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좋은데 외롭기도 한 황혼

by 라온재

나만의 리듬, 나만의 소비


혼자 사는 삶은 가볍다. 가장 먼저 느낀 건, 돈이 잘 안 나간다는 거였다. 누군가를 위해 장을 보지 않아도 되고, 필요 없는 물건을 예의상 사는 일도 없다. 식탁엔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올라오고, 옷장엔 내가 입고 싶은 옷만 남는다. 점점 줄여나가던 물건들이 이제는 꼭 필요한 것만으로 채워져 있다.


마트에 가서 1+1 세일을 지나칠 수 있고,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르는데 오직 나의 취향만 고려하면 된다. 집 안의 모든 물건이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선택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낯선 자유가 아니라, 잘 정돈된 나만의 삶이다.


아침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눈을 뜨고, 밤엔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잔다. 누구도 내게 이제 그만 자라고 하지 않고, 왜 아직도 안 먹냐고 묻지도 않는다. 이런 삶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익숙하다 못해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혼자가 좋은 이유들


이제는 모든 선택을 내가 한다. 여행지를 정할 때도, 가구를 배치할 때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도 내 마음이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게다가 누군가의 식습관이나 생활리듬에 맞추지 않아도 되니 소소한 충돌도 줄어든다. 집이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는 건 전적으로 나의 의지와 습관 덕분이다. 이런 자기 주도적인 삶은 작은 자존감의 축적이 되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완벽한 자유 속에서도 때때로 허전한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그리운 간섭


가끔은 누군가가 나에게 참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먹으면 안 돼, 좀 쉬어, 이불 좀 개라 같은 소리를 듣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말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는 가끔 무서운 존재였다. 뭔가 잘못하면 잔소리에, 빗자루로 종아리, 벌서기 등등. 그때는 그게 얼마나 귀찮고 싫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잔소리 한마디가, 빗자루가, 나를 향한 애정의 표현이었다는 걸 안다.


아무도 내 삶에 간섭하지 않으니, 외려 그 간섭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한 자유보다 ‘적당한 간섭’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균형이라는 이름의 그리움


혼자라는 건 좋은 일이다. 특히 나처럼 스스로를 잘 돌보고,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완전히 혼자 설계되지 않았다. 적당한 애정과 간섭, 가벼운 충고와 농담, 누군가의 눈짓과 말 한마디가 인생의 윤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간혹 누군가와 밥을 먹고, 영화 한 편을 함께 보고, 대화 속에서 적당한 간섭을 주고받는 관계를 꿈꾼다. 계약 동거라는 방식이 그런 균형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혼자가 좋은데, 외롭기도 하다. 그 솔직한 감정이 내가 다시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 사람은, 굳이 함께 살지 않아도 좋지만, 때때로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 있지 마.

그렇게 짜게 먹으면 안 돼.

그리고,

오늘 하루도 잘 견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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