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크리스마스 뉴욕에는 베이글과 아이스 스케이트를

뉴욕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날

by 언제나 여름

스 둘째날은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여행지에서 눈뜨는 아침은 안 그래도 두근대는 탓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부터 떠지는게 예사 아닌가.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이라니. 머리맡의 선물을 기대할 나이는 지났지만,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가 선물 같았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기쁜 인사를 나누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으로는 뉴욕 3대 베이글이라는 리버티 베이글에서 아침을 먹고, 스케이트를 타기로 했다. 언제나 꿈에 그려왔던 뉴욕에서의 베이글 한 입이 어찌나 기대되던지, 평소라면 눈을 뜨자마자 먹었어야 할 아침을 1시간 뒤로 미루고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캐롤을 들으며 나갈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서자 너무 예쁘게 장식된 대문이 보인다. 이게 보고 싶어서 태평양을 건너온거야 나는! 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나를 짜릿하게 하고, 호랑가시 나무와 솔방울, 화려한 리스와 초록빛 가지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보통 새해까지 유지하면서 새해 장식이 된다던데, 새해까지 뉴욕에 남아 이런 장식들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전날과 같이 인적 드문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으로 건너갔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날에는 모두 가족과 따뜻한 집에 틀여박혀 핫초코를 마시고 있나보다. 어디론가 바삐 가는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자 시리게 푸른 겨울 하늘과 "뉴욕"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은 높은 빌딩들이 펼쳐졌다. 어쩜 여기는 등도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뒀을까!





3대 베이글이라는 에싸, 톰킨스, 리버티 베이글 중 크리스마스 당일에 영업을 하는 곳은 리버티 베이글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가게 안은 인산인해였고, 줄 끝에 가까스로 서서 가게를 둘러보았다.


레인보우 베이글의 원조라는데, 사실 색소가 가득한 이 베이글에 썩 매료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살펴본 이 베이글들은 모두 진짜였다. 베이글이 넘쳐나는 곳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무얼 먹을 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십개에 달하는 크림치즈와 베이글이 있었지만, 사실 고민을 길지 않았다. 서브웨이를 연상케 하는 베이글 주문 시스템에 잠시 긴장한 끝에 연어 크림치즈 베이글과 블루베리 크림치즈 베이글을 쉽게 고를 수 있었다.

포피씨드 베이글에 먹음직스러운 훈제연어에 크림치즈, 그리고 톡톡 씹히는 케이퍼를 넣은 이 사랑스러운 베이글이 나의 첫 뉴욕 베이글이다. 그저 쫄깃한 빵에 속재료를 적당히 넣은 것이었지만, 센트럴 파크의 전경을 보며 먹는 이 베이글은 뉴욕 여행 그 자체였다. 듬뿍 씹히는 훈제연어와 풍미를 더해주는 크림치즈, 물리지 않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케이퍼가 아침을 행복하게 해줬다.



블루베리 크림치즈에 리버티 베이글은 후식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신이 잔뜩 났고, 한입 가득 들어차는 묵직한 크림치즈와 산뜻한 블루베리의 맛, 색감과 다르게 심플하고 쫄깃한 베이글이 입맛을 돋운다. 참 신나는 아침이었다.


특히 리버티 베이글은 센트럴 파크랑 가까워서, 잠깐 벤치에 앉아서 베이글을 베어물기 완벽한 동선이었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벤치에 앉아 아침을 먹기는 충분했고, 저멀리서 들려오는 섹소폰 연주가 이 아침을 더 신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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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해치우고 센트럴 파크를 산책했다. 언제나 소원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던 센트럴 파크에 와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넓은 공원을 저렇게나 높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도, 마천루가 점점 구름에 휩싸이는 모습도 좋았다. 꼭 100년은 되었을 건물들이 한없이 차갑고도 따뜻했다.





예약해둔 스케이트장으로 가는 길, 5번가를 지나다가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10분 뒤에 미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들어가서 아름다운 내부와 차분하지만 어딘가 들뜬 구석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했다.

미사를 드린지 10년이 넘었지만, 성당의 그 장엄함과 경건함, 그리고 따스함은 어딘가 집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줬고, 드디어 크리스마스가 완성되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뉴욕 시내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곳은 브라이언트 파크, 록펠러 센터, 센트럴 파크 정도가 유명한데, 록펠러 센터는 작지만 접근성이 좋고, 브라이언트 파크는 중간 크기에 주위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서 좋았다. 센트럴 파크 아이스링크장은 산책 중에 지나쳤는데, 크기가 가장 컸고 사람도 참 많았다.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핫초콜릿과 커피를 파는 부스들을 잠시 구경하면서, 스케이트를 타고 나면 꽁꽁 언 손을 녹이며 핫초코를 마셔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지만 뉴욕의 겨울은 한국의 그것만큼 춥지 않았고, 꽁꽁 언 손을 호호 분다거나 따뜻한 음료를 부여잡고 한숨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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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모인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균형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3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도 아팠고, 맞지 않는 스케이트를 탄 발도 아팠지만 차가운 얼음 위에서 양 발의 감각과 내 몸의 무게에만 집중하는 일은 마법같았다. 그렇게나 많던 인파도, 스케이트 실력에 자신이 없어 우물쭈물하던 마음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온전히 나 자신과 얼음에 집중해서 보내는 시간은 참 소중하고 행복했다.


한 번도 펜스를 잡지 않고 한 바퀴를 돌게 되었을 때 어찌나 기뻤던지!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과 다정한 미소들을 보며, 기뻐하는 연인들과 가족들을 보며 이게 정말 크리스마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좋은 점은, 모두가 기뻐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쁨은 나에게 참으로 쉽게 전염된다는 점이다. 가족, 그리고 연인과 수천키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나와 도시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꽁꽁 얼지는 않았지만 피곤한 발을 이끌고 크리스마스 점심은 중식을 먹었다. 연 식당은 거의 없었고, 웨이팅이 없는 곳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맛있는 중식을 먹고,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행복에 겨워 3층 높이의 트리를 즐겼다. 그 후 애타게 기다리던 뮤지컬 로터리에 실패했고, 크리스마스를 마무리해줄 케이크를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갔다. 러브 액추얼리와 마지막 크리스마스 인사로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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