갔다. 남동생의 머리는 다행히 멀쩡했지만, 언니 손등에는 지금도 그때 생긴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아줌마를 내보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손을 댔다는 것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아빠 식 사랑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두 번째 아줌마는 다방을 운영하던 분이었다. 그녀의 두 딸이 배달 일을 했다. 친딸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다방 커피가 어떤 건지를 정확히 알았다. 넓은 오봉에 커피 잔을 세팅하고 포트 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 커피, 프리마, 설탕까지 챙겨 배달을 나가는 이복형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관계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아줌마들이 엄마의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엄마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의 우리를 위해 ‘새엄마’를 만들어주려 했던 걸까. 어쩌면 그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의 끝없는 싸움을 오래 보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 시절은 상처였지만, 그 상처 속에서도 나는 살아냈다. 바퀴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국을 먹던 기억도, 언니 손에 남은 흉터도, 내 호적에 남은 새엄마들의 이름도 모두 내가 지나온 삶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 되었다. 이제는 그 시절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껴안고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