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말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숫자를 먼저 떠올린다.
혈압 120/80mmHg, 공복혈당 100mg/dL 이하, 그리고 InBody 결과지 속 정량화된 숫자들.
하지만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에게는
그 수치들이 대부분 ‘참고용’ 일뿐이에요.
“간호사 선생님 저 아무 이상 없는 거 같은데 요즘 자꾸 한숨이 나와요.”
“몸은 괜찮은데... 왜 이렇게 무기력했는지 모르겠어요.”
“업무스트레스로 두통도 심하고, 가슴이 자꾸 답답해요.”
그럴 땐 저는 차트를 먼저 보지 않아요.
청진기도 잠시 내려놓고, 문진지를 미뤄둔 채 이렇게 여쭤봐요.
“요즘 잠은 좀 주무세요?”
“괜찮으세요?”
간호학에서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로만 보지 않아요.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다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다.”
그 말은 곧,
혈압이 정상이더라도,
혈당이 이상 없어도,
체형이 표준 범위에 있어도,
당신이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외롭다면
우리는 그걸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보건실이라는 공간은
‘정상 수치’를 향해 쫓아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내 상태’를 인정하고 잠시 숨을 돌리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날은 혈압계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더 큰 도움이 되고,
어떤 날은 혈당 체크보다 누군가의 “괜찮아요”라는 말이 더 중요하니까요.
InBody 수치가 조금 높다고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내 마음이 아프지는 않은지,
오늘 하루 숨 쉴 틈은 있었는지,
그리고 그걸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지예요.
건강은 숫자가 아니에요.
그건 결국,
내가 나를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하루의 온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조용한 보건실 한편에서,
누군가의 마음 온도를 조심스레 함께 지켜보고 있어요.
조용한 보건일기 중에서.