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모두가 가족, 연인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려고 준비중일 때 나는 위탁 수하물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기내용 캐리어 하나, 거대한 노스페이스 백팩에 짐을 몽땅 꾸려서 공항으로 향했다. 언제나 바라왔던 뉴욕에 간다는 설렘과 떨림을 안고 한낮의 비행기를 탔다. 등에 진 커다란 가방에는 물, 외투, 아이패드와 책이 아닌 두근거리는 마음이 한가득 담겨있었고, 나비가 된 양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남자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개구리와 동행했다. 바보같이 생긴 초록색 복슬이가 마음을 진정시켜줬다. 우스꽝스러운 눈은 여행 내내 나를 안심시켜주고, 또 "How are you?"라고 물어보는 듯 했다.
뉴욕 공항에 내림과 동시에 '뉴욕!!!'이라고 외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혼잡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항 벽면에 자리한 화려하고 큰 환영인사를 기대했지만, 우버를 부르고 숨을 돌리자 보이는 건 주차장 한 쪽에 겨우 자리한 "Welcome to New York" 뿐이었다.
하하, 시작은 초라했지만 앞으로 뉴욕의 정수를 모두 맛보고 갈테다.
퀸즈에 위치한 손더 호텔(Sonder the Dutch)에 묵었다. 손더 호텔은 에어비앤비와 호텔 중간 정도 되는 곳으로, 시설은 훌륭하지만 대부분의 서비스가 셀프인 곳이었다. 성수기임에도 도심에서 약간 벗어나자 합리적인 가격으로 뉴욕에 머무를 수 있었다.
호텔을 나서 맨해튼으로 가는 길에 절묘한 색조합을 발견했다. 쨍한 네온 그린 색이 마치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Little Flower Cafe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 지나쳤지만, 내부는 페이스트리를 하나씩 든 현지인로 가득했다. 심지어는 자리가 없어 서서 음료와 페이스트리를 양 손에 들고 있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퀸즈 현지인 맛집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꼭 저기서 아침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Napoli Pizza and Pasta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맨해튼 도심도 아닌 퀸즈에는 영업중인 식당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치만 뉴욕에 왔는데 피자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지 않은가! 열심히 찾은 끝에 영업중인 피자 가게를 발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피자는 내가 먹어본 피자 중에 최악으로 꼽힌다.. 단단하고 메마른 도우와 비쩍마른 바질, 그나마 올라간 허브 가루와 약간의 토마토 소스가 전부였다.
크리스마스 뉴욕 여행은 정말 맨해튼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중심지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먹을 게 없으니..
드디어 타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던, 바로 그 뉴욕 지하철을 말이다. 어찌나 설렜던지, 나는 흔한 지하철 입구에도 흥분해서 사진을 찍어댔고, 처음으로 애플페이를 써서 지하철에 탑승했다. 따로 티켓을 끊거나 교통카드를 사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뉴욕에서는 한 번 탈 때 $2.9 (무려 4000원!)을 내게 되어 있었는데, 대신 일주일에 12번 이상을 타면 그 이후는 무료였다. 그치만 평범한 직장인 기준으로 중 5일을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득인 면은 아니었으나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관광객이었기에, 6일간 머무르면서 약 14번 정도를 탔다. (2번이나 무료로 탄 셈이다!)
여행 내내 맨해튼과 퀸즈를 지하철로 오가며, 예상외로 상상을 초월하는 경악을 해본 적은 없었다. 뉴욕 지하철과의 첫 만남은 선로에 고인 물을 마시는 비둘기 정도로 무난하게 끝이 났다.
맨해튼에서의 일정 중,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단연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였다! 현대백화점에 매그놀리아 바나나 푸딩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서 잠 못 이루던 그 시절부터 (결국 못 먹어봤다) 꿈에 그려왔던 바나나 푸딩이었다. 나는 정말로, 바나나를 처음 먹은 기영이가 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에 인기 있는 메뉴여서였을까, 베이커리에 도착한 오후 3시 무렵에는 푸딩이 모두 동나있었다. 오색찬란한 케이크만 남아있는 쇼케이스를 보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겨우 이런 난관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몇 년 간 기다려온 바나나 푸딩을, 나는 오늘 먹어야 했다. 1키로 정도 떨어진 다른 지점에 가보기로 했다. (맨해튼에는 정말 이곳저곳에 매그놀리아 베이커리가 많았다. 서울에서 파리바게트 찾기만큼 어렵지 않았다.)
