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by 라온재

합의로 이뤄진 합리적인 동행


사랑은 때로 운명처럼, 때로는 계획처럼 찾아온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대체로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까웠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논리는 뒤따랐다. 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좋다는 그 강렬한 끌림. 하지만 황혼의 사랑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해 왔으며, 무엇보다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 이 나이의 사랑은 따뜻해야 하지만 동시에 냉정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사랑을 계약으로 시작하려 한다.

그것이 정이라면 정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이다. 하지만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말은 이제 무책임하다. 계약 동거는 감정이 아니라 조건에 의한 동의에서 시작된다. 현실적인 이유들 — 말벗이 필요하거나, 경제적 도움이 되거나, 혹은 둘 다 — 그것이 출발점이다.


이것은 거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거래다.

단, 따뜻한 거래다. 돈과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랑의 재정의: 필요에 의한 연대


계약 동거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면,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병원 갈 때 데려다줄 사람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매일 저녁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는 너무 적막한 집에 말벗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각자의 필요가 만나는 접점에서 deal이 성립된다.

반대로, 조건이 맞지 않으면 no deal, 그뿐이다.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이만큼 감싸줘야 해요라기보다, 나는 이 정도의 거리와 도움을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비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감정보다 먼저 기준을 제시하는 건, 더 오래가고 덜 상처받기 위한 지혜다.


세세한 조건, 명확한 합의


이 계약은 대강 이쯤에서가 통하지 않는다. 잠은 각방인가, 식사는 함께 하는가, 지출은 어떤 방식으로 분담할 것인가. 병원에 입원하게 될 경우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질 것인가. 연금은 따로 관리하되 일정 부분을 공동 생활비로 낼 것인가. 자녀와의 관계나 기존 가족 문제는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이런 조항들이 사랑을 망치지 않을까?

오히려 반대다. 이러한 합의들이 있기에 감정은 오히려 더 자유롭다. 불확실성과 기대에서 오는 불안이 없기에, 오히려 편안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요구를 강요하지 않는 관계,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 그것이 황혼의 계약 동거가 지향하는 바다.


사랑이 꼭 뜨거워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안다. 뜨거운 사랑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태워버린다는 걸. 이 시기의 사랑은 미지근하지만 안정적인 온기면 충분하다. 계약은 그 온기를 유지하는 장치다.


그렇다고 정이 없을 리는 없다. 오히려 분명한 합의와 적절한 거리에서 피어나는 정은, 젊은 날의 사랑보다 더 깊고 오래간다. 때론 함께 나누는 차 한 잔이, 말없이 건네는 감기약 하나가, 그 어떤 고백보다 더 큰 감동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랑이 좋다


사랑은 이상이지만, 삶은 현실이다. 황혼의 계약 동거는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계약도 아니고, 계약 없는 감정만의 동거도 아니다. 합의 위에 놓인 감정, 조건을 충족시킨 뒤 피어나는 정.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의 형태 아닐까.


이제 우리는 감정만으로는 살 수 없고, 조건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그 중간 지점에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묻는다.


우리,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함께 지내보지 않겠습니까?


Deal or No deal.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랑, 난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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