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철학자에게만 기운 돋는 단어 100선》 3회

흩어져 흘렀던 단편의 조각, 다시 이으다 (리터치)

by 비고란
흔들림에서 되감기까지, 느슨한 낙차의 정서들




21. 잠복

드러내지 않은 감정이
가장 오래 머문다.
기운은 때로 말보다
기다림으로 증명된다.


21. 잠복.png





22. 심연

바닥이 없다 해서
무의미한 게 아니다.
감정의 끝은
생각보다 더 조용한 곳에 닿아 있다.


22. 심연.png





23. 스민다

단숨에 오지 않고,
배어드는 감정.
스며든다는 건
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머물 자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23. 스민다.png





24. 기척

누군가 있음을 알지만
정확히 보이지 않을 때,
감정은
말보다 먼저 몸에 도착한다.



24. 기척.png





25. 속울림

드러난 감정보다
속에서 묵직하게 남는 잔향.
말은 잊혀도,
그 떨림은 오래 울린다.


25. 속울림.png





26. 덧남

말도 끝났고, 일도 지났는데
이상하게 남아 있는 기운.
감정은 종종
사건보다 늦게 끝난다.


26. 덧남.png





27. 낯익음

분명 처음인데
왠지 익숙한 기분.
이 감정은
기억의 사본이거나
꿈에서 먼저 지나간 장면일지도.


27. 낮익음.png





28. 미끄러짐

잡았다 놓친 감정,
닿았다 사라진 관계.
미끄러졌다는 건
한순간이라도 연결됐었다는 뜻이다.


28. 미끄러짐.png



29. 곁눈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
감정은 옆으로 새어나간다.
진심일수록
비껴서 바라보게 된다.


29. 곁눈질.png




30. 되감기

과거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다시 겪는 일.
기억은 회상이 아니라,
감정의 반복 재생이다.


30. 되감기.png





드러나지 않는 심연의 슬픔이 가장 오래 잠복되어 있는 곳에
조용히 감정의 기척들이 스민다
끝난 줄 알았던 감정의 속울림이 가장 깊게 덧나듯
익숙하면서도 항상 낯선 감정은 늘 한순간에 미끄러진다.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것에 대한 곁눈질의 필름들을 되감는다.




이 단어들이 지금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안으로 접히고 있는,
당신에게 가 닿기를…




4회 차 예고


31. 한 끗
32. 느슨함
33. 망설임
34. 휘청임
35. 잠언
36. 멈춤
37. 들숨
38. 밀어냄
39. 섞임
40.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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