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에 달이 뜨면

2화

by 서윤

2화


최종선고 하겠습니다.

피의자 이순자를 징역 6월에 처한다.

또한 피의자를 법정구속한다.


밤새도록 판결문을 낭독하던 판사의 모습이 떠오르고 법정구속한다 라는 말이 환청으로 들려오고 낯선 방의 어색함과 낯선 사람들의 숨소리에 거의 뜬 눈으로 지나간 시간들을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하고 낯선 방,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에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

거듭되는 생각을 밀어내는 새벽 여명은 분명 있었을 텐데 감방 안 형광등 불빛은 여명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건을 찢어서 목을 조이면 죽을 수 있을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인간이 꼭 이토록 냉정하고 독할 수 있는가 ?

지금은 내가 피의자가 되어서 갇혀 있는데 과연 고소인의 마음은 지금 편할까 ?

오만가지 생각으로 밤을 보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어제저녁 들려오던 그 노래가 천정에서 다시 흘러나온다 지켜주지 않는 법을 찬양하는 노래가


[ 법은 어렵지 않아요 ~~

법은 불편하지도 않아요 ~~

법은 우리를 지켜주어요 ~~ ]


하나 둘 부스스 일어나서 기계처럼 이불을 개키고 방을 쓸고 누구는 화장실을 가고

누구는 방을 닦는다.


이방인처럼 나는 또 싱크대 앞에서 그녀들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차례가 오고,

머리를 감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나이 많은 여자가 말하기를


" 세수하고 양치만 하세요 여기선 매일 머리를 감을 수 없어요 목욕날만 머리를 감는 거예요 따듯한 물도 얼마 없어서 머리를 감으면 안돼요 "


나는 머리를 매일 감아야 하는데, 머리를 감지 말라는 말에 어리둥절하고, 따듯한 물이 없다는 말에 당황하고, 겨울인데 온수가 안 나온다는 말에 이곳이 감옥임을 다시 되새기고 있었다.


" 목욕은 언제 하는데요 ? "


" 목욕은 월요일날이고 간단한 샤워는 목요일이에요 "


" 그럼 그냥 찬물에 감을게요 "


" 안 돼요 머리 감다가 교도관한테 들키면

혼나요 세수만 하세요 "


어쩔 수 없이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 얼음장처럼 물이 차갑다 보니 비누는 거품도 나지 않았고, 폼클렌징은 이곳의 문화가 아니었고, 씻었는데도 얼굴은 돼지껍질처럼 뻣뻣하기만 했다.

구치소엔 한겨울임에도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 기회 봐서 찬물에라도 머리를 감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씻는 걸로 옥신각신 하다 보니 벽에 걸린 시계는 6시 26분을 지나고 있었다.


[ 배식이요 배식 배식 준비하세요 ]


우렁찬 사소(청소와 배식을 하는 재소자)의 목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복도에선 덜거덕 덜거덕 바뀌 굴러가는 소리와 배식 배식을 외치던 어떤 여자가 철창문 아래쪽 네모난 작은 구멍으로

사각 빈통에 밥 국 반찬을 순서대로 담아서 구멍으로 디밀어주었다.


문을 열어주는 것도 아니고 저 구멍으로 밥을 받는구나 싶어서 순간 또 울컥 설움이 밀려들었다.

저 구멍으로 들어오는 밥을 살겠다고 먹어야 하는 것일까 ?

아무리 죄를 짓고 감옥에 왔다지만, 밥까지 저렇게 구멍에서 받아먹어야 하나 ?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제사 지낼 때나 쓰는 밤색 밥상이 펼쳐지고 의례히 문구멍으로 빈 사각통을 내밀면 밥이 채워져 들어온 음식들은 또 각각의 플라스틱 그릇에 나누어지고 음식을 먹는다. 시간은 아침 7시도 되지 않았는데 감방의 하루는 참 일찍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할 일도 어디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새벽부터 밥을 먹을까라고도 생각했다.


