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네덜란드의 동반자 제도

by 라온재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 제도를 설계해왔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법적 혼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확산되면서 제도 역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두 나라가 바로 독일과 네덜란드다. 이들은 동성 커플, 고령 동거인, 혼인을 원치 않는 이들을 위한 등록 파트너십 제도를 일찍이 도입하며, 전통적 혼인 제도의 틀을 유연하게 확장시켜왔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법적 안정성과 사회적 수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황혼의 계약 동거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혼인을 통해 얻는 보호를 법률적 계약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구조. 독일과 네덜란드는 바로 그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열어둔 나라다.


독일은 2001년, 생활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sgesetz)을 제정하여 법적 혼인을 원하지 않는 동성 커플들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이후 이 법은 점차 확대되어 사실상 혼인과 거의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게 되었고, 결국 2017년에는 동성혼을 완전히 허용하면서 해당 법은 더 이상 신규 등록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법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동반자 관계를 존중하고, 제도로 보호하는 철학은 독일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고령의 독신자들이 새로운 파트너와 동거를 원할 때, 혼인보다는 공동 생활 계약이나 유언, 후견인 지정 등 다양한 법적 장치를 통해 서로의 권리와 책임을 설계할 수 있다. 특히 독일에서는 공증된 동거 계약(Wohn- oder Lebensgemeinschaftsvertrag)을 통해 재산, 의료, 주거 관련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의 대리 동의권, 연명치료 거부, 간병 서비스 활용 등도 이 계약을 통해 명확히 할 수 있으며, 자녀가 없는 황혼 동거 커플에게는 매우 실질적인 안전망이 된다.


네덜란드는 1998년 등록 파트너십(Geregistreerd partnerschap)을 법제화한 나라다. 이 제도는 혼인과 거의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면서도, 혼인보다 유연하고 간편하게 관계를 맺고 해지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이 제도는 부담 없는 연대로 기능한다.


등록 파트너십은 공증인을 통해 간단한 절차로 체결할 수 있으며, 공동 소득 신고, 의료 동의권, 상속 권리까지 부여된다.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사랑이 아닌 생활 공동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감정의 깊이보다는 생활의 실질, 관계의 명확함이 우선시된다. 특히 자녀가 없는 노년 동거 커플이 이 제도를 활용해, 동반자와의 법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사례가 많다.


더 나아가 네덜란드는 사실혼 동거자에 대해서도 일정 요건 하에 세제 혜택과 사회보장 연계 혜택을 제공한다. 따라서 법적 등록이 없더라도 동거 사실을 증명하고 생활 공동체로 인정받는 경우, 일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유연하고 실용적인 태도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네덜란드의 사회 철학을 잘 보여준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는 황혼의 계약 동거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관계의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그 다양성이 실질적인 삶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혼인의 틀을 벗어나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고, 법과 사회는 그러한 삶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고령자의 동반자 관계가 현실화되는 지금, 독일과 네덜란드의 유연한 제도는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혼인만이 동거의 정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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