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요실금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조용한 불편함 속에서 삶을 지켜내는 용기

by 라온재

아침은 기저귀와 함께 시작된다


아침 7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오늘 누가 집에 오는지, 외출 계획이 있는지, 그리고 기저기 여분은 충분한지—이것이 내가 하루를 시작할 때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다. 내 하루는 뉴스보다, 날씨보다, 소변이 먼저다.

요실금. 말조차 꺼내기 민망한 이 단어는 어느 날 슬그머니 내 삶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처음엔 재채기를 할 때, 계단을 오를 때 갑작스럽게 불편함이 찾아왔다. 그러다 이제는 이유 없이 나를 당황시키곤 한다. 결국 기저귀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고, 외출할 때마다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손님이 오는 날의 긴장감


오늘은 친구가 집에 온다. 반가움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화장실 걱정이다. 손님이 있으면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혹시 쿠션에 냄새라도 밸까봐 방석을 하나 더 깐다. 집 온도를 조금 높이고, 소파 커버를 바꾼다. 이렇게 작은 준비들이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든다.

요실금은 단지 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거리를 결정짓기도 한다. ‘혹시 티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면, 마음이 자연스레 닫힌다. 그저 편안한 대화 한 마디조차, 방광을 의식하며 조심하게 된다.


커피는 향기만, 영화는 중간까지


나는 커피 향을 좋아한다. 마트 원두 코너를 지나칠 때마다 향긋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마시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카페인은 방광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허브차를 마신다. 향은 덜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요실금이 생긴 이후, 나는 즐거움과 불안을 저울질하는 법을 배웠다. 어느 쪽이 나를 더 평온하게 해주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삶이다.

한때 좋아하던 영화관도 이제는 가기 어렵다. 상영 시간 2시간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화장실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좌석을 비우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일이 괜히 미안하고 번거롭다. 결국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쪽으로 바뀌었다. 멈췄다가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 것, 그 단순한 기능이 요즘은 참 고맙게 느껴진다.


대중교통은 멀어진 거리


예전엔 지하철을 자주 탔다. 하지만 요즘은 대중교통을 피한다. 정류장마다 화장실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철에선 화장실과 가까운 문 쪽에 선다. 한 번은 기차에서 요의를 참지 못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이후, 나는 외출이 있는 날이면 물을 덜 마시고, 되도록 자가용이나 우버를 이용한다. 삶이 점점 좁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케겔운동을 한다. 소리 없는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며, 내 몸을 다시 훈련시킨다. 하루 세 번, 몇 분씩. 방광 훈련도 병행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획적으로 배뇨함으로써 자율성을 되찾아간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저항이자 연습이다.

요실금은 내 일상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나는 그 불편함을 이기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기저기는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용기를 도와주는 또 하나의 장비다.


조용한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공감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저귀를 차고 살아간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는 병으로, 누군가는 상처로, 누군가는 나이 듦으로 삶의 일부를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다시 살아간다. 다시 운동하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웃는다.

요실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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