[ 배식이요 ~~ 배식 준비하세요 ]


우리 방에 밥을 주고 떠난 밥차 바퀴소리와 우렁찬 사소의 목소리가 구치소 복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나도 밥상 앞에 앉아서 내 몫의 밥을 받았고, 한 숟가락 뜨려는 찰나 앞에 앉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가 이때다 싶었는지 말을 걸어왔다.


" 몇 살이세요 ?


알아야 반말을 할지 언니라 해야 하는지 알죠 "

" 50살입니다 "


" 아 언니네 그러면 언니가 이 방에서 두 번째로 언니예요 여기 이 언니가 제일 나이 많아요 "


처음부터 내게 말을 걸고 설명하던 나이 많은 여자가 나보다 언니였던 거다.

여기도 언니가 존재하고 동생이 존재하나 보다. 여기도 서열이 있는 걸까 ?

순간 나는 그 언니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 여자도 눈으로 그래 내가 언니다 나는 듯 인사를 한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밥을 먹는데 또 다른 여자가 말을 건다

감옥에 들어올 것 같지 않게 도도하고 도시적 느낌을 가진 여자였다.


" 얼마나 받았어요? "


" 사기 ? " 한다.


" 네 징역 6월에 법정구속 되써요 "


" 금액은요 "


" 5천만 원입니다 "


" 헉 5천만 원인데 6월에 법정구속이라고요 ? "


" 네 왜 그러세요 ? "


" 5천만 원에 초범이면 보통 벌금이나 집행유예인데 법정구속이라니 좀 의외라서요 "


" 저는 거기에 2천만 원 정도를 1년 동안 이자로 줬어요 "


" 어머 어머 판사가 미쳤나 봐 너무 억울하시겠다. 합의는요 합의했어요 ? "


" 아니요 못했어요 고소한 사람이 너무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했고 합의할 것처럼 하다가 안 만나주고 자꾸 다른 소리만 하네요 "


" 와 진짜 너무 이상한 판결이다 그 정도면 법정구속까지는 아닌데 항소하실 거죠 ? "


"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요 "


" 무조건 항소하세요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니까 "



더 이상 말하기 싫어서 밥그릇에 얼굴을 고정시키고 물에 말아 몇 숟갈 먹고 수저를 내려놓으려 하는데

어느새 배식이 끝났는지 또 우렁찬 사소의 목소리가 복도를 걸어온다.


[ 커피무~~ 울 커피 물 물통 꺼내놓으세요 물통 준비하세요 ~~ 커피 무~~~ 울 ]


커피물이 들어오고 게토레이 빈병마다 물을 채워서 쌓아놓은 담요 사이사이 물병을 넣는다. 물이 식을까 봐 그렇게 하는 듯 보였다.

그나마 아침물은 뜨거워서 어제보다는 나은 커피를 마셨다.


설거지도 당번이 있는지 도시느낌이 나는 여자가 설거지를 하고 각자 정해진 자리가 지정되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40대 예쁘장한 여자와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밤색 밥상을 책상처럼 마주 앉아 같이 썼고 나이 어린 여자와 도시느낌의 여자 둘은 무릎에 종이박스를 올려서 책상 삼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몰라서 한쪽벽에 기대앉았는데

도시적인 여자가 책을 가리키면서


" 거기 책 좋아하면 읽어도 돼요 "


한 권을 골라서 페이지를 넘겼지만 그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마음도 없어서 멀끔히 검은 글씨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감옥의 시간도 째깍째깍 흘러가고 시계가 오전 10시를 향해갈 때 교도관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 운동 운동 운동시간입니다.

운동할 사람 나오세요 ]


" 운동시간이다 나가자 나가자 언니 운동시간이니까 같이 나가요 "


도시적인 여자가 운동을 가자고 한다.


" 이 시간에 안 나가면 밖에 공기도 못 마시니까 같이 나가요 "


그 여자가 내 팔을 잡고 일어서는데

철커덕 또 기계음이 들리고 복도로 나갔는데 복도에는 이 방 저 방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줄을 서고 있었다.


