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친정 엄마 02화

엄마의 자국

가난보다 깊었던 엄마의 마음

by 주현정

엄마는 자국을 남기고 갔다. 자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냄새처럼 배고, 기억처럼 쌓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엄마의 자국’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저 엄마가 내 손을 평소보다 더 꽉 잡고 있었다는 것, 몹시 화가 난 얼굴이었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줌마와 아빠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아빠의 외도 현장을 덮치러 온 것이었고, 나를 그 자리에 데려온 것이라는 걸. 엄마는 왜 나를 데려갔을까? 증인이 필요했을까?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지만, 그날의 장면만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빠에게는 참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180cm의 키, 다부진 체격, 반듯한 외모, 사람 마음을 흔드는 말솜씨까지. 아줌마들이 혹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었다. 어린 나의 기억 속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아줌마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엄마는 항상 예민했고, 늘 지쳐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가 얼마나 버티며 살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삼남매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낸 사람. 그게 우리 엄마였다.

아빠는 늘 말했다. “이번 사업만 잘되면 된다.” 하지만 그 말끝에는 언제나 실패가 따라왔다. 녹즙기 사업을 하겠다고 집에 녹즙기를 수십 대 들여왔던 날. 우리 가족은 매일같이 녹즙을 짜고, 포장을 했다. 아빠는 그것을 팔았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땐, 시골에서 앙고라토끼를 키웠다. 토끼털을 팔기 위해 우리는 풀을 뜯고, 작두로 자르고, 먹였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두 살 어린 남동생은 말 그대로 아기였다. 그런 우리에게도 일이 주어졌다.

어느 날, 동생이 작두에 풀을 넣고 나는 눌러 자르던 중, 갑자기 비명소리가 터졌다. 동생의 손가락까지 잘라버린 것이다. 덜렁거리는 손가락을 움켜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붙일 수는 있었지만, 지금도 동생 손가락은 온전하지 않다. 그 손가락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실제로 가족을 책임진 건 언제나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건 늘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준비물이 필요했지만 돈 없어 죽겠다며 늘 한숨짓는 엄마에게 돈 이야기는 늘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준비물 값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내 준비물 값 몇 천 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엄마는 3만 원을 빌렸다. 아마 그 여윳돈으로 시장을 볼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 3만 원이 엄마에게 얼마나 무거운 돈이었는지 나는 감히 알지 못했다.

우리 집 식탁에서 가장 자주 올라왔던 건 콩나물국과 시래깃국이었다. 1990년대, 500원어치 콩나물로 여섯 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콩나물이 지겨워지면, 엄마는 시장 바닥에 버려진 시래기를 주워왔다. 그걸 정성껏 씻고 끓이고, 간을 맞췄다. 버려진 시래기를 보물처럼 품에 안고 오던 그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던 그때의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을까. 사랑은 결국, 상처가 되어 끝났고. 미움은 죽기 전까지도 그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임종 직전까지 아빠를 원망하던 엄마. 그 마음속엔 사랑만큼 깊었던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 컸던 만큼, 미움도 컸던 거겠지.

keyword
이전 01화딸을 낳고 나서야,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