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5화
잠을 설쳐서 그런지 감기 때문인지 몸에 기운이 없고, 쓰러질 것 같은데 재소자는 낮에 누울 수 없으니 교도관한테 1시간 눕는 걸 허락받고 누웠는데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눕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울다가 잠이 들었었나 보다.
갑자기 미결사동이 시끄러워지고 770번이 나를 깨운다.
" 언니 언니 일어나 방 검열이야
버릴 거 있어 ? 걸리면 안 되는 거 있어 ? "
" 아니 몰라 그런 건 없는 거 같은데 모르겠어 "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교도관들 하고 다른 옷 ( CRPT 교도소 내 경찰)을 입은 사람들이 군화소리를 내면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미결사동 전체 방 철창문이 열리고 사동 사람들이 복도로 나와서 벽을 보고 일렬로 섰고, 까마귀 ( CRPT를 까마귀라 불렀다) 들이 모든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검열을 하는 거라는데 사실 재판 중인 사람들이라
미결사동은 죄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반은 죄수 반은 일반인이라 교도관들도 거의 존댓말을 하는 편이었다.
다행히 특별한 게 나오지도 않았고 짧은 검열이 끝나고 방에 들어갔는데, 남편을 죽이고 왔다는 여자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 십팔 여기나 저기나 의심 의심이네 홀딱 벗겨놓고 검사했으면 됐지 십팔 뭘 또 검사야 다 죽여버릴까 보다 십팔 악 악 악 "
사물함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싱크대 위에 그릇들도 방바닥에 던지면서 발악을 해댔다.
" 다 나가 죽어 십팔 다 죽여버릴 거야
또 뭘 의심해서 지랄이야
뭘 찾아내려고 뒤지는 거냐고
꺼져 나가 다 꺼져버려~~~ "
거의 미친 여자 수준으로 발악을 하는데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벨 ( 방마다 사무실로 연결되는 인터폰 벨이 있음 ) 도 못 누르고 벌벌 떨고 있어야 했다.
진짜 조금만 더 하면 죽일 것 같다는 공포심이 느껴졌다.
살인을 하고 온 여자 그것도 남편을 죽였다는데 너무 무서워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지나가던 교도관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무전을 했고, 조금 전 그 까마귀들이 그 여자를 질질 강제로 끌고 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여자는 남편의 폭행으로 시달리다가 결국 남편을 죽인 거라고도 했고, 조현병 환자라는 말도 있었다. 경계대상으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독방에 가두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을 죽이고 왔어도 마음이 아팠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죽였겠나 죄는 나빠도 사람은 다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죽은 사람도 죽이고 갇혀있는 사람도 다 안타깝다는 생각이었다.
나아지지 않는 감기 때문에 점심도 저녁도 거의 먹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진료를 보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별 문제없이 교도소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었다.
" 언니 저 내일 최종판결이에요 6개월만이라도 감형되면 상고 안 하고 그냥 살고 나갈 거예요 "
770번의 최종선고일이 다가왔고, 1심에서 3년을 받았다 하니 6개월만 감형돼도 대략 5개월 미결수로 살았으니까 2년 정도 더 수형생활을 하면 되니까 그냥 3심은 포기하겠다는 거다. 재판으로 인한 피로도가 무엇인지 알기에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오전 내내 770번의 재판결과가 궁금해서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감옥에선 다른 사람의 형량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은 2심 판사가 같으니까 그 판사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있고, 770번의 판결 결과에 따라 왠지 나도 희망을 갖게 될 것 같았다.
오후 2시쯤 770번이 진짜 6개월 감형을 받고 웃으면서 방으로 왔다.
미결수가 재판 확정이 되면 당일에 바로 기결사동으로 가야 했다.
기결사동으로 가기 전 짐을 챙기던 770번이
" 언니 언니는 1심에서 나갈 것 같으니까
언니 담요 저랑 바꾸면 안돼요 ? "
" 왜 그것도 두꺼운데 바꾸려고 ? 이거 새로 구입한 건데 "
" 제 것은 너무 무겁기만 하고 따듯하지 않아서요 언니는 2심에서 집행유예로 나갈 것 같으니까 제 담요랑 바꿨으면 좋겠어요 싫으면 할 수 없고요 " 한다.
마음은 사실 바꾸기 싫었는데 거절 못하는 내 성격은 어느새 대답을 하고 있었다.
" 그래 그러면 바꿔줄게 "
감옥에 갇혀서도 사람을 믿고 나는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얼마 전 새로 구입한 담요를 줘 버렸다.
감옥에 의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
770번이 떠나고 며칠 후 미결사동 전체 전방이 실시되었다.
같은 방에 같은 사람들과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나 또한 5호실로 전방을 했고, 그곳에는 마약으로 들어온 27번
사기로 왔다는 778번 그리고 나 세 명이 생활하기 시작했다.
27번은 정말 감옥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착한 외모였고 도무지 마약 하고는 연결이 안 되는 고상한 이미지를 가진 여자였다.
사기로 왔다는 778번 여자도 차분하게 생겼고 법이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이미지였다.
물론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정이 들었던 것은 아닌데 또 낯선 사람들과 같은 방에서 지내는 건 여전히 난감하고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방바닥은 담요를 깔고 앉아도 찬기가 올라왔고, 천정은 너무 높아서 외풍이 코끝을 시리게 했고 수면양말 두 개를 겹쳐 신어도 발이 시린 감옥의 겨울은 영하 50도 같았다. 몸만 그런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얼려버리는 곳이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몸만 시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시리게 하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보는 것인지 볼 줄 모르는 것인지 778번의 민낯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이곳은 감옥이고 나를 포함해 정상적인 사람도 바보가 되어갔고 생각도 행동도 막혀가고 있구나 싶었다.
778번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감옥은 호텔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져 가고 점점 나 역시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시간은 한 겨울 속을 달려가는 중이었다.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