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 카페와 뉴욕 공립 도서관
닷새째에 접어드니 3명의 언니들과 24시간 붙어있는 것도, 바쁘게 뉴욕의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조금은 지치기 시작했어요. 잠깐이나마 '뉴욕'이라는 장소도, 연말이라는 시기도 모두 잊어버린 채 휴식을 취하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처음 이 동네에 발을 들였을 때 눈여겨 보았던 카페로 이른 아침 찾아갔어요.
브루클린 지역 로컬 카페로 늦은 오전 사람들이 서서도 빵과 커피를 먹고 있는 걸 봤거든요.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가 되었어요.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찾아가니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야호!), 사실 빵도 많이 없었어요.
내부는 나무와 금속제가 어우려져 포근하면서도 샤프한 느낌이 나서 즐거웠어요. 주방에서 빵을 굽는 제빵사의 분주한 소리만 어렴풋이 들리고 잔잔했던 카페의 분위기가 얼마나 편안했던지요.
추천을 받은 터매릭롤을 시켜봤어요. 향신료향이 강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바리스타분의 최애 패이스트리이자, 몇 개 나오지 않은 빵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빵이었어서 짧은 고민 끝에 이걸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가끔씩 톡 쏘는 향에 적당히 달콤한 크림, 바삭한 페이스트리에 촉촉한 내부까지, 정말 맛있었어요. 가끔은 바리스타의 추천을 믿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카페에 앉아서 읽기도 쓰고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정리도 하고 있으려니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계획했던 하루를 시작할 시간도 점점 가까워오기 시작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오전 내내 머무르다가 점심 용으로 맛있는 빵도 하나 더 먹고 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을 하루 종일 브루클린에서만 보낼 수가 있나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어요.
지하철에서 내리고 보니 뉴욕은 안개가 가득 낀 아침이었어요. 언제나 머릿속에 그렸던 흐릿하고 칙칙한 대도시의 모습 그대로라서, 오히려 신이 나더라구요?! 마천루 사이를 가득 메운 안개와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가 꽤나 반가웠어요. 역시 동부는 이런 울적하고 침침한 맛이 있는 법이죠!
잠깐 줄을 서서 구매한 바나나 푸딩! 첫 날에 레드벨벳 바나나 푸딩을 먹기는 했지만, 오리지널 매그놀리아 바나나 푸딩을 먹지 않고 뉴욕을 떠난다면 아쉬움이 잔뜩 남을 것 같아서 발길을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맛있고 !뉴욕이다!라는 기분이 드는 디저트였지만 바나나 푸딩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게 덜 달고 맛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어요. 미국답게 정말, 정말 달더라구요. 작은 사이즈인데도 혼자 다 먹기 힘들었어요.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록펠러 타워 트리! 이른 오전에 오니까 오후~밤이면 항상 거리를 메울만큼 가득했던 인파가 없어서 참 좋았어요. 지나가시는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어주셔서 저 혼자만(저녁에 왔을 때는 상상도 못할 호사였어요 ㅎㅎ) 나온 트리 사진을 간직할 수 있었답니다. 뉴욕에서 트리 헌팅을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면, 밤하늘에 총총 맺힌 조명은 아쉬워도 오전이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겠어요.
레고 스토어에 결국 들르기로 했어요. 어린 남동생이랑 2살 차이나는 오빠가 있어서 레고 키링을 사가면 둘다 좋아할 선물일거 같았거든요. 그 예상은 과연 적중해서, 오빠의 가방에는 한동안 자유의 여신상 레고 키링이 달랑였고, 베트남에 다녀온 친구가 달고 다니는 키링이 부러웠던 동생도 기쁘게 키링을 달고 다녀줘서 마음이 참 뿌듯했어요.
건물 한 면을 모두 채운 길고 긴 줄 끝에 서서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레고 스토어 뉴욕점에 입장했어요! 가지각색 레고 제품이 있는 것도 즐거웠지만, 이렇게 레고로 만들어진 랜드마크와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상당했어요. 저는 혼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지만, 친구나 연인, 가족이랑 가면 레고를 사지 않아도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뉴욕의 명물 노란 택시와 어벤저스라니요. 마블에 울고 웃었던 십대를 보낸 저는 여기에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4번가를 지나면서 몇 번이고 보였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잠깐 들렀어요. 크리스마스날 앉았다 일어났던게 아쉬워서 조금 더 머물렀다가 가고 싶었거든요.
잠깐 앉아서 크로키를 하고, 미사를 들었어요. 사실 영어에 많이 익숙해지지는 않았던 때라서 잘 못 알아듣겠고,, 워낙에 성당이 소리가 울리는 구조라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고 영혼이 배불러지는 기분이었어요.
그 다음 행선지는 뉴욕 시립 도서관! 관광객처럼 보이면 안 들여보내준다는 소문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커다란 백팩을 메고 안경을 낀 상태였어서 그런지 별다른 의심의 눈초리도 없이 들여보내줬어요. 여기서 잠시 다리를 쉬면서 과제도 하고 일기도 썼어요.
도서관에는 작지만 알찬 박물관, 휘황찬란한 기념품샵이 딸려 있어서 재밌게 구경하다가 왔어요. 동생을 위한 선프린트 키트랑 엄마를 위한 열쇠모양 키 체인을 샀는데, 저 스티커도 사올껄 싶네요. 엄마는 아직도 뉴욕 시립 도서관 사자가 그려진 이 키 체인을 잘 쓰고 계셔서 볼 때마다 마음이 동그래진답니다.
뿌옇고 바쁜 도시를 걸어요
그 유명한 거대 스타벅스 리저브를 지나서
한식을 먹으러 갔어요 ㅎㅎㅎ
저는 사실 북창동 순두부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같이 간 언니들이 하도 뉴욕에서 이걸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따라갔어요.
아마 지금은 가격이 더 올랐겠지만, 이때도 순두부 한 그릇에 너무 비싸다.. 라는 생각으로 주문했던 기억이 나요.
밑반찬이 생각보다 야무지게 잘 나와서 놀랐고, 순두부는 인스턴트의 바로 그 맛이었지만 날이 워낙 춥고 으슬으슬했어서 뜨끈하게 잘 먹고 나왔답니다. 타지에서 먹는 한식은 그 맛보다도 마음을 채워주는 느낌이 참 좋은거 같아요.
버스 터미널로 가기 전 큰 서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어요. 미국은 책도 어찌나 비싸던지요. 그렇지만 요즘은 한국도 웬만한 책이 다 15,000원을 넘고 평균적으로 17,000원 정도는 하는 것 같아서 책을 살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도서관 가까이에 살아야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엘피를 발견했어요.
이 영화 진짜 괜찮은데, 사운드 트랙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액션의 속도감이나 캐릭터의 매력, 스토리 라인, 인물들의 케미나 감동 모든 면에서 빠지지 않는 영화라서 추천드려요.
이렇게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한 명은 스페인으로, 세 명은 워싱턴으로 떠났어요. 가장 알찬 한 학기를 함께 보낸 이와 이별하려니 속상한 마음이 앞섰지만, 워싱턴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가려니 신나는 마음이 금세 올라오더라구요. 연말만큼 마음이 들쑥날쑥하는 때가 있을까요. 그 저점과 고점의 평균은 언제나 +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