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어느 날 아침 770번이 아침 일찍 접견을 가고 773번 방장하고 둘이 남아있으니 어색하고 불편해서 책을 펼쳤는데,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싶은 그때
옆방에서 우당탕탕 고성이 들려왔다.
복도 창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하는데
" 야 이년아 그래서 너는 그리 깨끗해서 깜빵에 왔냐 ? "
" 그래 씨발년아 나는 깨끗해서 깜빵 왔다
어쩔래 응 어쩔 건데
똥을 쌀 거면 화장실 문을 닫고 눟지 더럽게 문을 열고 싸는 년이 어딨어 ? "
" 문 닫고 싼다고 십팔 냄새가 안나냐 안나 "
" 십팔 지년 똥은 냄새 안 나고 구수한 줄 아나 보네 "
머리채를 잡았는지
" 이거 안 놔 이거 놔라 십팔 년아 이거 놓으라고 "
" 야 년아 네가 놔야 내가 놓지 너부터 놔 년아 "
그때 교도관들이 달려오고 두 사람 다 사무실로 끌려가는 걸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4평도 안 되는 방에 싱크대가 있고 화장실이 있는데 문은 있어도 화장실은 한쪽벽이 휑하니 개방되어 있어서 큰 볼일을 보면 아무리 문을 닫아도 냄새는 난다.
하물며 방귀만 꿔도 같은 방 사람들이 인상을 쓰는 공간이다 보니 트림하기도 눈치가 보이곤 했는데, 큰 볼일을 보다가 냄새 때문에 싸우는 여자들 그곳은 감방이었다.
그날 오후 옆방에서 싸웠던 여자 한 명이 우리 방으로 전방( 방을 옮기다 ) 을 왔다.
치과 간호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나서 수십 년 야매 ( 무허가 시술 ) 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 시술을 해주었고 부작용이 생겨서 10명이 넘게 그 여자를 고소했다고 한다.
더구나 전방 온 여자는 그걸 자기 입으로 무슨 자랑처럼 하루 종일 떠들어댔다.
생긴 것도 딱 사기 치게 생겼고,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770번도 773번도 나도 말 수가 없어서 조용했던 2호실이 하루 종일 722번 (야매 불법시술자) 이 떠들어 대니까 방 분위기가 이상해져 가고 있었다.
722번은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여자였다.
점점 그 여자의 시끄러움이 짜증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나는 심한 감기몸살로 밥도 못 먹고 기침에 재채기에 하루 종일 끙끙 앓고 있었는데
교도소의 진료는 매주 한 번 뿐이라서 진료도 못 보고 겨우 주는 약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 773번은 2심이 확정되고 상고를 포기하고 기결사동으로 옮겨갔다.
770번 722번 나 셋이 2호실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감기로 기침도 심하고 콧물이 계속 흐르니까 코를 풀어야 해서 킁킁 킁킁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화장실에서 코를 풀고 나왔는데, 갑자기 722번( 야매) 이
" 아 진짜 더러워죽겠네 밥 먹는데 코를 풀 거면 나가서 풀던지 "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났고 인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말이다.
" 나가서 풀 거니까 문 열어줘 저 문 열어달라고 ~~ 얼른 문 열어보라고 문도 열지 못하면서 사람이 아픈데 걱정은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더럽다는 말은 아니잖아 "
.........
" 언니는 감기 안 걸릴 것 같아 저 문이 우리 맘대로 열리면 나도 좋겠다
그래 나가서 풀고 올 거니까 빨리 저 문 열어 열어 열어보라고 ~~ 밥 한 끼 굶는다고 죽어 죽느냐고 누군 아파서 힘들어 죽겠는데 더럽다고 난 언니 인간성이 더 더럽다 "
" 아프면 면담신청해서 외부진료를 보던지 왜 방에서 더럽게 맨날 하루 종일 코를 풀고 지랄이야 지랄이 "
" 외부진료는 아무나 해주냐
그렇게 잘 났으면 언니가 신청해 봐 지랄은 혼자 다하네 십팔 가만있으니까 바보로 보여 ? "
나는 그동안 쌓여왔던 분풀이를 하듯 그 여자한테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고, 누군가 인지도 모를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770번은 내 팔을 잡으면서
" 언니 언니가 참아 여기서 싸워봐야 언니만 손해야 언니는 2심에서 나갈 수도 있는데 조용히 있는 게 좋아 "
" 사람이 아픈데 코 푼다고 더럽다잖아 빈말이어도 괜찮냐고는 못해도 어떻게 저래 "
" 야 내가 너 아프라고 고사를 지냈냐 ? 니년 아픈데 내가 왜 걱정해줘야 하는데, 감옥이 네 집인 줄 알아 ? 갇혀 있으면 니년 몸도 알아서 챙겨야지 하루 종일 코푸는 소리 지겨워서 한마디 한 걸 갖고 발광을 하네 "
" 뭐 발광 발광은 누가 하고 있는데 불편할까 봐 화장실 가서 코 풀었잖아 니 앞에서 푼 것도 아닌데 더럽다느니 나가서 풀고 오라느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린 누가 한 건데 "
곧 쓰러질 것 같이 기운도 없고 감기가 심해서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722번과 실랑이하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결국 그날 아침 722번(야매) 과 나는 사무실로 불려 갔다.
왜 다툼이 있었는지 교도관에게 설명을 했고 나도 722번도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722번은 또 본인이 원해서 전방을 갔다.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쓸데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걸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몸은 아파도 후련하다고 느껴졌다.
갇혀있는 것도 고통인데 맞지 않는 사람과 지내는 건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
2호실엔 이제 나와 770번 둘이 남아 있었는데
다음날 구치소에 있을 때 같은 방에서 일주일을 같이 지냈던 그 언니라는 여자( 772번) 가 우리 방으로 왔다. 구치소에서 그나마 나를 좀 챙겨주고 이것저것 알려주던 여자라서 반가움도 조금은 있었다.
770번은 H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를 했는데 남편 사업자금을 돕는다고 조금씩 횡령을 하다가 나중엔 10억이 넘는 돈을 고객계좌에서 빼돌리는 형식으로 횡령을 하게 되었고, 감사에 걸려서 3년을 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어느 정도 변제를 해서 2심에서는 감형을 바라고 있었다.
그 사건은 뉴스에도 나왔다는데, 나는 밖에 살 때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사건을 알지 못한 상태였고, 770번은 매일 아침 9시면 남편이 접견을 왔다. 770번은 나와 그래도 대화가 되었고 진지한 성격이라 항소이유서를 쓰는데 도움도 주었고 같이 지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2호실 우리 방에 새로 들어온 772번도 무난하고 조용한 편이라 셋이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우리 방에 남편을 죽이고 들어왔다는 여자가 들어왔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 멍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섭고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일어나서 서성거리면 괜히 겁이 나는 여자였다.
살인을 하고 들어 온 여자는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하고 계속 서서 왔다 갔다 하고 혼자 중얼중얼하면서 우리를 흘낏흘낏 보는데 그 눈이 텅 빈 것 같았다.
어쩌다가 남편을 죽였을까 궁금했지만,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나는 몸도 안 좋았고, 괜히 또 싸움이라도 걸어오면 대처할 힘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날 밤 2호실은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남편을 죽이고 왔다는 여자가 너무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그날 밤 잠들기 직전 내다 본
쇠창살로 엮인 작은 창문 밖에 흰 눈이 펑펑 세상을 덮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하얀 눈을 창살 사이로 보는 느낌은 기쁨보다 서러움이었고, 밖에 살 때 눈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었다.
( 5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