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여전히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두려움, 병원 진료실에서 마주한 낯선 고독,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는 지난날의 무게. 그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
그래서일까, 황혼기에 재혼을 선택한 이들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처음에는 모두 반짝이는 기대를 품는다. 이제는 더 성숙해졌으니, 더 지혜롭게 사랑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끝은 생각보다 자주, 조용히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극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면서도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너무 무겁고,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58세에 재혼했다. 함께 차 마시고 등산을 다니던 사이에서 시작된 인연이었고, 처음엔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3년도 채 되지 않아 관계는 악화되었고,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각방살기에서 별거로 이어졌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도망갈 수 없는 갈등은 끝내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남성 쪽은 본인의 재산을 나눠야 했고, 부양 책임까지 떠안게 됐다. 결국 그는 자신이 쌓아온 노후 자산의 일부를 넘겼고, 가족들과도 등을 졌다. 말 그대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또 다른 여성은 60대 초반에 만난 사람과 동거를 거쳐 재혼했지만, 상대가 건강을 이유로 점점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이 일방적으로 간병을 도맡게 되었다. 자식들은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수년 간 쌓아온 가족 간 신뢰는 무너졌다. 결국 그녀는 배우자 병간호와 가족의 단절 사이에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녀가 말하길, “이건 사랑이 아니라 책임감과 후회가 뒤엉킨 수렁 같았다”고 했다.
재혼은 단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 권리와 의무가 따라오고, 자녀와의 관계, 재산 상속, 건강과 돌봄의 책임까지 포함된 ‘삶 전체의 재편성’이다. 이 나이쯤 되면, 단순한 감정 이상의 고려가 필요하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엮이면, 그것은 사랑보다는 의무로 변질되기 쉽다.
또한 우리는 ‘혼자인 사람들’ 사이에서 친밀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함께 살아야 할 이유’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따뜻한 대화와 유쾌한 동행이 곧 인생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황혼기의 실수는 젊을 때처럼 만회하기 어렵다. 건강은 예전만 못하고, 경제력도 한정되어 있으며, 주변의 관계망도 제한적이다. 감정적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회복 불가능한 ‘삶의 기반’의 붕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 실수의 비용이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기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 신중해야 한다.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외로움에 쫓기듯이 결정하는 재혼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그 대신, 더 유연하고 안전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사랑이 내 삶을 침범하거나 망가뜨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재혼이 아니라 계약 동거를 생각한다.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조정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수 있는 방식.
황혼의 사랑은 ‘결합’이 아니라 ‘동행’이다. 함께 걷되, 서로를 지키는 방식. 결혼이라는 제도보다 더 유연한 틀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