록펠러 센터 매그놀리아로 향하던 중, 콜럼버스 서클 크리스마스 마켓을 맞딱뜨렸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잔뜩 들뜬 사람들,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물건들을 파는 가판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된 가게들..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며 '이게 뉴욕의 크리스마스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신이 났다. 크리스마스에 뉴욕에 간다면, 크리스마스 마켓을 꼭 둘러보시라. 그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만땅으로 충전된다.
뉴욕 크리스마스 마켓:
1. 유니온 스퀘어 크리스마스 마켓: 접근성이 좋고 상점 수가 가장 많다
2. 브라이언트 파크 윈터 빌리지: 브라이언트 아이스링크랑 엮어서 가면 좋다
3. 콜럼버스 서클 홀리데이 마켓: 센트럴 파크 근처! 다른 마켓에 비해 사람이 적은 편
4. 그랜드 센트럴 홀리데이 페어: 실내라서 추울 때 굳. 그랜드 센트럴 역 구경이랑 한번에!
ㄴ 브라이언트 파크, 유니온 스퀘어 마켓이 가장 유명하다.
마켓을 돌아다니던 중, 친절한 사장님이 어차피 카페 마감중이라며 건네준 공짜 커피에 마음도 손도 따뜻해졌다. 브루드 커피를 많이 만들어뒀는지 가판대 위에는 5~6잔의 커피가 놓여있었다.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뉴욕 사람들도 크리스마스에는 다들 마음이 넓어지나보다.
크리스마스 뱅쇼를 한 솥 가득 끓이고 있던 가게! 이게 서양의 크리스마스구나, 하고 감탄했다.
작은 마녀 솥단지가 그렇게 특별해보일 수가 없었다.
다음 번에는 한 번 마셔보리라 다짐하고 남은 가게들을 구경했다
수백개의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파는 가게도 있었고, 직접 만든 주얼리 가게,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자욱하던 초콜릿과 핫초코 가게도 있었다.
바보같고 귀여운 인형들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구경하다가 초콜릿 시식을 했는데, 그렇게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크리스마스가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겠다 싶을 만큼 황홀했다.
말로만 듣던 치즈휠 파스타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주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높고 두터운 치즈라니!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먹을 생각은 안 들었지만 군침이 잔뜩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능숙한 솜씨로 파스타를 뒤적이다가 큰 소리로 파스타가 준비되었다고 소리치는 모습이 크리스마스 마켓의 흥을 한층 더 돋웠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줄리어드 음대! 음대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이곳을 지나칠 수 있을까.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학교에 가는 사람은 없는지, 학교는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거울 연못과 조각상은 예술 그 자체였다. 어떻게 도심 한가운데에 이렇게 예쁜 학교가 있을 수 있을까.
나도 줄리어드에 다니고 싶다..
라는 생각을 3초쯤 했고,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로 향했다.
드디어 도착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왜인지 몰라도 매그놀리아 베이커리가 바나나 푸딩만 팔거라고 케이크, 컵케이크, 쿠키가 잔뜩 있었고, 심지어는 바나나 푸딩은 한구석에 있었다.
나 정말 뉴욕 드림을 가진 관광객이구나!
바나나 푸딩 가게가 아닌 '베이커리'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나니, 뉴욕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고 꽤나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 이 사람은 뉴욕에 도착한지 12시간도 안 되어서 뉴욕을 더 알게 된 기분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나온 신메뉴인 레드벨벳 바나나 푸딩밖에 안 남았다고 해서 이걸 먹게 되었다. 내가 상상한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레드벨벳은 아무맛도 안 나니까! 원래보다 크림치즈 맛이 좀 나는 바나나 푸딩일거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먹게 된 바나나 푸딩은 생각보다 더 달콤하고, 또 부드러웠다. 열심히 먹다보니 점점 올라오는 달콤함은, 사실 정말 관념 속에 있는 '미국'의 그것이었다.
기억하시라. 아메리카노 없이 바나나푸딩을 하나 다 먹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만약 있어도, 쉽지는 않다는 것을..
어찌됐든 나의 원대한 뉴욕 드림의 첫 번째를 체크하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았다
저녁 장소로 향하는 길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를 팔고 있었다.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가 보이는 이곳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뉴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