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재, 그리고 제도적 공백

by 라온재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1인 가구의 폭증, 고령화의 가속, 재혼율 증가, 동거에 대한 인식 변화까지, 우리의 삶의 형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황혼기에 접어든 세대에게 있어 혼인은 더 이상 유일한 관계 형성의 방식이 아니다. 법적 혼인 없이 함께 살아가는 파트너십, 즉 계약 동거는 점차 현실적인 삶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 한국의 현재다. 민법과 가족법은 여전히 혼인과 혈연 중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동거인에 대한 법적 보호나 인정은 사실상 부재하다. 가족이라는 정의가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제도와 행정체계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이것은 단지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동거인의 의료 결정권, 주거 계약, 상속 분쟁, 간병 책임 등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서 제도 공백은 곧 불안정한 삶의 기반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는 이미 수많은 황혼 커플이 비혼 동거를 하고 있다. 자녀와의 갈등을 피하고, 연금 손실을 막기 위해 혼인을 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부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병원에서의 보호자 등록, 사고 시 대리 결정, 임대 계약 등 수많은 실무적 상황에서 법적 권한이 없다는 벽에 부딪힌다.


일례로, 긴급 상황에서 응급 수술 동의를 해야 할 때 동거인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한 평생을 함께 살아왔음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그들을 제3자로 간주한다. 장기요양보험의 가족 간병 인정도 마찬가지다. 혼인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 돌봄 관계가 중요한 시대임에도, 제도는 여전히 호적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공백은 결국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동거를 택한 이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불안정 속에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 불안은 다시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양산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적 상상력이다.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 정의를 확장하고, 다양한 동반자 형태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동성혼이나 비혼 동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황혼의 삶을 재설계하고자 하는 수많은 중장년 세대의 선택을 지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PACS처럼 계약으로 동거 관계를 등록하고 일정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독일·네덜란드처럼 동거계약을 통해 주거권, 의료권, 상속 조율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한국에도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 이미 고령 사회의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고령자 공동거주형 주택 같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삶의 실질을 중심으로 한 법과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결혼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보호는 무엇인가?로. 황혼의 계약 동거는 결코 특수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평범한 일상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일상을 지지할 준비가 사회에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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