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것은 한때 선택이 아닌 결과였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끝나고, 친구들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삶은 점차 ‘혼자’라는 상태로 기울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하나의 해방처럼 느껴졌다. 늦은 밤에도 불을 켜두고 책을 볼 수 있고, 냉장고 속 재료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아침 일찍 알람 없이 일어나고, 하루의 일정을 아무와도 조율할 필요 없이 내 기분대로 결정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삶은 자유롭다. 불필요한 갈등이 없고, 타인의 리듬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침묵은 불편한 적막이 아니라, 집중의 시간이 되고, 사색의 공간이 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 들을 수 있고, 보고 싶은 영화는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 나만의 리듬, 나만의 언어, 나만의 하루.
이토록 편안한데,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외롭다.
밤이 깊어질수록 자유는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TV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날들이 길어진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거나,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순간에도, 그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병원에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몸이 아파서가 아니다. 그 순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가 그토록 그리울 줄 몰랐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지만, 동시에 더 자주 타인을 필요로 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노년기의 진실이다.
혼자 있는 삶은 선택일 수도,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환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갈 것인가이다. 고독이 자주 찾아온다면,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이웃과 눈인사를 나누고, 온라인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 작은 연결이 모이면 고립은 조금씩 옅어진다.
또한 혼자이되 완전히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삶의 리듬을 공유하고 싶은 누군가와 느슨한 연대, 혹은 조심스러운 동거를 모색할 수도 있다. 반드시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더라도, 일상의 일부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의 온도는 달라진다.
혼자는 때로 외롭지만, 동시에 강하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되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기준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이 고독을 불쌍하게 보지 말자. 오히려 잘 다듬어진 고독은 아름다운 자립이 된다. 그리고 그 자립 위에,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존이 아닌 선택이 된다.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고독을 덜어내는 삶. 나는 지금 그 사이 어디쯤을 걷고 있다. 완벽한 균형은 아닐지라도,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