다른 방 사람들도 흘깃흘깃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고, 어떻게 알았는지 하룻밤사이에 벌써 무슨 소문이 그렇게 빠른 건지


" 사기래 사기 사기로 들어왔나 봐 "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사람들과 섞여 운동장소로 갔다. 자기들도 죄를 짓고 들어왔으면서 남의 사건을 흥미롭게 떠드는 여자들이 어이없다고 느껴졌다.


운동이래 봐야 좁은 옥상 같은 데서 걷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산도 보이고 저 멀리 나무도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 없는 운동시간.

어찌 보면 운동이 아니라 수다를 떨고, 이방 저 방 소식을 듣기 위한 친목 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그날 오후 언니가 변호사님의 소식을 갖고 접견을 왔다.


" 항소하란다. 무조건 항소하란다.

항소하면 청주로 가는 거라고 그러더라 "


" 변호사도 구속까지는 생각 안 했다고 하대 그리고 합의하면 바로 나올 수 있다니까 힘내라 그 여자 만나서 어떻게든 합의해 볼 거니까 밥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어라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왜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었어 "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언니의 말이 반은 귀에 들어오고 반은 귀 밖으로 새어나갔다.


" 알았어 언니 항소할거니까 당분간 언니가 우리 집에 와 있어 강아지들 잘 돌봐주고 내일 또 보러 와 지낼 만하니까 걱정말구 다른 가족들한테는 말하지 마 자존심 상하니까 "


나는 그 와중에도 내 자존심을 챙기고 있다는것에 웃음이 났다. 자존심 지키다가 구치소까지 왔는데 또 자존심 타령을 또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는 어느새 먹통이 되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돌아서 계단을 올라오는데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기가막힌건 그 계단이 이틀만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몇 번을 합의하려고 해도 끄떡도 안 하던 고소인 얼굴이 떠오르고, 행여 언니가 그 사람한테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 진작에 언니와 의논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혼자 잘 해결할 거라고 자신했던 내 생각을 후회하고 잘난 척하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났구나 하는 마음에 머리가 복잡하고 어질어질했다.


이틀째부터는 그 방이 이상하게 안정을 주었고, 감방 생활도 밖에만 못 나갈 뿐이고 조금 답답한 것 말고는 그냥저냥 적응이 되고 있었다.

휴대폰이 없는 세상은 또 다른 휴식같다는 느낌으로 무언가 해방된 것 같다는 느낌에 묘한 쾌감을 주었다.

지금쯤 밖에선 내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넘칠텐데 휴대폰 없는 세상에 갇혀서 또 다른 상처의 말들을 접하지 않는다는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다들 또 살아가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팔팔 끓는 물로 종이컵에 마시는 믹스커피는 아니어도 커피도 마시고 컵라면도 먹고 과자도 먹고, 밖에 생활과 별반 큰 차이는 없었다.


방 사람들도 크게 모나지 않았고 그럭저럭 구치소에서의 생활은 견딜만했다.

그리고 재소자들의 법 상식은 거의 재판관 수준이라 항소가 무엇이고 상고까지 갈 수 있다는 둥 사기는 합의만 되면 보석청구도 가능하다는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내가 몰랐던 법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1심 재판 내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법에 대해서 무지했고 법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자책에 어쩌면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었구나 싶기도 했다. 모르면 바보가 되는 것이니까 누굴 탓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탓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는 배임 횡령으로 들어왔는데 자신은 희생양이라고 3심 상고중이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그래서인지 그 여자는 왠만한 변호사보다 법 박사 같았고, 나이 많다는 여자는 게임장에서 환전을 해줬다는데 자신은 바지사장이 한 일이라 전혀 몰랐다고 나처럼 항소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나이어린 여자는 사문서위조에 사기죄인데 집행유예 기간중에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이제 겨우 26살인데 간도 크고 겁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고심 하는 여자말고는 다 2심을 해야하니 다시 만나게 될 사람들이었다.


나는 항소를 신청했고, 구치소에서 일주일이 되는 날 나이어린 여자와 같이 닭장처럼 철그물이 쳐진 호송차량을 타고 청주여자교도소로 이감을 했다.




( 3화 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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