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단위로만 생각합시다.
이것이 나의 계약 동거 철칙이다.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과 달리, 황혼의 동거는 기한이 있는 동행이다.
서로에게 과도한 기대를 주지 않고, 상황에 맞게 조율할 수 있는 유연함.
그것이 황혼 동거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건강 문제, 자녀 문제, 감정의 변화까지.
그 모든 변수를 품고 가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
그래서 1년 단위다.
한 해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묻는 것이다.
내년에도 함께 할까요?
좋으면 연장하고, 아니면 깔끔하게 정리하면 된다.
서로를 얽매지도, 상처 주지도 않는 방식이다.
계약 동거라고 해서 매일 붙어 다녀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황혼의 동거는 적당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다.
같은 공간에 살아도,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건 피로한 일이다.
각자의 취미와 일정, 친구들과의 만남을 존중해야 지친 마음도 숨 쉴 틈이 생긴다.
나는 아침 일찍 헬스장에 다녀오고, 파트너는 오후 늦게 친구들과 차를 마신다.
저녁엔 가끔 함께 밥을 먹고, 때로는 각자 먹는다.
주말엔 산책을 함께 할 때도 있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런 느슨한 동거가 오히려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같이 사는 건 물리적 거주지를 나누는 것이지, 하루 일정을 공유하는 게 아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할 때, 동거는 억압이 아닌 선택이 된다.
황혼의 동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생활의 인정’이다.
젊은 시절엔 부부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공유했던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개인적인 통화, 가족 문제, 건강에 대한 민감한 부분 등은 각자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 공간의 출입은 사전 동의를 원칙으로 한다.
사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
개인 취미활동, 모임에 대한 자유를 보장한다.
이런 작은 합의가 서로를 더 편안하게 만든다.
서로를 통제하지 않기에, 오히려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이 있다.
휴가는 각자의 자유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때론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하다.
친구들과의 골프 여행, 혼자 떠나는 휴식 여행, 가족을 만나러 가는 시간.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 성숙한 동거다.
억지로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함께 가면 좋은 곳은 같이 가고, 관심사가 다르면 각자 다녀오면 된다.
여유롭고 성숙한 관계는 같이보다 따로에서 더 빛난다.
돌아왔을 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시간이 더 값지다.
계약이라는 단어는 차갑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계약 동거는 얽매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계약 덕분에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다.
1년 단위의 가벼운 약속, 각자의 사생활을 인정하는 합의, 휴가의 자유.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우리는 더 자연스럽고, 더 건강하게 ‘같이 살되, 각자 사는 법’을 배운다.
계약서 한 장이면 충분하다.
함께 할 이유도, 헤어질 이유도.
그것이 황혼의 계약 동거가 주는 가장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