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겠지.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나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 세월이 흘러 내가 20대 중반이 되던 어느 날, 우리 삼형제는 엄마와 다시 재회했다. 기쁜 마음에 언니는 엄마에게 밍크코트를 선물했다. 가진 폐물을 몽땅 팔아 마련한, 정성이 담긴 선물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것을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색깔이 별로야.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딸의 마음보다 본인의 취향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선물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늘 흡족해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꾸만 비교하게 됐다. 다른 엄마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왜 우리 엄마만…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던 시절, 엄마는 종종 예고 없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도와주러 왔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나는 밥을 차려야 했고, 아기를 달래야 했고, 엄마와 신랑 사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할 일이 더 많아진 나는 엄마가 있는 내내 툴툴거렸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신랑,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엄마, 좁은 집. “미리 말 좀 하고 와줄 수 없어?” 내 부탁에 엄마는 삐치듯 말했다. “다시는 안 와!” 그렇게 엄마는 언제나 본인의 기분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다. 두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말했다. “아이를 낳아 보니 오히려 더 엄마가 이해가 안 가. 나라면 그때 그렇게 안 했을 텐데, 엄마는 왜 그랬을까?” 그녀는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준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그런데 문득문득,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엄마의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서 튀어나온다고 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엄마는, 맛있는 것을 자식 입에 먼저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당신이 먼저였다. TV에서 보던 희생적인 엄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나를 정말 사랑하긴 한 걸까? 늘 그런 의문 속에서 자랐다.
딸들이 자라고, 내가 엄마가 되자 엄마의 과거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엄마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 아이를 낳았고, 바람기 많은 남편과 이혼해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나이가 들면 뭐든 다 저절로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얻은 것은 주름이었지, 어른됨이 아니었다.
엄마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표현하는 법을 몰랐을지도. 그녀의 세상 속에서, 그 방식이 사랑이었고, 희생이었고,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딸이 커갈수록 나는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들 사랑해. 우리 엄마도 사랑해요.” 아이들 덕분에 나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이렇게 예뻤어?” “아니, 넌 못생겼지. 엄마 닮아서. 언니가 예쁘지.” 그러곤 웃던 엄마. 이런 대화조차도 사랑이었단 걸, 이제야 안다.
“우리 정아 보고 싶다. 우리 딸이 최고야.” 엄마는 종종 문자로 사랑을 표현했다. 말로는 들을 수 없었지만, 엄마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사랑의 표현을 몰랐을 뿐, 그녀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했다. 그 방식이 낯설고 서툴러서 나는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투정만 부렸을까. “왜 다른 엄마들처럼 못해 줘!” 그 말이 지금은 부끄럽다.
혹시 나도, 내 작은 세상 속에서 내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내 딸들도 나에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랑 달라?” 내 목숨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들이 그렇게 투정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처럼.
딸을 낳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는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내어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해왔던 것이 아닐까.
불완전했던 엄마도, 그 시절의 나도, 결국은 모두 각자의 사랑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단 걸. 그 사랑을 나는 이제야 알아본다. 너무 늦어버린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몰라 서운해 했던 지난날의 불효를 어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